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이 하나의 관용구가 됐다. 하지만 언론이 세월호라는 재난 앞에 갑자기 ‘기레기’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이 그간의 ‘적폐’였듯이, 언론 역시 서서히 침몰 중이었다. 언론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출입처의 보도자료를 받아썼고, ‘취재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슬픔에 찬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곤 했다.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방송 뉴스 바로 하기>는 언론인들을 기레기로 만든, 구조적 적폐들에 관한 책이다. 방송기자연합회는 2012년 저널리즘 위기의 실상과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저널리즘 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방송뉴스의 7가지 문제점과 그 사례들을 연구했다. <방송 뉴스 바로 하기>는 그 결과물이다.

첫 번째 문제점은 ‘사실관계 부족’이다. 성급한 추측보도, 무비판적 인용보도, 일방적 주장 전달, 익명의 취재원 의존 등이 대표 유형이다. 속보 경쟁과 출입처 동화, 시청률 경쟁 등이 팩트가 없는 기사를 만든다. 세월호 참사 당시 쏟아진 ‘전원구조’ 오보 등의 각종 오보가 대표 사례다.
 
두 번째 문제점은 ‘정치적 편향’이다. 흔히 ‘물타기’라 불리는 아젠다 바꾸기와 특정 정파를 낙인찍는 보도, 보도 축소 및 누락 등을 뜻한다.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이슈가 됐을 때 NLL 대화록 유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 등의 이슈가 연달아 터졌다. 몇몇 언론들은 이 국면에서 특정 세력에게 불리한 이슈에는 침묵한 채, 특정 세력에게 유리한 이슈는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세 번째 문제점은 광고주 편향이다. 기업을 홍보해주거나 광고주 돈으로 외유를 떠난 뒤 쏟아지는 수많은 기사들이 그 사례다. 네 번째 문제점은 출입처 동화다. 대통령의 휴가 모습과 해외순방을 ‘미화’하는 수많은 기사들이 대표적이다.

다섯 번째 문제점은 방송사 입장을 대변하고, 홍보하는 ‘자사 이기주의’ 보도다. KBS 수신료 인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KBS가 어떤 보도를 하는지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 방송 뉴스 바로 하기 / 방송기자연합회 지음 / 컬처룩 펴냄
 

여섯 번째 문제점은 말초적 사건 사고와 선정적 소개, 그래픽 남발 등으로 대표되는 ‘시청률 집착’ 현상이다. 채널A와 TV조선, MBN 등 종편들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유대균씨에 대해 보도하며 ‘세월호 참사 책임’와 같은 본질적 문제가 아닌 여자관계나 용모 특성 같은 가십거리에 집중한 것이 대표 사례다.

일곱 번째 문제점은 ‘관습적 기사 작성’이다. 업계 홍보 기사나 분량 채우기 기사로 전락한 무의미한 스케치보도나 계절마다 반복되는 추위와 더위 관련 기사들이 대표 사례다. 이런 기사들이 진짜 중요한 보도를 뒤로 밀어내는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7가지 적폐들의 사례가 대부분 최근 보도내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쁜 사례’들을 찾기 너무 쉬울 정도로 적폐들이 우리 주변에 쌓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적폐들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원인은 거의 공통적이다. 첫 번째 원인은 다매체‧다채널 상황에서 심화되는 경쟁 환경이다. 채널은 갈수록 많아지고, 언론은 뉴스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보도로 경쟁한다. 

두 번째 원인은 점점 심해지는 ‘권위주의적 언론통제’다. 한림대 심훈 교수가 2013년 말 한국 방송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10점 만점에 6.49점, 6.36점을 기록했던 KBS와 MBC의 공정 보도에 대한 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각각 3.17점과 2.91점,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3.24점과 2.87점으로 크게 떨어졌다. 국경없는 기자회나 프리덤하우스의 언론자유 평가 지수도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경쟁 심화와 보수정권의 언론통제가 ‘종편’이라는 괴물의 탄생으로 집약됐다. 

외적 요인 말고 내적 요인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 내몰리거나 혹은 순응한 기자와 보도국 조직의 저널리즘 윤리 의식 부족이다. 7가지 보도의 문제점은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이 겹쳐서 발생하는 고질적 문제점이다. 

이 책을 읽고 혹자들은 “이런 게 문제점인 줄 누가 모르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니냐”라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쏟아지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 기본이 안 된 보도들은 속보경쟁과 언론통제에 내몰린 많은 기자들이 보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잊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급하고 어려울수록 기본을 지키고 인지해야한다는 점, 그것이 <방송뉴스 바로하기>가 던지는 메시지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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