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대선 직후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불법 대선개입을 비판했다가 되레 국정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두고 표 전 교수는 국정원을 향해 "그러면 안돼요"라고 쓴소리 한마디를 남겨 관심을 모았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현철)는 지난 2월 국정원의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경향신문 칼럼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워터게이트에 비유한 미디어오늘 칼럼을 두고 자신의 기관을 명예훼손했다며 낸 국정원의 형사고소 사건에 대해 각하(무혐의) 처분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은 무혐의가 명백해 아예 표창원 전 교수를 불러다 조사도 할 필요가 없었으며, 본인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20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표 전 교수 고소건에 대해 지난 2월 각하 처분했다고 밝혔다. 윤 차장검사는 “국가기관이 명예훼손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혐의 대상 글이 모두 사실적시가 아닌 의견에 불과해 명백한 무혐의였다”고 밝혔다.

2월에 처분한 것이 이제야 알려지게 된 이유에 대해 윤 차장검사는 “특이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몇 달 있다가(지난주 후반쯤) 연합뉴스 기자가 물어보길래 그렇게 처리한 것은 맞다고 확인해준 것”이라며 “특별히 안알리려 했거나 일부러 알리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표 전 교수 본인에게 통보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차장검사는 “아직 정확한 것은 확인해봐야겠으나 고소할 때 표 전 교수의 주소지 기재가 안 돼 본인 주소지 통지는 안한 것으로 아는데, 실제로 안했는지는 알아봐야 한다”며 “표 전 교수에 대해서는 아예 조사 자체를 안했다. 본인에게 연락을 안해봤다”고 말했다. 그는 각하 판정을 한 이유에 대해 “고소장 자체가 범죄행위 인정이 안되거나 수사가치가 없을 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자 표창원 전 교수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국정원의 행태를 비판했다. 표 전 교수는 “당시 원세훈 휘하 국정원이 감찰실장이라는 개인을 시켜 제게 명예휘손 고소를 제기하도록 한 것은, ‘국가기관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판례를 교묘하게 악용하려던 치졸한 짓이었다”며 “대한민국과 정부, 국정원이라는 중요한 국가기관이 바로 서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비판했다.

표 전 교수는 “개인 감정풀이는 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 세금인 국가기관의 행정비용을 증가시키고 싶지도 않다”며 “원세훈도 사법처리 받는 중이고, 이후 간첩조작 등 국정원을 잘못 운영한 대가를 하나씩 치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착잡하고 안타까울 뿐”이라고 개탄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지난해 동화면세점에서 발언했을 때.
이치열 기자 truth710@
 
표 전 교수는 “거짓과 허위, 겉치레와 변명, 합리화, 전략, 전술, 심리전, 다 제쳐두고 툭 터놓고 딱 한마디만 하겠다”고 이렇게 쓴소리를 했다.

“나와 당신들은 모두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 그러면 안돼요!’”

표 전 교수는 “내겐 정치색도 이념도 지역도 세대도 그 무엇도 없다”며 “그저 제대로, 바로, 가능한 원칙대로, 옳은 일, 부여된 의무와 책임, 정정당당하게, 양심에 거리끼지 않게, 하자는 것 그것만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는 “억울한 피해자 만들지 말고, 소수 권력자 위해 국가기관 사적운용하지 말자는 것, 바라는 건 그것 뿐”이라며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가 하고픈 일, 잘 하는 일, 방해없이 하며 잘 살고 싶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표 전 교수는 “누구나 실수나 잘못할 수 있으나 그 실수나 잘못을 덮고 숨기려하느냐,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새출발하겠다는 용기를 내느냐, 아주 단순한 그 차이가 나라 전체를 혼란과 다툼과 갈등으로 모느냐 화합과 협력으로 나아가게 하느냐를 결정짓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표 전 교수는 지난해 1월 8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풍전등화’ 국정원>이라는 글에서 “중앙정보부, 안기부를 거쳐 국정원으로 여러 차례 간판을 바꿔 달 수밖에 없었던 ‘정치화’의 상처와 후유증은 일선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국정원이 위기인 이유에 대해 “정치관료가 국정원을 장악해 정보와 예산, 인력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무능화·무력화돼 있는 조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표 전 교수는 당시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에서도 이번 사건을 1972년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하면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그리고 주류 언론과 방송 모두는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국정원 여직원 인권’ 타령에 수많은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하는 반면, 사건의 본질과 관련해서는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침묵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아직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으며 답변을 피하고 있다. 국정원 부대변인은 이날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아직 입장을 안냈다”며 “이 시간에 입장을 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미 2월에 나온 검찰의 무혐의 판단에 대한 불복여부에 대해서도 이 부대변인은 “검찰이랑 같이 (협의해서) 하겠죠”라며 “아직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검찰의 판단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 부대변인은 “바빠서 전화를 끊겠다”고 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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