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 대한민국 언론도 같이 침몰했다. 히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침몰 앞에서 자기반성하는 언론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방송된 KBS <파노라마> ‘세월호 참사 100일 기획 2편 : 고개 숙인 언론’은 신뢰 잃은 언론에 대한 자기 고백과 반성을 담았다.

언론의 침몰은 세월호 침몰과 닮아 있다. 언론은 갑자기 침몰한 게 아니라 서서히 침몰하고 있던 중이었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취재가 더 중요해’라는 이유로 피해자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 죽은 이의 일기장을 뒤져서 보도했다. 언론 보도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는 예전부터 있었다. 구조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문제제기하는 기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다 결국 침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기자들은 비참할 정도의 적대를 겪어야 했다.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고, 멱살을 잡히는 등 세월호 유가족들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았다. <파노라마> 속 기자들은 몸으로 겪은 불신감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세월호를 취재는 기자 생활의 위기였다”(곽선정 목포KBS 기자) “기자라는 존재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외면 받고 손가락질 받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이동근 KBC 광주방송 기자) “어딜 가서 기자라고 했을 때 배타적인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항상 관대했고 아니면 (우리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번엔 적대적이고…”

파노라마는 세월호 참사 때 언론이 보여준 모습, 즉 신뢰를 잃은 이유를 솔직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그 분석대상에는 KBS도 빠지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오보 남발이다. 언론사들은 속보경쟁에 빠져 확인되지도 않은 ‘전원구조’ 오보를 남발했다. 심지어 현장에서 ‘전원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는데도 버젓이 뉴스로 보도된 경우도 있었다.
 

   
25일자 KBS 파노라마 갈무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라는 건 빠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지만 일단 급하니까 확인 안 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타사의 보도를 쫓아서 기사화하자는 부분들, 이런 부분들에 현장 기자로서 무력감을 느꼈다”(곽선정 목포KBS 기자)

두 번째, 방송 카메라는 현장을 담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뉴스로 전해지지 않았다. <파노라마>는 뉴스에 공개되지 않았던 4월 16일 영상을 공개한다. 목포KBS 카메라가 해경의 협조로 촬영한 사고해역의 모습이었다. 해경구조선들은 대기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구조작업을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를 목격하고 항의했다. 하지만 언론은 ‘입체 수색’ ‘헬기 15대 투입’ ‘200명 가용전력 모두 투입’ 등의 표현을 써가며 대대적인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그 인원들은 구조에 나선 인력이지 실제 잠수인력은 아니었다. 생각을 달리 했다면 정부와 해경 발표를 전하고 실제 잠수 인력은 몇 십명에 불과하다, 이건 팩트이기에 이 사실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아쉽다”(강나루 KBS 기자)

기사는 정부 브리핑룸에서 나왔다. 수백대의 카메라와 기자가 있었지만 똑같은 화면과 정부 발표만 나왔다. “정부의 소스 자체도, 정보취합과정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수습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이나 실종자 가족에게서 나오는 정보와 비교해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는데 부족했다”(정윤섭 KBS 기자)

<파노라마>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는 계속됐다”며 언론 보도를 반성했다. <파노라마>는 “가짜 잠수사가 뉴스에 등장하기도 하고, 희생자와 그 가족에 대한 예의와 인권 무시한 무례하고 선정적인 보도도 잇따랐다”며 “일분 언론사의 부적절한 인터뷰 질문과 검증되지 않는 장비의 성능을 부각한 보도도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피해자들 마음 헤아리지 못한 무리한 취재, 그것은 취재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듯 여겨져 온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례 중에는 ‘시신이 뒤엉켜 있다’는 KBS의 오보도 포함돼 있다.
 

   
25일자 KBS 파노라마 갈무리
 


언론이 비판받는 또 다른 지점은 대통령과 정부 비판에 인색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를 방문하던 날 KBS 뉴스는 현장의 항의 분위기를 전달하지 못했다. 4월 29일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사과한 내용은 톱 뉴스로 전했지만 이에 대한 유가족 반응은 뉴스에 없었다.

<파노라마>는 객관적인 데이터까지 제시했다. 지상파 3사와 YTN, JTBC의 저녁 메인뉴스의 1달 간 세월호 관련 뉴스를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사건을 단순 전달하는 보도가 30%로 가장 많았고, 뉴스의 정보원은 정부기관이 49.6%로 가장 많았다. 정부발표에 의존한 뉴스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KBS와 MBC는 선원과 선사의 부실대응에 주목한 반면 JTBC는 정부의 부실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유가족 관련 보도를 할 때도 KBS는 미담 사례 발굴에 주력한 반면 JTBC는 유가족 입장을 전하는 데 치중했다. 종편인 JTBC가 왜 공영방송 KBS보다 더 많은 신뢰를 받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파노라마>는 마치 성역이 없다는 듯 자사의 보도를 비판했다. 시사다큐프로그램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문제점을 짚지 못했다는 대목에서는 <파노라마>의 4월 29일자 방송이 등장한다. “주류언론의 틈바구니 속에서 독립언론이 눈길을 끌었다”며 KBS를 그만두고 나간 기자들이 활동하는 <뉴스타파>를 소개한다. <파노라마>는 이어 김시곤전 보도국장의 사과로 촉발된 KBS 사태와 길환영 사장의 사퇴, 청와대의 보도개입까지 비판적으로 전한다.

세월호 참사 100일 특집으로 만든 <파노라마>는 KBS 구성원들의 방송 독립성에 대한 의지가 드러난 집약체라 볼 수도 있다. 자사의 언론보도는 물론 타사의 언론보도, 나아가 정부의 보도개입 문제까지 성역없는 비판을 하며 공영방송이 공영방송의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메시지까지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25일자 KBS ‘파노라마’ 갈무리
 

하지만 쉽사리 높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한 가지 우려 때문이다. 길환영 사장이 물러난 이후 공백이었던 KBS에 조대현 사장이 들어왔다. <파노라마>의 방송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KBS의 상황 덕분은 아니었을까. 해방구 같았던 ‘서울의 봄’은 끝나고 KBS가 길환영 시즌2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파노라마>에 등장하는 한 세월호 유가족은 KBS를 향해 “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갔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진실을 밝히는 데 함께 해달라”고 말한다. KBS가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 서울의 봄이 민주화로 이어질 지 아니면 독재로 이어질 지는 KBS 구성원들에게 달려 있다. 그 이후에야 <파노라마>는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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