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새로운 예능 ‘비정상회담’이 방송되자마자 큰 인기를 몰고 있다. 지난 7일 첫 방송된 ‘비정상회담’은 첫 방송 이후 방송 때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SNS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방송 한 달 만에 ‘페이스북 좋아요’는 8만 명이 넘었다. 시청률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비정상회담은 각국에서 온 11명의 외국인 남성들이 같은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샘 오취리(가나), 기욤 패트리(캐나다), 제임스 후퍼(영국), 에네스 카야(터키), 줄리안 퀸타르트(벨기에), 알베르토 몬디(이탈리아), 장위안(중국), 타일러 라쉬(미국), 로빈 데이아나(프랑스), 테라다 타쿠야(일본), 다니엘 스눅스(호주)가 출연한다.
 
11명의 외국인들과 3명의 MC(전현무, 유세윤, 성시경), 한국인 게스트들은 ‘청년들의 독립’ ‘혼전 동거’ ‘현실보다 꿈이 우선인가’ 등을 주제로 자유롭게 토론한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들은 자신의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공유한다.
 
   
▲ JTBC 비정상회담
 
외국인들을 데려다 놓고 토크를 하는 프로그램은 비정상회담이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미녀들의 수다’가 있었다. 비정상회담을 ‘미녀들의 수다’ 남자버전이라 볼 수도 있다. 이 외에도 각종 토크 프로그램에서도 특집 형식으로 외국인들만 데려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비정상회담’이 새로운 지점은 그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토크쇼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그 주제로 한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우리가 ‘다르다’는 점이 강조된다.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질문도 “한국 음식 중 좋아하는 것은” “한국 사람이랑 데이트 해보니 어땠나” 등 신변잡기나 흥미위주의 단답식 질문이 대부분이다. 
 
비정상회담의 새로운 점은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 아니라 ‘만국 공통의 고민’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독립과 혼전동거, 청년들의 미래 등은 어느 나라 청년이든 늘 하는 고민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역사과 경험을 지닌 이들의 차이가 드러난다.
 
비정상회담 제작을 맡은 임정아 JTBC PD는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새로움의 힘이 크다. 최근에 많이 보지 못한 형식의 주제와 토크”라며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어우러져 변칙적인 웃음을 준다. 그 점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회 방송에서는 ‘청년들의 독립 문제’를 두고 각국 대표들 간에 공방이 벌어졌다. 터키 대표 에네스는 ‘15살 자식이 독립하겠다고 하면 찬성하겠느냐’는 질문에 “부모는 자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해 “완전 한국 사람이네” “조선시대 유생이네”라는 말을 듣는다. 중국 대표 장위안도 “자유만을 위해 독립하겠다는 건 인간답지 않다”고 강하게 반대 의사를 밝힌다. 반면 벨기에 대표 줄리안과 프랑스 대표 로빈은 “자식은 너의 소유물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호주 대표 다니엘은 “나이가 뭐가 중요하나”라고 맞선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도 대표들 간의 의견 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에네스(터키)는 “인생의 기반은 가족이다. 부모님 버리고 결혼할 수 없다”고, 장위안(중국)도 “부모는 한 명이지만 여자는 많다”고 밝힌다. 다니엘(호주)은 “내가 교육시킨 자식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믿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줄리안(벨기에)은 “내 선택을 부모가 반대할 리 없다”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미국 대표 타일러는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16세 정도면 독립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평균 독립나이는 27살”이라고 말한다. 일본 대표 타쿠야는 “한국 남자들이 남자들끼리 스킨십이 많다”고 말해 한국인 MBC들을 놀라게 만든다. 
 
   
▲ 7일자 JTBC 비정상회담 갈무리
 
이들에게서 이런 ‘깊은’ 토론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어를 잘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도 하나의 웃음 포인트다. 샘 오취리(가나)는 MC 유세윤과 상황극을 주고받고, 유학 때문에 하차하는 제임스 후퍼(영국)를 통해 한국어 자작시를 써올 정도로 한국어에 능하다. 타일러(미국)도 한국인 MC들과 사자성어 배틀을 할 정도로 한국어에 빠삭하다.
 
임정아 PD는 “두 달에 걸쳐 캐스팅 작업을 했다. 캐스팅 기준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느냐’였다”고 설명했다.
 
비정상회담 속 ‘차이’는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다. 퀘벡 출신의 기욤(캐나다)이 프랑스어를 사용하자 프랑스어를 쓰는 줄리안(벨기에)이 “퀘벡어는 프랑스어가 아니라 사투리”라고 놀린다. 기욤은 “서울말과 부산말 정도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로빈(프랑스)이 “벨기에에서 쓰는 프랑스도 사투리 아니냐”라고 말하고, 에네스(터키)가 “벨기에는 왜 자기 언어가 없고 프랑스 말을 쓰나”고 묻는다. 우리 모두 어떤 지점에서는 ‘소수자’이며, ‘정상’과는 거리가 있는 ‘비정상’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MC들도 균형을 이룬다. 타쿠야(일본)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하면 MC 성시경이 한국적 가치를 들이대며 ‘옳지 않다’는 식으로 반박한다. 논의가 과열되면 MC 유세윤이 타쿠야가 겪은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다며 중재한다. 서로 간의 차이가 과열되는 지점에서는 ‘손에 손잡고’ 노래가 흐르며 모두가 손을 잡고 노래를 한다.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이야기도 ‘기볍게’ 오갈 수 있다. 타쿠야(일본)와 장위안(중국)이 ‘연인 상황극’을 벌이는 와중에 타쿠야가 “나랑 함께 있어달라”고 말하자 장위안은 “네가 역사문제를 존중해준다면 나도 네 뜻을 존중할게”라고 말한다. 타쿠야가 당황해하자 장위안은 이어 “일본인 여자친구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할 질문”이라고 덧붙인다. 
 
   
▲ 21일자 JTBC 비정상회담 갈무리
 
비정상회담은 일본 야스쿠니신사와 독도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각국 ‘정상’들이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을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표가 출연해 대화할 수 있을까. 핀란드나 스웨덴 대표가 출연해 청년들의 미래와 복지국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각국의 ‘비정상’들의 보다 진지함과 유머를 넘나드는 토크가 기존 외국인 토크쇼의 한계를 극복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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