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7. 30 재보궐선거 반란의 주인공이 됐다.

재보궐선거 15곳 지역 중 순천 곡성에서만 이겨도 여당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는 우스갯 소리가 현실이 된 것이다.

순천 곡성 지역은 가장 높은 51.0%의 투표율을 기록해 높은 투표율에 따른 유불리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지만 초방빅 접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이정현 후보는 선거 초반 최대 80%대의 득표율을 기록하더니 막판까지 50%대 아래로 득표율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세를 보이면서 최종 당선됐다. 이 후보와 맞붙은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 측은 선거 막판 역전극을 기대했지만 12시 기준(99% 개표율) 10%에 가까운 차이로 무참히 패배했다.

이 후보의 승리를 두고 벌써부터 지역주의의 높은 벽을 넘어선 역사적인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후보는 청와대 홍보수석과 정무수석을 지냈고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까지 불렸다. 그리고 예상을 깨고 깃발만 꼽으면 야당 당선이라는 호남 지역에 출마해 지역주의 타파의 기수라는 이미지를 적극 홍보해왔다.

당초 이정현 후보의 순천 곡성 지역 출마를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다. 지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얻으면 지역주의를 넘어서진 못한 아름다운 패배자로 기억될 수 있었고, 승리를 하면 호남에서 여당이 당선되는 역사적 승리라는 찬사까지 들을 것이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복심이 호남에서 파란을 일으킨다면 야당이 내세운 정권심판론도 먹혀들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한마디로 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이 후보의 호남 출마는 잃을 게 없었던 셈이다.

선거운동에 돌입하자 갈팡질팡하던 야권의 모습도 이정현 후보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광주 광산을에 출마한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서울 동작을에 전략공천하면서 허동민 전 동작을 위원장이 반발해 우정까지 배신한 당의 공천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내부고발자의 희생양이었던 권은희 후보를 광주 광산을 후보로 공천하면서 광주 시민으로부터 오히려 반발을 일으키면서 공천 파동의 거센 후폭풍을 받았다. 반면 이 후보의 출마는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 후보는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던 ‘힘있는’ 후보가 지역 예산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권력의 최전선에 있었던 전력을 희석시키면서 지역일꾼으로서 진정성을 파고들기 위한 전략을 선보였다.

이 후보가 초접전을 벌이면서 서 후보의 턱 밑까지 추격만 하더라도 여당 입장에서는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균열을 일으킨 대표주자라고 추켜세울만 했다. 그만큼 이 후보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고 그의 의미있는 득표에 기대를 걸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이정현 후보는 모든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머쥐면서 7. 30 재보궐선거 판세 분석 전체를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이정현 후보의 당선을 호남 아성을 무너뜨린 지역주의의 타파의 쾌거라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호남 지역은 정통적으로 DJ 정권 때부터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밀었는데 이정현 후보의 당선은 호남민들의 권력에 대한 기대가 여당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이 지역차별을 당하면서 소외로 인한 피해의식이 사라지지 않았고, 이 같은 지역정서가 이번 선거에서 폭발했다는 평가다. 청와대의 최측근이었던 이정현 후보가 이 같은 지역정서를 파고들면서 권력에 대한 호남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것이다.

서갑원 후보도 저녁 8시 투표가 끝나고 YTN과 인터뷰에서 "호남 사람으로서는 예산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후보가 대통령 측근 실세이고 이런 문제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 해결이 될 것인지 저를 지지하는 사람은 저를 통해서 박근혜 정권에 경종을 울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이 후보 지지를 사람은 이참에 순천 곡성에서 경제가 나아질 것인지 그러면서 투표율이 높아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
 

또한 야당에 대한 배신감도 이정현 후보의 당선으로 연결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호남을 야권의 텃밭으로만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과거에도 선거만 끝나면 지역민들을 돌보지 않았다는 감정이 분노로 변했고 이번 선거에서 표심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문제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미스터리 문제가 터지면서 야권에 유리한 표심이 반영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오히려 이런 호재를 선거에 투영되도록 막은 것이 야권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야권은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넘기면서 새누리당이 특별법을 막고 있다고 공세를 펼쳤지만 반대로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는 것은 여권보다 무능력해 보이는 야권을 부각시키는 효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도 못 미덥지만 야권이 정권 심판론만 외치면서 '공천 파동만 일으키고 뭘 했느냐'는 목소리가 표심에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특히 선거 전체 판세로 볼 때 여권은 단일화연대 실패라는 '레토릭'을 무기로 활용한 것이 야권의 무능정권 심판론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선거는 범야권연대가 아닌 3곳에서만 지역별 후보 단일화를 이뤘지만 단일화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 오히려 정치 신인을 내세운 새누리당 후보가 거물급 야권 후보보다 주목을 받고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야권연대 실패 vs 정권심판론'이라는 구도 속에서 이정현 후보의 순천 곡성 출마는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표심으로 반영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이번 순천 곡성 지역 선거 결과는 이정현 후보가 지역주의를 타파한 것이라기 보다 여권의 전략 승리, 호남 지역의 야당 무능력에 대한 경고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일 정치평론가는 "호남이 마치 정권을 용서하고 품었다는 식의 전략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정치공학적 해석은 보수 정권의 의지가 담기고 편향적인 해석일 수 있다"면서 "보수층 일각에서 영남의 빗장을 풀지 않고 호남부터 풀어라라며 호남의 정치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이번 선거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오히려 민주당의 무능한 모습, 야권의 텃밭, 표로만 생각하는 '부정적 지역주의'에 대한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현 후보의 당선이 곧 여당 승리의 최정점을 보고 향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이 야권 무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야의 최대 쟁점인 세월호 참사 특별법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야당을 공격하는 정치적 소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영일 평론가는 "이정현 후보의 승리에 온갖 수사를 붙여 역사적 승리라고 기염을 토할 수 있는 상황이고 국정운영도 무서울 것 없이 달릴 것"이라며 "세월호 문제를 선거 결과와 결부시켜 아전인수로 덮고 갈려고 한다면 민심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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