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에서 수백명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고, 온갖 실정과 국정 실패를 이어갔지만 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야당을 견제세력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민심은 박근혜 정권이 아닌 새정치연합을 혹독하게 심판했다.

30일 치러진 19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 전국 15개 지역구 가운데 새누리당이 11곳에서 승리해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 새정치연합은 4곳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새누리당은 나경원(동작을), 배덕광(부산 해운대기장군갑), 정용기(대전 대덕구), 박맹우(울산 남구을), 정미경(경기 수원시을-권선구), 김용남(수원시병-팔달구), 유의동(경기 평택시을), 홍철호(경기 김포시), 이종배(충북 충주시), 김제식(충남 서산시태안군), 이정현(전남 순천시곡성군) 후보가 당선됐다.

이에 반해 새정치연합은 권은희(광주 광산구), 박광온(수원시정-영통구), 신정훈(전남 나주시화순군), 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군) 등 전남지역 3곳과 수원 1곳에서 당선됐다. 특히 전남 순천곡성에서는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선거가 소선거구제로 바뀐 이후 처음으로 영남권 기반 정당에 의석을 내줬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요인으로 우선 35%도 안되는 낮은 투표율(32.9%)을 들 수 있다. 투표율이 이렇게 낮은 데엔 여름 휴가철이라는 계절적인 특수성도 있으나, 제1야당으로서 야권을 대표하는 새정치연합이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휴가철 여부를 떠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서민의 고통, 민주주의 파괴에 신음하는 시민의 분노,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대변하고 기댈 곳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자신들을 통해 박근혜 정권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선택하지 않았다.

수백명의 무고한 목숨이 진도앞바다 한 복판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박근혜 정권이었는데도 민심은 혹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보다 새정치연합에 대한 불신이 더 컸다. 무능한 정권보다 더 무능한 야당이 된 것이다.

   
나경원 새누리당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당선자의 유세 장면.
ⓒ연합뉴스
 
새정치연합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것인가. 이번 7·30 재보선이 시작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평가가 많다. 국회의원 배지라는 권력을 두고 아귀다툼을 벌이게 한 것이 야권 붕괴의 신호탄이었다. 새정치연합은 최대 전략지역이었던 서울 동작을에 기동민 후보를 공천하면서 ‘동지를 배반하게 한 공천’이라는 오명을 낳으며 세월호 참사와 잇단 인사참사라는 최악의 국정운영을 견제해야할 시급한 시기에 신뢰를 잃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광주 광산을 공천은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호남에는 새정치가 아무나 공천하면 다 된다고 여기는 오만한 집단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을 뿐 아니라 권은희 스스로도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의 양심적 내부고발자로서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공천을 둘러싼 복마전은 결국 사상 첫 새누리당의 전남지역 의석 확보라는 이변을 낳았다. 이정현이라는 정권 실세의 성공 가능성 만큼이나 서갑원 새정치연합 순천곡성 후보의 공천 역시 잡음이 많았다. 서 후보는 부적절한 '전력'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사람이었다.

막판에 나름 극적이었던 서울 동작을 지역의 단일화도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노회찬 후보는 나경원 후보를 맹추격했지만 결국 900표 차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생채기 후에 이뤄진 단일화 효과가 빛이 바래는 순간이었다. 

일각에선 공천 과정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과연 새정치연합이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거대한 기득권 세력에 맞설 능력이 있느냐에 대한 회의론이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해 여름휴가 때 사진. 사진=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은 취임 초기부터 인사파동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불법공개 사건, 시국선언에다 심지어 무고한 시민 수백명이 수장되는 실황을 전국민이 목격하고 있는데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무능하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참담한 권력집단이었다. 그런데도 새정치연합은 이런 국가비상사태에서 박근혜 정권을 대체할 만한 역량도, 이에 맞서는 순교자적 헌신과 자기희생의 진정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무슨 짓을 해도 30%는 박근혜를 지지할 것이라는 패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1년 반 동안 끌려다녔다.

이 때문에 시민들에게 야당으로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각종 파동을 겪으면서도 선거운동하는 동안 두각을 나타낸 후보도 없었다. 거물이라는 이유로 손학규, 김두관을 내세웠지만 알려진 이름만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심어준 선거였다.

이와 함께 각종 실정에도 다시 집권여당에 158석이나 안겨준 선거결과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온갖 정권의 악재에도 최악의 결과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현재의 새정치연합으로는 야권을 재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다시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환골탈태와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쇄신을 촉구하기 전에 야권 스스로 전면쇄신할 수 있도록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편에선 이런 야권의 붕괴를 틈타 박근혜 정권이 일방 독주를 펴는 것 역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3분의 2가 박 대통령을 지지해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한길(왼쪽)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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