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요소 중 으뜸은 어떤 부모를 만나는가이다. 외모가 출중하고, 지력이 뛰어나며, 좋은 직업을 가진데다 자산까지 많은 부모를 만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부모를 만난 사람 보다 순탄한 인생을 살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물론 외모가 출중하고, 지력이 뛰어나며, 좋은 직업을 가진데다 자산까지 많은 부모를 만나는 일은 매우 희귀하다. 기실 외모, 지력, 자산 중 한 가지만 지닌 부모를 만나도 대단한 행운이다. 외모, 지력, 자산 중 하나만 제대로 갖춰도 세상살이가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노력은 중요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어쩌면 노력 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노력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재능과 합법적으로(혹은 불법적으로)상속 받을 자산에 비해 열위하다. 피나는 노력을 해본 사람은 안다. 노력만으로 재능과 자산을 싱대하기가 얼마나 버거운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을 해서 그럭저럭 살 수 있는 때라면 선천적인 재능과 합법적인(혹은 불법적인)상속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평범한 부모를 만나 시시한 재능과 보잘 것 없는 자산을 상속받은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게 가능한 시대라면, 질병과 실직과 자녀교육과 노후라는 관문들을 요행히 통과할 수 있는 시절이라면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자들의 행운이 그리 시기할 일이 아닐 것이다.

불행히도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산업구조의 획기적 재편으로 말미암아 노동 없는 저성장이 경제의 지배적 패턴이 되었고,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인해 노동력과 상품이 도처에 넘쳐난다. 이제 불완전 고용은 글로벌 경제의 상수다.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응당 필요한 일이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높은 보수와 고용의 안정성을 겸비한 좋은 일자리는 빠르게 줄어들 것이고, 잔존하는 좋은 일자리는 전자기술과 기계가 대체할 수 없거나 대체하기 어려운 구상노동 위주일 것이다. 노동에 비해 자본의 힘이 훨씬 센데다 글로벌 노동력이 과잉공급상태라 노조도 힘을 쓸 수 없다.

결국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 뿐인, 그것도 대체가능한 노동력 뿐인,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처지에 몰린 사람들의 선택은 크게 세 유형으로 수렴된다. 각개약진, 불만과 분노의 정치적 조직화를 통한 대안 마련, 자살 혹은 범죄. 말할 필요도 없이 불만과 분노의 정치적 조직화를 통한 대안 마련이 최적의 그리고 유일한 해법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사회적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창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급하는 기본소득(Basic income) 등의 정책패키지를 제시하는 정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어 근심과 불만과 분노를 해소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재능도, 물려받은 자산도 없는 사람들이 살 길이 있을까 싶다.

좋은 말인데 재원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비범한 재능과 엄청난 자산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행운아들의 운(fortune)을 골고루 나누면 된다. 자산 가운데 부동산과 주식 같이 운의 성격이 아주 강한 자산부터 우선 중과세하고, 운(재능)과 노력이 혼재된 근로소득에 차츰 중과세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부자 아빠를 둔 건 일생일대의 행운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을 얻지 못해도 시민 대다수가 인간적 존엄을 누리며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우리가 지향할 사회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특유의 역동성과 신분이동의 가능성이 격감하고, 중세 봉건사회를 연상케하는 부와 신분의 세습이 일상이 된 지금 부자 아빠를 두지 못한 걸 한탄하는 태도를 가지고는 자기 앞가림조차 하기 힘들다.

( 이 칼럼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칼럼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