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풍자한 포스터를 배포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팝아티스트 이하(46) 작가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하 작가는 지난 2012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을 백설공주 옷을 입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의 포스터를 부산 시내 일대에 붙였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됐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배심원의 평결에 따라 이 작가에게 무죄를 선고한 데 이어, 12월 항소심 재판부도 항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지난 12일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도 “이번 사건의 벽보는 특별히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맞춰 기획·제작된 것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박 후보에 대한 호감 또는 비호감을 표현한 것인지 불분명해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며 “정치인을 소재로 한 예술창작 표현물에 불과하다”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 이하 작가가 그린 ‘귀여운 독재자’ 시리즈 ‘pretty 박근혜’ 포스터. 출처=LEE HA ART STUDIO(http://www.leehaart.com)
 
이하 작가는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개인적인 족쇄도 풀어줬을 뿐만 아니라 헌법에서 보장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며 “표현의 자유는 굉장히 중요한 민주주의 가치이며 예술가에게 이것은 목숨과도 같은 것인데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은 나더러 죽으란 소리와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도 표현의 자유를 막는 시대에는 반드시 비극적인 흑역사가 온다”며 “지금 시대가 바로 비극적 시대임을 보여주고 있고 이명박 시대보다 더 심하다”고 비판했다.

이하 작가는 지난 2010년부터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정치인을 소재로 하는 풍자 포스터를 그려왔지만 특별한 법적 제재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품을 거리에 전시하자 불법 광고물이란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는가 하면 검찰 공안부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계속되는 수사와 재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 작가는 이번 ‘박근혜 풍자’ 포스터 관련해선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전두환 29만 원 자기앞 수표’ 포스터에 대한 경범죄 위반 재판은 2심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울러 그는 지난 4·16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침몰하는 종이배를 배경으로 한복 차림의 박 대통령이 등장하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스티커 1만3000장을 제작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전국의 길거리에 붙였다. 그러자 경찰은 이 작가가 아닌 자원봉사자 4명에 대해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 이하 작가가 그린 세월호 관련 ‘dog ground’ 스티커. 출처=LEE HA ART STUDIO(http://www.leehaart.com)
 
이번 판결 등과 관련해 이 작가의 변호를 맡았던 이혜정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예술 작품은 창조성과 개방성이 본질이어서 누구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이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던 예술가의 상상력을 옥죄는 좋지 않은 행태”라며 “형사처벌은 최후 수단이기 때문에 명백한 해악이 존재하지 않는 한 해서는 안 되고, 법원이 헌법상 당연한 기본권을 함부로 처벌하지 말라고 확인해 준 점을 환영하며 앞으로 다양한 표현의 자유와 건전한 비판이 존중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정권비판자에 대한 보복성 수사나 재판이 노골화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이 작가 사건만 해도 당시 대선을 앞두고 국가기관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과잉 조사를 벌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이 작가가 실제 조사를 받을 때도 예술가에게 배후나 당적(黨籍) 등을 캐물어 힘들어했다”며 “게다가 이번엔 이 작가의 작품을 배포한 일반 시민들도 연행해 조사하는 것은 이들을 위축시켜 이 같은 활동이 확대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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