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다음 주 8월 초부터 여름 대중음악 페스티벌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포문을 여는 것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다. 8월 1일 금요일부터 3일 일요일까지 인천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리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매주 다른 페스티벌이 연달아 열릴 예정이다. 8월 9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2014가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고, 8월 14일 목요일에는 슈퍼소닉 2014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슈퍼소닉이 끝나자마자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페스티벌이 이어진다. AIA 리얼라이프 나우 페스티벌 2014이다. 8월 15일 금요일과 16일 토요일 이틀간 똑같은 장소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 록 페스티벌도 8월 8일 금요일부터 10일 일요일까지 부산 삼락 생태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페스티벌의 숫자로만 보면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이다. 지난해 처음 열렸던 지산월드락페스티벌이 흥행 실패로 1년만에 중단되고, 안산밸리록페스티벌이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일시 중단된 대신 AIA 리얼라이프 페스티벌이 새로 열리면서 숫자상으로는 다섯 개의 페스티벌이 이어지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페스티벌 팬들의 분위기는 예전처럼 뜨겁지만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라앉은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겹친 때문일 것이다. 먼저 올해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예년만큼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 부분이 있다. 펜타포트에는 이승환, 카사비안(Kasabian), 트래비스(Travis)가 헤드라이너이고, 시티브레이크에는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마룬 파이브(Maroon 5),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 싸이(Psy)가 헤드라이너로 예정되어 있으며, 슈퍼소닉에는 퀸(Queen), 피닉스(Phoenix)가 헤드라이너로 배치되어 있다. AIA 리얼라이프에는 레이디 가가(Lady Gaga), 싸이(Psy), 빅뱅(Big Bang), 투애니원(2NE1)이 기다리고 있다. 유명 뮤지션들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한 두 번씩은 한국을 찾았거나 전성기가 지난 뮤지션들이 상당수이다. 새로운 뮤지션들을 페스티벌을 통해 보고 싶었던 음악팬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맥 빠지는 라인업이 아닐 수 없다. 일부 페스티벌의 경우에는 장소와 라인업이 겹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이다.

   
▲ 8월 9~10일에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가 열린다.
 
게다가 수년간 열린 여름 대중음악 페스티벌들 가운데 상당수는 라인업에만 신경을 쓰고 관객들의 편의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적지 않은 관객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 음악팬의 입장에서는 분명 적지 않은 비용을 치루고 보는 특별한 체험임에도 상당수의 페스티벌들이 교통편과 숙박 시설, 식사, 화장실 등 기본적인 시스템에서 관객들을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게 불편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겪지 않으며 음악과 함께 편안하고 즐거운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해 대중음악 페스티벌을 소비하려는 이들이 늘어나며 페스티벌 시장이 성장한 것이 분명한데 여느 휴양지나 관광지 못지 않은 상업적이고 친절하지 않은 운영을 수시로 마주치면서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이다.

공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갑자기 늘어난 페스티벌 공급의 과잉 현상 역시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는데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덕분에 일부 잘되는 페스티벌의 운영 방식을 모방하는 페스티벌이 늘어나면서 페스티벌 간의 차이가 줄었고 페스티벌에 대한 기대 역시 함께 줄어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음악팬들과 페스티벌에 관심을 가진 이들 모두가 피로감을 느끼고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매년 비슷하게 고생하게 되는 페스티벌에 갈 필요가 있는지 반신반의 하게 된 것이다. 페스티벌 시장이 성장하면서 페스티벌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이 무리하게 페스티벌을 열었다가 실패하면서 과잉된 페스티벌의 공급 과잉 거품이 조정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2006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해외 뮤지션이 온다는 것으로 관심을 끌고, 레저 문화와 결합되면서 성장한 페스티벌 시장이 재조정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라인업이 아니다. 이제는 한국의 록 페스티벌에서 초청할 수 있는 뮤지션 가장 거물급인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출연했음에도 흑자를 거두지 못한 한국의 공연 시장 규모를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페스티벌이 단순히 유명한 뮤지션의 공연을 야외의 대형 무대에서 보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페스티벌이 많은 돈을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문화상품만이 아니라는 것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 왼쪽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포스터로 8월 1일부터 3일까지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다. 오른쪽은 AIA 리얼라이프 나우 페스티벌 포스터로 8월 15일부터 16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페스티벌은 음악과 사람이 어울리는 자리이며, 음악의 가치를 확인하는 장이며, 음악의 감동적인 가치를 서로 나누는 장이다. 그래서 음악의 가치를 확인하는데 불편함이 있어서는 안되며, 음악이 증명하는 교감과 배려의 가치와는 다른 가치가 그 공간을 지배해서는 안된다. 페스티벌 장소로 향하는 셔틀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 수도 없고, 서로 자기 차를 가까운 곳에 대겠다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어 입구를 빠져나오는데 한참이 걸리는 페스티벌, 곳곳에 쓰레기가 널부러진 페스티벌, 각종 머천다이징 부스는 즐비한데 편안하게 쉴 공간 하나 없는 페스티벌은 페스티벌이 아니라 그냥 음악으로 돈 벌이를 하겠다는 거대한 매장일 뿐이다.

페스티벌에는 새로운 음악적 발견이 있어야 하고, 서로에 대한 말없는 배려와 존중이 있어야 한다. 그 배려와 존중은 단지 관객들만이 아니라 페스티벌 공간인 자연과 음악 생태계, 그리고 현재의 사회로도 이어져야 한다. 페스티벌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과거의 페스티벌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페스티벌을 통해 더 성숙하고 더 열려있으며 더 풍부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지 못하는 페스티벌이라면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올해 열리는 페스티벌들은 현재까지의 대중음악 페스티벌과는 다른 패러다임과 철학으로 페스티벌의 축제성과 시스템, 가치 등을 재정립하며 페스티벌 문화와 시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더 이상 규모와 라인업만으로 관객을 끌려는 페스티벌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교통편이나 음식 부스, 화장실 등의 시스템에서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더 많은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야외 페스티벌에서 실내 도심형 페스티벌로 바뀌어가는 페스티벌의 변화 역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 부디 10년이 되어가는 한국의 여름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올해에는 조금이라도 새롭게 업그레이드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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