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추적60분>이 28일 방송에서 군사독재시절 자행된 국가폭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에선 1972년 어린이를 강간하고 살해한 누명을 쓰고 15년 2개월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등장했다. 만화가게를 운영하던 정씨는 조작된 증거와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그 때 동네 청년 50명을 잡아 가둬놓고 수사했다. 무지무지 때렸다”고 회상했다. 국가는 정씨의 아들을 통해 허위증거를 만들어내고, 만화가게 종업원을 7일간 협박해 현장증거물이 정씨의 것이라는 허위진술을 받아냈다. 현장에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체모가 있었으나, 주요 증거로 활용되지 않았다. 열흘 안에 범인을 잡으라는 내무부장관의 시한부 체포령은 정씨를 범인으로 만들었다.

정씨 검거발표일은 10월 9일. 며칠 뒤 계엄령이 내려지고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폭압적인 증거조작과 허위자백 앞에서 개인은 무력했다. 정원섭씨는 국가폭력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감옥에서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2011년 무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4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는 여전히 국가와 싸우고 있다.

   
▲ KBS '추적 60분' 6월 28일 방송의 한 장면.
 

   
▲ KBS '추적 60분' 6월 28일 방송의 한 장면.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지난 5월 대법원은 국가가 한 푼도 배상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을 ‘10일’ 넘겼다는 이유로 심리불속행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를 두고 정씨는 “죄 없는 사람 잡아다 징역 살게 했는데 배상은 못한다는 거다. 도둑놈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눈물을 삼켰다. 형사보상금을 소송에 쏟아 부었지만 국가의 답은 예상과 달랐다.

<추적60분> 제작진은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정씨뿐만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동일방직‧민청학련‧보도연맹‧인혁당 등 군사독재시절 자행된 국가폭력사건의 피해자들이 이날 방송에 등장했다. 이들은 대통력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찾아 “국가범죄에 의해서 만들어진 희생자를 다른 나라의 희생자로 간주하지 말라”며 국가의 책임 있는 보상을 요구했다.

죄 없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가며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한 박정희 군사독재시절 피해자들은 지금도 고통을 호소하지만 만족할만한 보상과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일방직 노동자들은 정당한 노조활동을 한 대가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해고 이후 재취업이 봉쇄됐다. 동일방직 노동자 안순혜씨는 “우리가 1심에서 이겼지만 정부가 항소했다. 2심에서 이기니까 정부가 또 항소했다”며 정부 태도를 비판했다.

   
▲ KBS '추적 60분' 6월 28일 방송의 한 장면.
 

   
▲ KBS '추적 60분' 6월 28일 방송의 한 장면.
 
국가는 과거의 폭력을 인정하더라도, 책임을 물으려하면 태도가 달라졌다. 제작진은 “수십 년간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한 시국사건이 한 둘이 아니다”라며 “국가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할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제작진은 보상에 미온적인 사법부의 태도를 놓고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작진의 이 같은 물음과 비판은 2014년 현재에도 유효하다. 박근혜정부에서 드러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 역시 검찰과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둔갑시킨 국가폭력에 해당한다.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은 과거가 되었지만, 국가폭력은 박근혜정부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영화 <변호인>의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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