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사건·사고는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총기사망을 비롯해 성추행, 자살 따위의 사건·사고들이 끊이질 않는다.

얼마 전 12명의 사상자를 낸 강원도 동부전선 총기난사 사건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히더니, 하루에 2명의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또 터졌다. 상관의 가혹행위와 성추행 때문에 여군 대위가 자살한 사건에 이어 해군 함장이 여군 간부 2명을 성추행한 일도 벌어졌다. 함장의 성추행 행위는 후임들의 만류로 겨우 멈추어졌다고 한다.

각종 군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것도 문제지만, 동부전선 총기난사 사건의 작전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못 심각하다. 9대대 4천여명을 동원한 군대의 작전에서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수색조끼리 서로를 몰라보고 오인 사격을 해 소대장이 다치는가 하면, 수색대가 체포하려던 사병과 마주쳤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문제의 사병에게 경례까지 붙였다고 한다. 적과 아군을 구별할 암구호나 식별표지 따위의 기본적인 작전지시는 물론이고 아군끼리의 오인 사격을 방지할 작전명령이 재대로 돼 있었다면 결코 생길 수 없는 일들이다.

전쟁이나 전투 집단과의 교전 상황을 상정하면 백전백패할 거라는 우려의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각종 군의 사건·사고에다 오합지졸 같은 군 작전을 보는 국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소대장의 총상과 관련해 수색조끼리의 오인사격을 문제의 사병이 쏜 사격으로 군 당국이 허위 발표를 하고, 가짜의 인물을 내세운 병원 이송 작전을 해 국민을 속이기까지 했다. 군 당국의 발언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군 당국은 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과 불신을 어찌할 텐가.

군 당국은 총기난사 사건 수사결과 발표에서 그 원인을 병사들 사이의 따돌림과 무시, 놀림이라고 밝혔다. 사건의 원인이 병사들 탓이라는 주장이다. 자살 사건도 ‘관심병사’의 문제로 돌리고 만다.

2008년 6월 집단적인 왕따를 견디지 못해 수류탄으로 자살한 전병주 상병은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공익판정을 받았으나 자원입대했다. 정상인으로 입대한 그의 자살은 누구 책임인가.

군은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국민의 아들을 안전하게 돌봐주고 관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군의 간부, 특히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지휘관의 병영 관리 책임은 막중하다.

군 당국이 군의 사건·사고에 대한 병영 관리의 근본적인 책임을 외면한 채 모두 병사들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무책임한 인식과 자세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군 간부나 지휘관의 가혹행위나 성추행도 병사들 탓인가. 더구나 문제의 원인이 군대 밖인 사회에 있다는 식의 사고에는 아연하게 된다.

국민과 사회를 문제의 대상으로 삼는 군의 사고는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천만한 오만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국방부 장관과 사이버사령관의 정치 개입 의혹이라는 국기 문란의 사건이 터진 것도 그런 오만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군은 국민의 군대이지 특정 정파의 군대가 아니다. 군이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헌법을 유린하는 행위가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리면 군의 단결력과 결속력이 무너지게 되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군 당국이 사건·사고의 원인을 ‘관심 병사’나 병사들의 탓으로 돌리고 병영관리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한, 군의 사건·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우리 군이 정치 개입 의혹과 온갖 사건·사고, 오합지졸 같은 작전 따위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을 사는 ‘관심 군대’가 되고 말았는지, 국방부 장관과 군의 고위 책임자들은 통렬한 반성을 해야 마땅하다.

지난 2005년 6월 연천 전방초소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은 “참극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사표를 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2011년 7월 해병대 총기사망 사건이 터지자 재발방지 약속을 공언했으나 다시 이번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국방부 ‘사과’로 얼버무렸다. 국민에 대한 사과조차 않는 그가 현 정부의 안보 총사령탑인 국가안보실장으로 ‘영전’했으니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가.

문제의 핵심은 군의 사건·사고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엄정한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군의 특성상 군은 사건·사고의 실체와 조사 과정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수사와 재판을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군 지휘부의 의사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려고 한다.

사건·사고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진실은 은폐되고 문제의 책임과 해결은 실종되고 만다.

군의 수사와 재판이 모두 지휘관의 통제 하에 있는 한, 군의 사건·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독립된 검찰과 판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사하고 재판할 수 있도록 군의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건·사고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과제는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군의 고질적인 폐습을 없애 군복을 입은 시민인 장병의 인권이 존중되는 병영문화를 조성하는 일이다. 인권은 국가의 존재 이유로서 병영문화도 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연천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2005년 7월 발족한 병영문화개건대책위원회에서 사표가 반려된 윤 장관과 공동위원장을 맡아 이 해 10월 병영문화개선대책을 청와대에 보고하게 됐다. 이 때 보고한 대책의 핵심은 병사의 인권이 존중되는 상호 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 조성이었다. 대책의 궁극적 목적은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였다.

장병 인권보장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로는 ‘군인복무기본법’ 제정과 ‘인권담당관’ 직위 및 민간전문가에 의한 ‘군 고충처리위원회’ 신설 등이 추진됐다. 병영폭력을 뿌리뽑고 병사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군인복무기본법’은 2007년 입법예고까지 됐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국방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국회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다가 2008년 5월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011년 7월 해병대 총기사망사건을 계기로 이 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추진 및 장병의 인권 강화를 권고해 국회에서 입법이 추진됐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다른 병영문화 개선과 장병 기본권 증진 대책들도 이명박 정부 이후 사라져 버렸다.

그 결과 군 내 자살자와 영창 입소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급기야 군은 온갖 사건·사고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작전 수준으로 ‘관심부대’의 소리를 듣게 되지 않았는가.

한민구 신임 국방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행복한 선진 국방환경 조성과 미래지향적 방위역량 강화 등 국방운영 4대 중점 사항을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행복한 국방환경 조성이 허울 좋은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한 장관은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추진 등 병영문화 개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인권의 침해로 자긍심과 자존심을 상실한 병사에게 전투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병영문화 개선의 최종 목적은 방위역량의 강화와 자주 국방력의 실현이다. 한 장관은 자주국방의 목표와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자주국방을 위한 장병들의 사명감이야말로 진정한 전투역량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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