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늦잠을 깨우지 못해 독일이 전쟁에 졌다. 얼토당토 않게 들리는 이 말의 배경을 알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을 감행했다. 모든 작전이 그렇지만, 특히 상륙작전의 경우 상륙이 시작된 후 최초의 몇 시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연합군이 제공권과 압도적인 물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이 교두보를 구축하는데 성공한다면 독일군이 연합군을 바다로 밀어낼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결국 관건은 시간이며, 그것도 상륙이 시작된 직후의 시간이다.

'지상최대의 작전'이라고 명명된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감행된 직후의 결정적인 몇 시간 동안 독일 기갑사단을 노르망디로 이동시킬 권한은 히틀러 밖에 없었는데(패전이 거듭됨에 따라 히틀러는 장군들에게서 지휘권을 회수해 자신의 수중에 넣었다. 스탈린은 독소전 초기의 대참패 이후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개별 작전에는 장군들의 지휘권을 존중한 반면 히틀러는 반대로 갔다) 비서들은 늦잠자는 히틀러를 깨우지 않았다.

최초의 결정적인 시간들이 믿을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데다 칼레에 연합군 주공이 상륙할 것이라는 판단 착오까지 겹치면서 독일군의 반격은 엄청나게 지체됐다. 프랑스 상공의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한 연합군 공군의 가공할 공습에 시달리며 뒤늦게 독일 기갑사단들이 노르망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연합군의 교두보가 난공불락상태였다. 그것으로 유럽에서의 싸움은 끝이 났다.

설사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해도 독일의 패전은 자명했다. 1941년 6월에 시작된 독일의 러시아 원정이 대재앙으로 귀결됐고, 광대한 러시아땅은 독일의 인력과 자원을 사정없이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합군 폭격기들은 독일 주요 도시와 생산시설들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던 1944년 6월 히틀러 독일은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오는 연합군에 맞서 절망적인 싸움을 하고 있었다. 누구나 독일의 패전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이 유럽 전쟁을 좀 더 빨리 끝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히틀러의 사실상의 부재상태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 일조를 한 것도 사실이다. 히틀러의 늦잠으로 인한 사실상의 부재상태가 종전을 앞당기는데 기여한 건 좋은 일이고 다행한 일이다. 전쟁이 더 길어졌더라면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스러졌을테니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도 히틀러의 늦잠과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직후의 결정적인 몇 시간 동안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실상 궐위상태였던 것이다. 국정조사 결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거의 7시간 동안 박근혜는 대면보고도 받지 않았고,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도대체 박근혜는 그 중요한 시간에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던 걸까?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대통령비서실은 왜 박근혜에게 대면보고를 하고 지시를 구하지 않았던 것일까? 김기춘은 왜 박근혜의 행방과 박근혜가 한 일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일까? 분명한 건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직후의 7시간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사실상 궐위상태였다는 점이다.

만약 북한군의 전면남침 상황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7시간 동안 보고도 안 받고, 지시도 하지 않는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7시간 동안 박근혜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는지, 대면보고를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긴절한 건 그와 같은 상황의 재발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나 준비상사태에 어디서 무얼하는지 모르는 국가가 정상국가일 수 없다. 나는 국가비상사태시 즉각 응답하는 대통령을 바란다. 박근혜가 그런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응답하라! 박근혜!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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