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때, 가장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해야 할까. 가자지구에서는 날마다 팔레스타인의 민간인들이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죽어가는 지금,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막무가내로 국가 개조만 부르짖고 있는 지금, 스카 웨이커스의 첫 정규 앨범 [Riddim Of Revolt]는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음악이라고 해야 할까.

두 장의 시디에 나눠 담은 곡은 무려 21곡. 그 중에는 “Wake Up", "평화”, “평등한 자유”라는 표현만이 아니라 “모든 전쟁은 자본의 논리라는 걸 / 미친 자본가의 욕망 속에서 우린 죽어간다는 걸 / 그래 우린 모두 다 알지 / 결국 사회구조를 바꿔야만 한다는 걸 / 온 민중이 대항해 / 혁명을(‘우린 모두 다 알지’)”처럼 직설적이고 비판적인 노랫말이 번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신공주를 구원하소서 / 자본의 번영과 국가의 안녕엔 반드시 독재가 뒤따라야만 하니 / 하늘이시여 우리의 수첩공주를 지켜주소서('God Save The Princess')"나 ”MB is Shit"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Shit'도 만만치 않다. 현실 참여적이고 저항적인 노랫말이 다수는 아니지만 가사의 강도는 우리가 흔히 민중가요라고 부르는 음악들과 비교해보아도 결코 약하지 않다. 무척이나 강도 높은 비판이고 표현의 수위도 높은 비판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민중가요 진영에서만이 아니라 인디 신에서도 사회적 의제에 참여하고 현실의 문제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늘었는데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들은 그 가운데 어느 뮤지션의 음악보다 표현의 강도가 세다. 그래서 이렇게 급진적인 음악이 민중가요 진영의 바깥에 출현했다는 것부터가 굉장히 유의미한 사건이다. 이제는 민중가요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적 근거가 거의 상실되어버린 현실에서 민중가요 진영의 문제의식을 이어받는 뮤지션이 등장했다는 것은 민중가요 운동과 진보적 대중음악의 접점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지점이다.

   
▲ 스카 웨이커스 (이광혁(드럼), 정세일(보컬, 퍼커션), 이종현(베이스), 최정경(색소폰), 박재영(키보드), 천세훈(트럼펫), 안병용(기타), 이준호(트럼본))
 
그러나 음악은 단지 가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스카 웨이커스가 의미 있는 비판을 했다는 것만으로 호평을 하기는 어렵다. 과거에도 일부 민중가요들이 정치적으로는 올바른 가사를 담았음에도 음악적으로는 매우 관성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민중가요를 형식화해버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좋은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좋은 메시지가 정서적으로 수용될 수 있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음악은 어쨌든 음악다워야 한다. 거칠어보이는 몇몇 민중가요들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불리는 것도 역시 그 음악이 듣는 이들을 감동시키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은 메시지의 진보성만이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힘이 있다. 스카와 레게 등의 중남미 음악을 주로 구사하는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은 스카 음악의 자유분방한 에너지와 그들이 추구하는 해방의 가치가 투박하지만 열정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들의 음악은 섬세하거나 정교하지는 않다. 그 대신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에는 싸우는 현장만이 아니라 신나게 어울리는 현장에서 느껴지는 다급함이 있고, 생동감이 있고, 열정이 있다. 그 다급함과 생동감과 열정을 진정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현장성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스카 웨이커스 음악의 온도는 단지 비판의 강도만으로 뜨거운 것이 아니다. 보컬의 목소리는 노래가 구호가 되는 순간이건, 고백이 되는 순간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끄집어 내는 듯 진솔하고, 보컬을 아우르는 밴드의 연주 역시 라이브 연주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서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은 듣는 순간 듣는 이의 이성과 감성으로 곧장 치고 들어온다. 멋 부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오면서 듣는 이를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음악은 자메이카의 스카와 레게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게 만든다. 그 곳에 가본 적도 없고, 그 곳에서 직접 스카와 레게를 들어본 적도 없기에 지금 그 곳에서 스카와 레게가 어떻게 생산되고 향유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이야말로 지금 이 곳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친근한 태도로 스카와 레게를 생산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에는 생생한 에너지가 넘쳐난다. 분명 그 곳에서도 저자거리의 음악이고, 가진 사람보다는 없는 사람의 음악이었을 스카와 레게가 이렇게 2014년 한국에서 살아가고 싸우는 이들의 언어가 되었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 스카 웨이커스 정규 1집 ‘Riddim Of Revolt’
 
단지 정치적으로 신랄한 비판과 날카로운 문제의식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카와 레게가 담지하고 있던 공동체성과 신명, 낙관, 비판 정신 같은 것들이 각각의 음악으로 충분히 담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앨범을 시작하는 에서부터 강한 리듬감과 또렷한 멜로디로 빚어내는 스카와 레게 음악에 담뿍 젖어들게 된다. 완전히 새로운 어법을 보여주는 곡이 많지 않고 기존의 스카와 레게 음악과 비슷한 곡들도 적지 않지만 음악에 기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전이시키는 곡들의 향연은 만족스럽다. 특히 앨범의 전반부 첫 곡에서 세 번째 곡 <어화둥둥 내 사랑>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활기와 의 록킹한 반복, 덥 믹스를 시도한 의 사이키델릭한 질감은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적 패기와 저력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들의 비판정신은 외부의 권력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까만 자동차를 갖고 싶”은 자신과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과 소통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리고 스카 웨이커스는 진보적인 메시지만을 노래하는 팀이 아니다. 이들의 노래 속에는 사랑의 설레임이 있고, 이별의 슬픔, 쉼과 자유에 대한 갈망 역시 함께 표현되어 있어 스카와 레게가 여느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두 장의 시디로 내기보다는 수록곡을 엄선해서 한 장의 시디로 담았어도 좋았겠지만 스카 웨이커스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스카 웨이커스는 이제 이미 그러했듯 이 음악들과 함께 서울과 청도와 밀양과 강정으로 바쁘게 오갈 것이다. 그 곳에서 이 노래는 여전히 짓밟히며 피울음 울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흥이 되고 웃음이 될 것이다. 반드시 그 곳에서가 아니더라도 이 더운 여름을 함께 나도 좋을 음악은 유쾌하고 신나지만 이왕이면 이 음악을 듣는 이들이 음악을 들은 이후를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음악을 듣는 이들이 이미 뉴스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을 음악으로 재확인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이런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스카 웨이커스의 음악적 발언은 온전히 우리에게 닿지 못한 것이다. 음악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만큼 필요한 것은 음악을 들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음악을 만든 스카 웨이커스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 민중가요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것도 그 노래를 들은 이들이 음악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음악부터 그 이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음악을 애써 찾아 들은 이들이라면 이미 그 정도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중음악평론가 차우진이 이 앨범의 리뷰에서 먼저 던진 질문을 받아 곱씹어 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분명 어떤 위기 앞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애써 보지 않으려 해도 우리의 발밑부터 무너지고 있는 오늘, 우리는 누구도 안녕하지 않고 무사하지 않다. 음악만큼의 고민과 음악만큼의 행동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오늘이다. 음악의 흥과 열기가 광화문 광장에서, 국회에서, 강정에서, 청도에서, 밀양에서 우리 손으로 재현되기를. 언젠가는 청와대 안까지 거침 없이 밀려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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