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균씨 검거를 둘러싼 일부 종편을 비롯한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언론이 뒤늦게 자아비판을 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5일 유대균씨와 그의 ‘호위무사’로 알려진 박수경씨가 검거된 이후 채널A‧TV조선‧MBN‧YTN 등 몇몇 언론과 인터넷 매체들을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의 본질을 흐리는, 유씨와 박씨의 사생활을 중심으로 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관련 기사 : <유대균 검거, ‘호위무사 사생활’과 ‘치킨’에 열 올린 언론>)
 
이러한 언론보도에 대해 ‘기레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몇몇 기자들이 기자수첩이나 취재수첩 등을 통해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SNS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글은 이경원 SBS 기자의 취재파일 <유대균과 박수경, 그리고 신정아>였다. 이 기자는 2007년 신정아 사건을 언급하며 “청와대 간부와의 부적절한 불륜 의혹까지 뒤엉키면서 학력위조라는 사건의 본질은 어느새 뒤로 물러났다. 언론의 무게 중심은 대한민국의 학계와 정치계가 신정아라는 팜므파탈의 유혹에 어떻게 놀아났는지에 옮겨졌다”며 “언론은 그녀의 일상을 해체해 거침없이 폭로했고, 여론은 이를 날 것 그대로 소비했다. 신정아 사건은 학력위조가 만연했던 대한민국 사회의 성장통이라기 보단, 막장 드라마에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이어 “사건의 본질은 세월호인데, 이번 검거 뉴스에서 세월호란 말을 찾기 힘들다. 결국 가십으로 흘렀던 7년 전 그 사건과 너무나 닮아있다”며 “유병언과 유대균, 박수경 검거하느라 진을 뺐던 그간의 100일이, 아이들에게 미안해 미치겠다. 2015년 어느 날, ‘작년엔 대한민국이 미쳐 돌아갔어.’라는 말, 반복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 28일자 국민일보 20면
 
국민일보는 ‘친절한 쿡기자’(기자수첩) 코너를 통해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김현섭 국민일보 기자는 28일 <언론 도배한 유대균·박수경 ‘관계’… 지금 그게 왜 중요합니까>에서 “이들의 검거로 얻을 수 있는 세월호 비리수사의 방향, 유씨 일가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얼마나 제공했는지, 앞으로 수사는 어떻게 될지 등의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독자를 자극해 기사조회를 유도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며 “유대균과 박수경의 ‘관계’가 무엇인지가 규명돼야 할 진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라고 지적했다.
 
김민석 국민일보 기자 역시 30일 ‘친절한 쿡기자’ 코너에서 유대균씨가 치킨을 주문했는지 안 했는지에 집중하는 언론보도를 비판했다. 김 기자는 “종편을 비롯해 일부 언론들은 ‘뛰어난 미모’ ‘연인설’ ‘살찐 이유’ 등을 들추며 누가 더 선정적인가를 두고 겨루더니 이제는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는 내용을 크게 부풀려 ‘특종’이라고 말한다”며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은 아직도 의혹으로 남았다. 이럴 때 진실을 밝히는 특종이 터진다면 그 어느 누가 ‘기레기’라고 욕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런 언론보도가 세월호 참사를 덮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일보는 29일 사설에서 “언론의 품격을 따지기에도 민망할 지경”이라며 “언론이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능력과 의지 부족으로 돌릴 수 있을지 몰라도, 선정적 보도로 여론을 호도해 사안의 본질을 덮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에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29일자 한국일보 27면
 
한겨레는 28일 사설에서 “경찰과 검찰은 유씨가 참사의 핵심 책임자인 것처럼 요란하게 언론에 노출했다. 유병언씨 체포에 실패한 자신들의 잘못을 만회하고,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어 “언론은 무엇보다 유대균씨 등의 체포가 세월호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것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물었어야 했다. 그러기는커녕 일부 방송과 신문, 인터넷매체는 유씨와 박씨의 남녀관계 따위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 보도만 쏟아냈다”며 “이런 식의 선정 보도는 언론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자해일뿐더러 언론이 추구해야 할 진실을 되레 흐리는 범죄적 행위”라고 질타했다.
 
‘자아비판’에 해당하는 비판도 있었다. SBS 8뉴스는 29일 한 꼭지를 할애해 선정적 보도를 비판했다. 앵커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유 씨 일가가 세월호 침몰에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냐는 것 하나 뿐”이라고 말했다. 리포트한 기자는 “박 씨의 사생활까지 들추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선정적 보도가 이어질수록 검찰 수사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렸다”며 “유병언 씨 일가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는지 확인하고, 세월호 참사 수습에 쓰일 유 씨 일가 차명 재산을 찾는 일만이 검찰 수사의 남은 과제이고 문제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 29일자 SBS 8뉴스 갈무리
 
하지만 SBS 보도도 ‘본질을 흐리는 보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종편만큼 기사를 쏟아내진 않았지만 박수경씨의 얼굴이 드러난 검거와 압송장면 등을 여러 차례 내보냈다. 26일 8뉴스는 <도피 도운 박수경은…태권도 6단 ‘그림자 경호원’>에서 박수경씨의 이력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도 비슷한 경우다. 중앙일보의 양선희 논설위원은 30일 칼럼 <언론부터 정신 차리자>에서 ‘일부 종편 뉴스’의 일컬어 “황색언론을 하려면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정론 뉴스인 양 탈을 쓰고 황색언론을 지향하는 건 반칙”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중앙일보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앙일보는 28일자 2면 기사에서 유대균씨가 치킨 배달을 했지만, 배달은 받은 건 유씨가 아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치킨 논란’에 동참했다. 같은 날 3면 기사에서는 박수경씨 남편과 인터뷰를 내보내며 이혼여부 등 박씨의 사생활을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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