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영남산이며 그의 부인은 호남산이다. 부부의 아이들은 영호남 합작품이다. 아들의 부모는 시국미사 반대시위에 참석할 만큼 보수적인 영남 사람들이다. 그러나 부모는 진보성향의 아들과 호남산인 며느리를 조건 없이 아끼고 사랑한다. 아들 역시,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부모의 정치적 선택만 좀 바꿔 볼 수 없을까 궁리한다. 하지만 영남보수의 문은 거의 매번 잠겨 있다. 그의 부모는 진보성향의 아들과 호남산 며느리는 끔찍이 사랑할 수 있지만 정치적 선택으로서 ‘진보’와 ‘호남’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아들은 이 문을 단박에 열 수 있는 ‘만능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매번 깨닫는다.

   
'우리가 남이가!' 부산 초원 복국집 사건의 주인공 김기춘 비서실장을 겨냥해 구원파 신도들이 금수원 정문앞에 붙여놓은 펼침막.
 
물론 영남지역이 이전과 같지는 않다. 특히 소위 ‘PK’라 불리는 부산경남 지역의 경우 야권 성향의 도지사도 선출된 적 있고, 국회의원도 여러 명 나왔다. 대통령선거 때도 야권 후보에 대한 투표비율이 40%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1994년 노태우 정권 시절 이루어진 민자당으로의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되기 전에는 부산 경남지역이 야당 성향의 지역이었기에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의 원조지역으로 평가받는 ‘TK’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아들의 아버지처럼 다수 영남지역 사람들은 아직도 단단한 보수의 빗장을 풀지 않고 있다. 특히 TK로 대변되는 대구 경북은 문을 꽉 걸어 잠그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정책도 계급·계층적 이해관계도 따져보기 전에 “우리가 남이가”란 정서에 파묻혀 보수여당에 표를 던진다. 간판만 바꿔 온 새누리당의 기득권이 곧 자신들의 ‘기득권’이며 애국심’의 표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굳게 채워져 있는 영남의 빗장은 나라 전체는 물론 영남지역을 위해서도 분명 ‘마이너스’다. 지자체와 의회 모두 새누리당의 일방적 독주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제가 작동되지 않는 절대 권력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남에서 지역토호 기득권을 견제할 야당, 그리고 진보세력의 견제와 권력 분산의 정치 지도가 절실하다.

눈을 돌려 보면 지금의 새정치연합, 구 민주당이 행정과 의회권력을 장악한 호남의 정치권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물론 광주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5.16쿠데타 이후 20여년 군사정권이 만든 영남기득권에 대항한 민주진보세력의 가장 큰 지지 지역이었기에 군사정권의 뿌리를 가진 영남정당에 표를 주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사회적 정당성을 오히려 야당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토양으로 이용해 왔다. 그런 야당의 기득권에 호남 지역민의 상당수는 신물이 나 있었다. ‘황제노역’ 허재호 전 광주일보 회장 같은 사례가 그런 지역 정치 기득권층과의 유착과 비호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올 수 있었겠는가.

세월호의 참사가 아직 진행 중에 있고, 정부의 사고 초동 대처과정에서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말을 못할 정도로 국정운영이 엉망인 이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민심은 그렇다고 야당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야당의 텃밭인 전남 순천 곡성지역에서 당선됐다. 그저 말뿐인 ‘정권비판’에 기대어 중앙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기득권을 누려온 야권에 대한 실망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순천곡성 지역민들이 정권실세인 이정현 후보에 기대 정권 덕이나 좀 보자고 그런 선택을 했을까? 물론 돈이 최고인 세상에 정권 실세의 선심 공약을 믿고 선택한 지역민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석만으로는 그의 당선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서로 권력다툼이나 하고 돈 받아먹었던 게 지역 정치인들 아니었던가. 그런 정치인들을 또 공천한 게 새정치연합이다. 호남 기득권 새정치연합에 대한 ‘비토’인 것이다.

   
이정현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당선인의 전 홍보수석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있는 모습
 
또한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영남 사람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호남 민심을 기억해 본다. 그들은 결과론적으로 전략적 정치 선택의 귀재들이었다. 이번 순천곡성의 선택 역시 전략적 선택의 기회였다. 그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단단하기만 할 것 같은 호남 민심의 빗장을 제대로 열어 보인 것이다. 1988년 국회의원 소선구제 도입 이후 전남지역에서 영남 정권의 당에 의석을 내준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영남 정권의 핵심 실세에게 말이다. 극적이다.

앞으로 이런 호남 민심의 극적인 선택을 영남의 민심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특히 야당의원 하나 없는 TK지역의 민심은 뭐라고 할까. 적어도 전라도엔 새누리당 의원 하나 없는데 ‘우리가 왜?’ 라는 몰역사적 인식은 영남에서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던 영남 아들의 그 아버지에게도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선 ‘김두관’ 후보를 선택해 야권 도지사 당선에 일조한 경험이 있다. 그 김두관 도지사가 대통령직 도전을 위해 ‘도지사 직’을 던져버린 후 그 아버지는 다시 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그래서 그 아버지에게 영남의 아들은 다시 할 말이 생겼다. 전남 순천곡성의 선택은 많은 영남의 아들 딸들에게 부모를 설득할 좋은 명분을 주었다. 영남 민심의 변화를 위해서, 지역감정의 해소를 위해서 전라남도 순천 곡성 주민들 잘 선택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