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금수공화국(禽獸共和國)

국회해산! 정권타도! ③

박문수가 유리창 너머로 탈각장 안의 시신들을 살펴보고 있다. 그 옆에 서 있는 박기보가 손가락으로 고창댁의 시신이 어디쯤에 있는지 위치를 가르쳐 주는 듯 했다.

“어머니!...어머니!...어엉어어!...엉어어어!...”

어머니 시신의 위치를 확인한 듯한 박문수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오열을 쏟아내던 그가 미닫이 창문의 창틀을 좌우로 힘껏 밀쳤다. 출입이 통제돼 있는 출입구 대신 창문을 통해 탈각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안에서 잠근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박문수는 불끈 쥔 오른손 주먹으로 유리창을 탕탕 쳤다. 여차하면 유리창을 깨버릴 태세였다. 그런데 박문수의 주먹질은 금세 멎었다. 박기보가 그를 제지했기 때문이다. 박문수가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어엉어어!...엉어어어!...어머니!....어머니!...”

어머니의 시신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서럽고 한스러운 모양이었다. 박문수의 등 뒤엔 3명의 누나와 2명의 매형이 서있다. 그들 역시 굳게 닫힌 유리창을 통해 탈각장 안에 있는 고창댁의 시신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그 뒤에 서있는 임영범도 펑펑 눈물을 쏟아 냈다. 아버지 임사공의 시신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처지라서 어쩌면 그도 박문수 못지않은 슬픔과 한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사장님, 그 총 얼른 좀 돌려주세요!”

탈각장 왼쪽의 자갈밭에 M1소총 개머리판을 깔고 앉아 있는 이순신에게 전경 한 명이 통사정을 했다. 총을 빼앗긴 그 전경이다. 이순신이 입에 물고 있던 절반쯤 피운 담배를 자갈밭에 신경질적으로 내던지며 버럭 화를 냈다.

“니미럴 고 새끼 참 사람 성가실키허네 잉! 내가 새꺄 아까 말혔잖여! 김 순경 고 새끼가 출입굴 개방허믄 이 총을 돌려주고, 개방을 안허믄 그땐 씨발 오함마로 쳐서 이 총을 뿌숴 버린다고!”

“그으 그러시면 저 영창 갑니다. 그으 그러니 그만 화를 푸시구요. 얼른 제 총을 좀 돌려주십시오. 사아 사장님, 제발요!...”

전경은 울먹이며 애원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총을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눈을 감고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러자 울상이 된 전경은 발만 동동 굴렀다. 한 참 뒤, 김 순경이 돌아왔다. 김 순경이 탄 오토바이가 다가오자 이순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잰걸음을 쳐서 달려들더니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김 순경의 멱살을 낚아챘다.

“야 이새꺄, 너 어찌기 됐어? 허락을 받었어, 못 받었어?”

“형님, 허락을 바앋...받어 냈으닌까요. 이 이 소온...손 좀 어서 놓으세요!...”

이순신이 멱살을 풀자 김 순경은 갖은 인상을 쓰며 숨을 헐떡거렸다.

“엄살 고만 피우고 언능 기어가서 저 문을 따라고 새꺄! 씨발 개머리판으로 니 대갈통을 콱 빠개벤지기전에!”

이순신이 M1소총을 거꾸로 쳐들고 개머리판으로 위협하자 김 순경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김 순경이 출입문의 자물쇠를 풀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창댁의 유족들이 탈각장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임영범과 김 순경도 그 뒤를 따랐다.

“얌마, 너 일로 좀 와봐라 잉!”

노심초사하며 이순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던 전경이 다가왔다.

“총 여깃다!”

약속했던대로 이순신이 총을 돌려주자 그 전경의 굳었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정말 미안허다! 니가 미워서 그런게 아니고 씨발 이 나라가 개X같어서 그맀응께 나 좀 이해해주라 잉!”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총을 건네받은 전경은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면서 인사를 했다. 이순신은 힘을 내라는 듯 오른손으로 그 전경의 왼쪽 어깻죽지를 가볍게 친 다음 탈각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엄마!...장모님!...어엉어어!...엉어어어!....”

박기보가 고창댁의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씌워져 있는 흰색 천을 살짝 벗겼다. 죽은 고창댁의 싸늘한 얼굴이 드러나자 자식과 사위들의 대성통곡이 시작됐다. 그들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울부짖음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만큼 크고 요란했다.

올해 나이 쉰아홉인 고창댁의 친정은 고창군 해리면 동호해수욕장 근처의 바닷가 마을이다. 그미는 스무 살 때 위도로 시집을 왔다. 어부였던 백부(伯父)가 중매를 섰다. 육지의 처녀와 섬의 총각이 맞선을 본 뒤 결혼하기까지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박기보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칠산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어선이 전복되는 바람에 이승을 떠났다. 그 때문에 박기보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남인 박기보에게 시집온 고창댁은 신혼 초부터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병치레를 많이 했다. 50대 중반엔 중풍으로 쓰러졌다. 이 때문에 그미는 10년 가까이 자리보전을 하던 시어머니의 똥오줌을 받아내며 병구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효성으로 그미는 부안군청에서 주는 효부상을 받은 바 있다. 효심이 지극했던 그미는 자식 농사도 잘 지었다. 남편 박기보를 도와 작은 멸치잡이 어선을 운영하면서 1남3녀를 반듯하게 키워냈다.

그미 보다 네 살 위인 박기보는 5년 전에 멸치잡이 어선의 운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그 뒤 0.5톤급 해태채취선 한 척을 장만했다. 겨울에는 남의 집 김양식장에 나가 품삯을 받고 일을 했다. 늦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주로 주낙과 손낚시로 물고기를 잡았다. 우럭, 광어, 농어 등 고급 활어는 가격이 비싸 벌이가 괜찮았다.

다른 위도의 아낙들처럼 고창댁도 젊어서는 많은 고생을 했다. 그렇지만 멸치잡이 어선을 팔아넘긴 뒤로 그미의 심신은 아주 편해졌다. 가난한 어부의 딸로 태어난 그미는 결혼 전까지 궁핍하게 살았다. 시댁 역시 가난해서 결혼 후에도 이를 악물고 궁색한 살림살이를 꾸려야 했다. 그 때문에 거의 일평생을 막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50대 후반에 들면서 사정이 좀 달라졌다. 진일과 마른일을 가려서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윤택해졌다.

그런데 올 봄에 친정어머니가 중풍을 맞았다. 전주에 있는 J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다. 거의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팔순 노모의 병문안을 벌써 일곱 차례나 다녀왔다. 어제 아침 그미가 서해훼리호를 타고 격포로 나가려고 한 것도 순전히 친정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미는 지난 추석 연휴 때 친정어머니를 찾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제 전주로 병문안을 가려고 나섰던 것이다. 그미는 기왕 뭍으로 나들이를 나서는 김에 손수 농사지어 말린 고추 다섯 자루를 서해훼리호에 실었다. 부안읍에 있는 방앗간에 들러 고춧가루로 빻을 참이었다.

“엄마, 눈을 좀 떠보소! 우리가 왔응께 눈을 좀 떠보란 말이네! 여기 영숙이도 왔네! 미숙이도 오고 문수도 왔네! 안 서방도 오고 배 서방도 왔다구! 이런 누추한데 누워 있지 말고 얼른 일어나 집으로 가잔말이네! 엄마, 얼른 눈 좀 떠 보라구요! 엉어어어...어엉어어어!...”

큰 딸 박성숙이 어머니 고창댁의 얼굴을 매만지며 이렇게 울부짖었다. 둘째 딸 박영숙은 고창댁의 손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평생 일만하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 내 후년에 환갑잔칠 해드릴려고 자식들이 돈을 모으고 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면 어떡해! 엄마, 얼른 일어나소. 환갑도 못넘기고 돌아가시면 어떡허냐고! 엉어어어...엉어어어!...”

셋째 딸 박미숙은 또 다른 사연으로 울부짖었다.

“엄마, 어제 아침에 내가 전화로 그랬잖어! 꿈자리가 이상허면 제발 객선을 타지 마시라구! 그렇게 신신 당불 했건만 왜 객선을 탔냐구요? 외할머니 병문안이야 천천히 가도 되잖아! 날씨도 좋지 않고, 꿈자리도 나쁘다며 왜 객선을 탔는지 엄마, 대답을 좀 해보란 말야! 어서 일어나서 대답을 좀 해보라구요! 엉어어어...어엉어어!...”

큰딸 박성숙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박문수는 고창댁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부짖었다.

“어머니!...어머니!...흐윽!...어머니!...엉어어어!...어엉어어!...”

박문수의 등뒤에 서있는 두 명의 사위도 오열을 쏟아냈다.

“장모님!...흐윽!...장모님!...엉어어어!...”

고창댁 유가족들의 대성통곡은 30분 이상 계속됐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이순신과 임영범은 눈물을 훔치며 속울음을 삼키고 또 삼켰다.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던 자식들의 통곡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자 박기보는 고창댁의 시신에 흰색 천을 덮었다. 시신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천을 덮어씌운 다음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탈각장 밖으로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SUV형 택시 안으로 박기보와 그의 딸 3명, 그리고 사위 2명이 들어갔다. 박문수와 임영범이 승차를 하지 않자 박기보가 창문을 열고 물었다.

“너그들은 안 갈꺼냐?”

“예 아버지! 전 여기 남아 있을께요!”

“자린 좁지만 어서들 올라타라! 피곤들 헐턴디 그만 집이 들어가서 자고 낼 아침 일찍 나오잔 말이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명색이 상준데요. 전 여기 남아서 어머닐 지킬께요. 이런데 어머닐 나두고 간다는 것이 흐으윽!...”

박기보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박문수를 바라보았다. 그런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박문수는 어두운 밤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택시가 떠난 뒤 탈각장 앞에는 이순신과 박문수, 그리고 임영범이 남았다. 출입문은 M1소총을 어깨에 멘 전경 3명과 방위병 3명이 함께 지키고 있다. 출입문 자물쇠를 잠그고 난 김 순경은 주변을 잠시 살피더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순신은 선착장 쪽으로 걸어갔다. 선착장에 뱃머리를 대는 선박들이 벌이줄을 묶는 쇠말뚝 근처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칠봉네 새만금호는 보이지 않았다. 박문수와 전경들의 몸싸움이 벌어지기 전까지 쇠말뚝에 벌이줄을 묶고 정박해 있었던 같다. 그 이후 새만금호는 격포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항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지금쯤 새만금호는 인당수 근해를 항해하고 있을 것이다. 환하게 불을 밝힌 해경 경비정과 해군 함정 등이 떠있는 서해훼리호 침몰 지점을 벌써 지나 임수도와 격포 사이의 물길을 헤쳐 나가고 있을 법했다.

졸음이 쏟아졌다. 이순신은 드러누웠다. 눈을 감고 누워 있자니 참극(慘劇)의 바다에서 실종된 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큰어머니 이춘심, 조카 조동해, 그리고 임사공과 최 선장 등 서훼리호 승무원들. 그밖에도 실종된 위도 지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들이 바다 위로 손을 내밀고 ‘나 좀 살려줘!’라고 외쳐대는 것 같아 이순신은 더 이상 눈을 감고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흐으윽!...흑흑 흐흐윽!...”

벌떡 일어나 앉은 이순신은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는 울분과 격정 때문에 그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엉어어어!...어엉어어!...”

언제 다가왔는지 박문수와 임영범도 이순신의 옆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다. 세 사람의 울음소리가 다시 파장금항의 짙은 어둠 속으로 울려 퍼졌다. 죽음의 섬 위도인들의 기나 긴 통곡과 분노의 밤이 그렇게 힘겹게 흐르고 있었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하늘엔 이지러진 그믐달이 떠올랐다. 양력 시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가을밤에 처연하게 떠있던 그믐달이 하늘에서 사라진 뒤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근래 들어서 위도인들이 단 한 번도 경험한 바 없는 낯선 통곡과 분노의 아침이 밝았다.

대한민국을 울음바다로 만든 서해훼리호 참사를 수습해 보겠다고 정부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파장금항 탈각장에서 하룻밤을 지샌 40여구의 시신을 뭍으로 옮기겠다는 수송계획을 확정지었다. 헬리콥터에 싣고 군산공설운동장으로 운구하겠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국무총리가 아침 일찍 헬리콥터를 타고 위도에 도착했다. 교통부장관과 보도진 등이 그를 수행했다. 위도면사무소 안에서는 국무총리와 교통부장관을 앞에 두고 현황보고가 진행됐다.

면사무소 밖에서는 위도 주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위도의 갑남을녀(甲男乙女)와 필부필부(匹夫匹婦) 50여 명이 한데 모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구호를 외쳤다.

“정부는 조속히 실종자를 구조하고 하루 빨리 선체를 인양하라!”

“정치권은 대참사의 수습을 빠르고 원만하게 진행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라!”

피켓을 들고 이런 구호를 외치는 위도 주민들의 눈빛은 비장했다. 그 시간, 서해훼리호 참사 현장에서는 실종자 구조작업이 개시됐다. 해군 함정 7척과 해경 경비정 10척이 투입됐다. 동원 인원은 총 98명으로 특수요원 80명과 해경 18명이었다.

오전 10시10분쯤 시신 2구가 인양됐고, 오후 3시쯤 헬기와 함정을 이용한 시신 운구작업이 시작됐다.

만 하루 동안 파장금항 탈각장 안에 방치돼 있던 40여구의 시신 중 고창댁 등 위도 주민의 시신은 군산공설운동장으로 운구되지 않고 위도 유가족들에게 인계되었다.

위도 주민의 시신 3구 중 고창댁의 시신이 먼저 탈각장 출입구 앞에 대기 중이던 용달차 뒤편의 화물칸에 실렸다. 이어서 2구의 시신도 유가족과 위도 주민들에 의해 탈각장 밖으로 운구된 뒤 또 다른 용달차에 실렸다.

위도 주민의 시신이 유가족들에게 인계돼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시점에 이르자 탈각장 일대는 눈물바다로 변했다. 탈각장 근처에 운집해 있는 4백여명의 위도 주민들은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다들 멍한 눈길로 울부짖었다. 모두들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 듯 했다.

그런 상황인데 파장금항 방파제 안쪽으로 낡은 여객선 한 척이 들어왔다. 면사무소 직원인 듯한 양복쟁이가 침몰한 서해훼리호를 대신해서 임시로 운항하는 대체선이라고 알려 주었다.

“아니 씨발! 저게 뭐여! 태양호잖여 씨부랄!”

누군가의 입에서 육두문자로 잔뜩 버무린 ‘태양호’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 태양호는 건조된 지 20년이 넘은 선박으로 서해훼리호가 취항하기 전에 파장금항과 곰소항을 오가던 정기 여객선이었다.

“씨발 저런 써금써금한 배를 타고 나가서 또 뒈지라는 것이여 뭣이여 시방!”

“폐선이나 진배읎는 태양홀 보냈다고? 어따 씨발 새끼들이 위도 사람들을 멘맛허게 보고 이러는 것 아녀!”

여기저기서 악담이 쏟아져 나왔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눈앞의 현실을 ‘내가 앞장을 서서 바꿔 보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눈이 뒤집힌 터라 누군가가 나서서 불을 댕기면 확 타오를 성싶은데도 말이다.

“지가요, 앞장을 설턴께 저 태양홀 오늘 여그 파장금항에다 수장 시킵시다! 이러고들 있지 말고 도팍을 들고 가던지 오함마를 들고 가든지 언능들 선착장으로 가장께요! 가서 씨발 저 태양홀 파장금항에 까랑쳐벤지장께요!...”

드디어 선봉에 설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다름아닌 이순신이었다. 양손에 돌멩이를 들고 앞장을 서서 나아가는 그를 따라 4백여명의 위도 주민들이 선착장으로 몰려갔다. 파장금항으로 들어 온 태양호의 뱃머리가 선착장에 닿았다.

“야 이 씨벌 새끼들아! 위도 사람들이 무신 장기판으 쫄인지 아냐, 엉!...”

이렇게 고함을 지른 이순신이 태양호 3층에 있는 조타실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그가 두 번째로 던진 돌멩이가 조타실의 유리창 한 장을 박살냈다. 그의 등뒤에 서 있던 위도 주민들도 조타실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손에 있던 돌멩이가 없어지면 주변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아 아! 위도 주민 여러분! 왜들 이러십니까? 진정들 하십시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정말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하는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위도 주민 여러분!...”

태양호 조타실 안에서 선장이 내보내는 경고 방송이었다.

“그려, 씨벌 새끼야! 갱찰에 신골혀라! 어서 신골 허라고 새꺄! 에라잇!”

태양호 선장의 경고 방송에 위도 주민들은 격노했다. 행동은 포악해졌고, 눈빛엔 살의가 가득했다. 마치 죽음을 불사한 투사들처럼. <계속>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