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진보개혁 진영의 ‘유이(唯二)’한 원로라 할 수 있는 백기완 선생과 김중배 선생이 18일 마주 앉았다. 만남은 며칠 전 백기완 선생이 김중배 선생에게 전화로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고 제안한 것을 김중배 선생이 흔쾌히 받아들여 이뤄졌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미디어오늘 취재팀이 두 원로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며, 배석해 영상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두 선생이 받아들임으로써 취재까지 이뤄지게 된 것이다.

두 선생은 12시 30분에 서울 대학로(혜화동)에 있는 학림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백기완 선생은 이날 아침 박근혜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쌀 시장 전면개방 방침을 예고하자, 농민단체 등이 중심이 된 반대 기자회견에 특유의 한복차림으로 참석하고 돌아와 12시부터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중배 선생도 약속시간보다 15분 먼저 다방에 들어섰다. 평상복으로 보이는 등산복 차림에 평소처럼 책이 든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백기완: 김 선생은 어떻게 아직도 그렇게 술을 많이 드실 수 있나요?

백기완 선생은 자신보다 두 살이 적은 김중배 선생이 아직도 아들뻘 되는 젊은이 못지않게 술을 마신다는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백 선생이 김중배 선생한테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직도 어떻게 그렇게 약주를 많이 드실 수 있나요?” 김중배 선생의 대답: “(옛날과 비교해서) 지금은 많이 못 마시고... 나이가 들면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하는 자동조절장치가 몸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달 끝난 교육감 선거와 교육이 화제로 떠오르자, 김중배 선생이 말문을 연다. “교육이란 용어 자체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누가 누구를 교육한단 말입니까?” 백 선생이 맞장구를 친다. “그렇지요.”

김중배: “술은 미디어라 생각합니다”

평소 언론계 후배들에게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미디어”라고 강조해 온 김중배 선생이 ‘언론’의 정의와 본뜻을 왜곡하는 조중동 등 족벌언론사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언론계 후배들과 자주 만나는데, 그것도 진정한 의미의 언론이고, 지금 우리가 만나 대화하는 것도 언론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언론이라 하면 언론사만 지칭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특히 조중동은 북한의 (관영)언론사들을 언론사라고 부르지 않고, ‘언론매체’라 부르는데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김중배 선생이 백기완 선생에게 “건강이 어떠시냐”고 묻는다. 백 선생이 대답한다. “건강을 물으면 난처해요. 아침저녁으로 달라요. 요즘은 아침이면 (추워서) 긴 팔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때 학림다방 사장이 들어와 인사하자, 백 선생이 김중배 선생을 소개한다. “이 분이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내시고, 한겨레신문 사장과 MBC 사장도 지낸 김중배 선생인데, 우리나라 언론계에서 ‘유일한 어른’이에요.”

평생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민중 운동의 맨 앞에서 젊은 (전투/의무)경찰들과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백 선생인지라, 여든이 넘은 자신의 몸이 옛날 같지 않음을 구체적으로 실토한다. “3년 전만 해도 내가 젊은 전경 아이들이 들고 있는 방패를 밀면 애들이 뒤로 밀렸는데, 요즘은 밀리지가 않아요. 내가 밀면, 전경 아이들은 그냥 (꿈쩍 않고) 가만히 있어요. 나는 건강이 따로 없어요. 아침저녁이 다르니까...”

두 사람은 평소 서로를 가슴으로 존경하는 듯 했다. 여러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자주 만나곤 했지만, 두 사람이 별도로 같이 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놀랄 정도로 의외였다.

백기완 선생이 김중배 선생을 만나자고 한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기자는 짐작할 수 없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지만, 백 선생께 여쭤보지 않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 보수를 통틀어 진정한 의미에서 ‘원로’라 부를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면, 의도까지는 아닐지라도, 만남의 ‘의미’는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나머지는 미루어 짐작하기로 했다.

백기완: “박근혜는 대통령 자격없어, 무조건 물러나야”

백 선생이 세월호 참사와 국정 난맥상을 염두에 둔 듯, 박근혜 대통령에 ‘돌직구’를 날린다. “박근혜는 민족도, 시민도,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도 없어. 무엇을 결정하고 자시고 할 자격도 없어. 그냥 물러가야 해!”

두 사람의 대화에서 통일이 빠질 리가 없다. 백 선생 특유의, 그러나 이른바 어떤 남북문제 전문가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통일론이 나온다. 몸 상태가 아침저녁으로 달라진다는 고백이 무색할 정도로 목소리가 높아진다.

“통일, 통일 하는데, 남과 북이 단순히 합쳐지는 것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야!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진정한 통일이지. 분단이 뭐냐? 분단은 미국의 침략으로 이뤄진 것인데, 분단으로 피해를 입은 민중들이 해방돼야 진정한 통일이야!”

두 사람은 점심 식사를 위해 종로1가의 영양탕 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마침 이날이 초복이라 1시가 넘었는데도 손님들로 북적인다. 주인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자리로 찾아와 인사한다. 주인이 내오는 고기양이 눈에 띄게 많았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류가헌 갤러리에서 사진전 '밀양을 살다'를 관람하던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기자가 식당 주인에게 “이 음식점 생기고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두 분이 같이 온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하자, 김중배 선생이 바로 말을 받는다. “백 선생님은 귀한 분이지만 저는 아닙니다.”

백기완: “나는 평생 길거리에서 ‘먼지’를, 김중배 선생은 ‘역사’를 먹고 살아”

그러자 백 선생의 화답이 과연 걸작이다. “김중배 선생의 말씀이, 나(백기완)는 평생 길거리에서 ‘먼지’만 먹고 살았고, 김 선생은 평생 ‘역사를 먹었다’는 뜻이야!” 일제히 폭소가 터졌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들의 내공이란 그런 것이었다.

백 선생이 김중배 선생에게 묻는다. “김 선생은 인격이 있어서 요새 젊은이들의 행태를 보고도 참지요... 말씀은 안 하시지만, 요새 젊은이들한테 못마땅한 게 있다면 뭐를 꼽을 수 있겠습니까?”

김중배: “엉뚱한 방향으로 불만 쏟는 일베 아이들도 보듬고 가야 하는데...”

김 선생이 대답한다. “꼴사나운 것 보다는 안타까운 게 많아요. 소위 일베(일간베스트)하는 애들이 하는 일들을 들여다보니까, 바탕에는 세상에 대한 불만이 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좌우나 진보·보수냐의 차원도 아니고. (그들도) 박근혜를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고. 다만 그들이 분출하는 방향을 엉뚱한 곳에다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런 애들과도 함께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데, 어떤 길이 그런 길이냐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백 선생이 말을 잇는다. “김 선생은 역시 인품이 있는 분이야.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영원할 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김 선생의 화답이 이어진다. “그런 것(돈에 대한 맹신)까지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돈과 권력에 대한 불만이 이상하게 왜곡돼 분출되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젊은이들의 멘토라는 분들이 무조건 (현실을) 긍정하라고 하는데, 그 말은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현실을 긍정하라고 하면서, 그것이 힐링 어쩌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기완: “박근혜, 집안 내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된 것이 불행”

공사석을 막론하고 한 번 시작하면 사자후를 내뿜는 백기완 선생이 오늘은 말 수가 적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백 선생이 나지막하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야.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이 되면서) 자기 집안 내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것이야. 그것이 불행하다는 것이지.”

백기완 선생은 1932년 황해도 구월산 자락에서 태어나 아버지 손을 잡고 월남하여 김구 선생의 체취와 발자취를 가슴에 새기면서, 장준하 선생, 계훈제 선생, 문익환 목사 등과 더불어 반독재 투쟁과 농민운동, 민중운동에 일생을 바쳐온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자 원로다. 그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한진중공업 노동 탄압사태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송경동 시인이 제안해 이뤄진 ‘희망버스’ 대열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다른 투쟁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즐겁고 부담 없는 자리보다는, 국가권력과 결탁한 자본의 탄압 앞에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와 약자들이 벌이는 사투 현장에 와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적이 없다. 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으면 그들이 처한 처절한 현실 앞에 “도움 준 것이 없다”며 아들과 손자뻘 되는 후배들 앞에서도 자주 눈물을 쏟는다. 어릴 때 덧이름(별명)이 ’울보‘였단다.

백기완: “김중배 선생은 날 없는 도끼로 ‘과따소리’를 내는 언론인”

김중배 선생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원로 언론인’이자, 참여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을 출범시키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시민운동의 ‘대부’다. 193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57년 한국일보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뛰어든 뒤 1963년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겨,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지내며,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날카롭고 용기있는 글로 독자들과 민중에게 희망의 촛불을 밝혀온 ‘평생 언론인’이다.

‘영원한 기자’ 김중배는 편집국장에서 해임된 뒤 1991년 9월 동아일보를 떠나면서 “앞으로 언론은 권력과의 싸움에서 보다 원천적인 제약 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유명한 경고를 던졌다. 그의 예측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곧바로 현실이 되었고, 이런 현실을 예상하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언론계 후배들은 그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

백기완 선생의 김중배 선생에 대한 존경과 찬사는 단순히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는 차원일까? 아니면 방식과 스타일은 달라도 평생 같은 목표로 한 길을 걸어온 원로끼리의 말없는 동지 의식에서 나오는 걸까? 기자의 궁금증을 알아챘는지, 백 선생이 먼저 말을 꺼낸다.

때는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 선생의 회고: “1991년 수서택지 특혜분양 비리사건이 터져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집회와 농성을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하고 있는데, 정치권 인사들도 (적당히 해 달라고) 전화를 해오고, 심지어 중견언론인들도 나한테 전화를 해대는 거야. 그래서, ‘아, 이거 엄청난 사건이구나’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취재하러 오는 기자들이 한 명도 없어. 그래서 김중배 선생한테 (취재해 달라고) 전화를 했지. 그랬더니 동아일보 기자가 한 명 와서 취재를 해 갔는데, 2-3단짜리 기사 정도로 나올까 생각했는데, 1면에 머리기사로 나온거야! 그러자 연구소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던 모습. 사진=청와대
 
그 정도를 가지고 감동할 백기완 선생이 아니다. 백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과따소리는 바가지 밖에 없는 가난한 빌뱅이가 바가지를 가지고 대궐같은 집에 사는 부잣집 대문을 때려 부수는 소리야. 도끼날이 없어도, 도끼 자루만 가지고 대궐문을 때려도 대궐문은 깨지게 돼 있어. 무지랭이 백성이 날 없는 도끼 자루만 가지고 왕궁이나 대궐 문(띠따소리)을 깨부수는 것이 과따소리야.”

“언론이란게 뭐냐? 바로 과따소리야. 진정한 언론이란, 진실을 까발리고, 옳고 그름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희망과 전망까지 제시하는 과따소리야. 김중배 선생은 과따소리를 내는 진정한 언론인이야.”

두 원로에게 세월호 참사는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견디기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추모와 위로의 현장에도 빠지지 않는다.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김중배: “후배들이 내가 죽을 자리를 만들어 달라!”

기자는 두 원로의 언행에서 심상찮은 느낌을 갖는다. 작년 쯤 언론시민운동 진영의 한 후배가 던진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려고 작심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진정한 도인(道人)은 산 속에 있지 않고 저자거리에 있는 법이다. 침대 맡에 자식 손자들을 앉혀놓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시궁창에 처박혀 죽는 삶이 진정한 도인(지도자)의 삶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김중배 선생은 언론계 후배들 모임에서 태연하면서도 결연하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죽을 자리를 후배 여러분들이 만들어 달라...” 후배들은 섬뜩하다.

백기완 선생의 이날 초청은 어쩌면 팔십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두 고수(高手)의 말 없는 대화와 뜻이 통해 이뤄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와 침묵이 꼬리를 무는 시간이 쏜살같다. 3시가 넘어가자 다음 약속이 있는 김중배 선생이 양해를 구한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백 선생이 돌아서는 김중배 선생을 다시 불러 세운다. 그러면서 “김 선생은 소득이 없을 것”이라며 차비를 주겠단다. 잠시 머뭇거리던 김중배 선생이 지폐 넉 장을 마지못해 받는다. 어색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존중하지 않고 내공이 없다면, 벌어지기 어려운 장면이다. 기자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동시에 두 고수이자 원로의 다음 만남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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