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한 일본 우익언론 산케이의 보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은 보수단체의 고발에 따라 가토 다쓰야 산케이 서울지국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고, 출석을 통보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문제가 된 기사는 산케이가 지난 3일 보도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이다. 산케이는 이 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런 가운데 4월 16일(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던 ‘사실’이 불거져 정권이 통째로 흔들리는 사태가 됐다”고 보도했다. (뉴스프로 번역)
 
이어 산케이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지난 7월 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주고받은 문답을 소개했다. 당시 운영위원회에서는 4월 16일 박 대통령이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서면으로 받은 뒤 오후 5시 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대면보고를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김기춘 실장은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모른다”며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모두 알고 있어야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 지난 3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보도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 기사.
 
산케이의 기사가 단순히 ‘사라진 7시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수준이었다면 논란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산케이는 한발 더 나아갔다. 증권가 정보지와 조선일보 칼럼을 인용해 박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 동안 과거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를 만났을 것이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고 전한 것이다. 
 
산케이가 인용한 조선일보 칼럼은 지난 7월 18일자 최보식 칼럼 <대통령을 둘러싼 風聞>이다.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는 김 실장의 ‘나는 모른다’는 답변 이후 세간에서 대통령이 비선과 만났다는 루머가 만들어졌다며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세상 사람들은 진실 여부를 떠나 이런 상황을 대통령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과거 같으면 대통령 지지 세력은 불같이 격분했을 것이다.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도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식과 이성적 판단이 무너진 것 같다. 국정 운영에서 높은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다면 풍문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기자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면서 온갖 루머들이 창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산케이는 조선일보 칼럼 내용을 상세하게 전하며 “박 정권의 레임덕화(化)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산케이의 칼럼이 인터넷 상에 퍼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7일 국회 황우여 교육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까지 이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는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것을 기사로 썼다. 엄하게 끝까지 대처 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끝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법적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3자 고발사건이 있기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산케이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몇 가지 의문점은 남는다. 첫 번째 의문점은 ‘왜 산케이 보도에만 유독 강경하게 대응 하는가’이다. 
 
물론 산케이의 보도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 입장에서 불쾌한 내용이다. 산케이는 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을 일컬어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 새누리당의 측근으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며 “아마도 ‘대통령과 남자’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 구석구석 여기저기에서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관계를 두고 독자의 상상력을 부추길 수 있는 보도였다.
 
   
▲ 7월 18일자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
 
하지만 산케이 보도의 대부분은 조선일보 칼럼을 인용한 것이다. 문제는 청와대가 산케이가 인용한 조선일보 칼럼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바야시 다케시 국장은 지난 9일 산케이 기사를 통해 “문제가 된 기사는 한국 국회에서의 질의응답과 조선일보의 칼럼 소개에 중점을 둔 것뿐인데, 이런 이유로 기사 자체를 명예 훼손이라는 혐의로 출두하라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밝혔다. (뉴스프로 번역)
 
실제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에도 이에 관한 댓글들이 여러 개 달렸다. 한 누리꾼은 “산케이 신문이 최보식 기자의 칼럼을 인용하여 검찰조사를 받는 것은 받는 것이고, 우선 최보식 기자도 정확히 무슨 근거로 이런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는지, 취재 소스를 밝혀야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의문점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왜 “모른다”고 답했느냐는 것이다. 이후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당시 박 대통령이 경내에서 사고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 실장은 왜 “모른다”고 했을까. 진짜 경내에 있었다면 김 실장이 몰랐을까. 국가안보에 해당한다면 ‘밝힐 수 없다’고 답하면 되는 문제다. 김 실장의 답변은 의혹을 부추겼고, 결과적으로 정윤회씨의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런저런 의혹이 있지만 결국 해법은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히면 논란은 사라진다. ‘안보’상 문제가 있다면 비서실장은 왜 “모른다”고 답했는지, 경내에서 사고보고를 받았다면 왜 그렇게 답하지 않았는지 명확하게 이유를 밝히면 된다. 
 
명예훼손 여부를 검찰에 맡길 이유도 없다. 7시간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면 조선일보와 산케이 보도는 결국 ‘오보’ 혹은 근거 없는 의혹제기가 되기 때문이다. 7월 18일자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은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장마철에 곰팡이처럼 확산되는 풍문을 듣지 않기 위해 대통령은 자신의 귀만 막아서는 안 된다. 곰팡이는 햇볕 아래에서 말라죽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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