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로 주목받는 미국 언론의 ‘복스(Vox)’는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로도 유명하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카드 스택(Card Stack)’이다.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된 카드 형태가 복스가 추구하는 '해설형(Explanatory) 저널리즘'을 가장 잘 구현하기 때문이다.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 ‘정보홍수’ 시대에 이런 해설기사는 색다른 ‘독자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복잡한 내용을 정리·설명해주는 ‘카드스택’은 꾸준한 ‘업데이트’가 특징이다. 기자는 카드 내용을 계속 추가·수정하면서 일회성이 아니라 ‘에버그린(Evergreen)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카드스택’은 언론계의 위키피디아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디지털에 적합한 기사를 고민하기 시작한 한국 언론도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연합뉴스와 민중의소리는 최근 한국 최초로 카드형 기사를 선보였다. ‘카드스택’ 모델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지만, ‘디지털 전환’이 더딘 한국 언론계에서 이런 실험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 복스의 카드스택 리스트. 이슈 별로 포함된 카드 개수가 다르다. 이미지=복스 사이트 갈무리.
 
모바일과 SNS에 초점 맞춘 연합뉴스

하루 차이지만 카드형 기사를 먼저 내놓은 건 연합뉴스 미디어랩이다. 인터랙티브 뉴스에서 데이터 저널리즘까지 다양한 실험을 하는 연합뉴스 미디어랩은 현재까지 두 개의 카드형 기사를 제작했다. 지난달 29일에 나온 <수입맥주 전성시대>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수입맥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았다.

총 11개의 질의응답 카드로 이루어진 이 기사에는 ②수입맥주 왜 유명해졌나 ⑥수입맥주 유통기한은 ⑨맥주 칼로리는 등의 질문이 있다. 또한 발효 방식에 따른 맥주 분류법을 설명하고, 맥주로 만들 수 있는 칵테일 제조법을 소개했다. 이 기사는 기획자 겸 기자 1명과 디자이너 2명, 개발자 1명이 함께 제작했다.

   
▲ 연합뉴스 미디어랩이 만든 <수입맥주 전성시대>. 이미지=연합뉴스 사이트 갈무리.
 
이 기사를 기획한 김태균 연합뉴스 기자는 “복스의 카드스택은 ‘전통 뉴스’의 배경지식을 추구하는데, 우리는 좀 더 다변화해서 여름에 누구나 관심 가질만한 ‘맥주’와 ‘심근경색’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만들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카드 형태에 맞는 주제를 찾는 중”이라며 “가벼우면서도 풍부한 내용을 담아서 오랫동안 소비되는 ‘롱테일 콘텐츠’를 시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의 카드 기사는 복스에 비해 좀 더 모바일과 소셜미디어에 초점을 맞췄다. 상대적으로 카드 개수도 적고, 한 카드 당 글도 800자를 넘지 않는다. 연합뉴스는 스마트폰에서 보기 좋게 세로가 긴 인포그래픽을 다수 넣고, 기사 아래 ‘페이스북 댓글 창’을 달아서 SNS 공유를 유도했다. 김태균 기자는 “독자와의 ‘인터랙션’을 높이고, 재밌는 대화 같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구어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미디어랩이 만든 <급성 심근경색>의 모바일 버전. 이미지=연합뉴스 사이트 갈무리.
 
민중의소리 “형식이 바뀌지 내용이 바뀌진 않아”

민중의소리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의 모든 것>은 카드스택과 거의 같다. 모바일에서 보기에는 카드나 글이 많은 편이며, 이미지는 없다. 민중의소리는 이 카드형 기사에 ‘이슈탐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복잡한 이슈에 대해서 상세하게 풀어주겠다는 의도다. 이 기사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에 대한 전개과정을 설명한 후, 법정 다툼을 쟁점 별로 설명했다.

‘이슈탐구’를 기획하고 개발한 김동현 민중의소리 뉴미디어부장은 “카드형 기사는 UI(이용자 인터페이스)의 변화가 아니다. 우리가 여러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드는 목적은 보도 강화다. (이슈탐구 등으로) 이슈를 끌고 가는 보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복스가 카드스택을 하는 이유도 똑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복스가 너무 잘 만들어서 그대로 채용했지만, 형태보다 문제의식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독자가 그 이슈를 처음부터 알았든, 진행 중에 알게 됐든, 이슈를 따라가는 콘텐츠를 통해 쉽게 이해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민중의소리가 만든 <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의 모든 것>. 이미지=민중의소리 사이트 갈무리.
 

기자는 자신의 ‘이슈탐구’에 대한 새로운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내용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민중의소리가 ①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②쌀 관세화, ③의료민영화와 같이 쟁점이 많고 복잡한 이슈를 다음 주제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마찬가지로 복스는 지난 4월 만든 <당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이라는 카드스택을 협상 중단이나 7월 공습 등이 있을 때마다 수정했다. 덕분에 독자는 일자 별로 흩어져 있는 여러 기사 속에서 헤매지 않고 카드형 기사만 읽고 해당 이슈를 파악할 수 있다.

김 부장은 “이슈탐구는 그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만 타깃팅한 것이라 ‘롱테일’ 소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의 모든 것>은 출고 첫 날 페이스북에 한 번 올리고 프로모션을 안했는데도 독자가 꾸준히 들어온다”며 “페이지뷰(PV)가 출고 첫 날의 3분의 1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SNS에서 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슈탐구는 지식 전달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 재판 전에 프로모션하고 새 쟁점이 나오면 업데이트해서 또 프로모션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복스는 지난 4월에 만든 <당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이라는 카드스택을 여러 차례 업데이트했다. 이미지=복스 사이트 갈무리.
 
관련기사의 진화 ‘스토리 스트림’

복스의 ‘스토리 스트림(Story Stream)’도 카드스택과 함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사를 일자 별 순서로 연결해주는 모델로 ‘관련기사 링크’가 진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자는 이를 통해 앞뒤 기사를 추적해나갈 수 있다. 복스는 일반 형태의 기사 아래에 ‘카드 스택’(개념, 배경 설명)과 스토리 스트림(이전 기사)을 추가해 독자가 해당 이슈를 파악하기 쉽게 만들었다. 김동현 부장은 “8월 중에 스트림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며 “카드로 만들 필요가 없는 청문회 기사 등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리 스트림’의 개념은 써카(Circa)뉴스퀘어(Newsquare)의 뉴스 서비스와 비슷하다. 다만 복스의 것이 관련기사의 진화 버전이라면, 써카와 뉴스퀘어는 카드와 스트림이 융합된 모델이다. 두 언론의 편집자는 기존 기사를 요약해서 카드를 만든 후 일자 별로 연결해놓는다. 또한 필요에 따라서 기존 카드를 삭제하거나 수정하기도 한다. 독자가 원하는 건 단순한 기사의 연결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합뉴스와 민중의소리의 실험은 다른 언론에도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민지점도 있다. 새로운 형태의 기사를 제작할 수 있는 CMS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것이 만족 할만 수준의 트래픽을 보장하지 못한다. 아직도 국민의 다수가 네이버에서 뉴스를 소비하지만, 이런 특별한 형태의 기사는 포털에서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유통할 수밖에 없지만 트래픽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 김태균 기자는 “플랫폼으로 봤을 때 한국에선 이런 기사를 프로모션하기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일반 기사와 연결하기 위해 사이트 디자인과 CMS를 수정해야 하는 점이 과제”라고 말했다.

   
▲ 복스 기사 아래에 붙어있는 스토리 스트림(Story Stream). 이미지=복스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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