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온 주민들의 농성장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11일 강행했다. 9년째 이어져온 국가 권력과 주민간의 갈등을 전하는 언론의 태도는 확연하게 둘로 나뉘었다.

경향신문은 12일자 11면 기사 <“농성장 없애도 끝까지 반대” 송전탑 주민들 비폭력 항거>에서 “수적으로 압도적인 경찰에 저지를 당했고 농성장 안에 있는 주민 10여명은 경찰에게 끌려나왔다”면서 “농성장은 송전탑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비명과 통곡, 울분 등으로 아비규환이었다”고 전했다.

한겨레도 1면 기사 <끌려나간 할머니들…수녀들도 온몸으로 저항>에서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행정대집행에 엄청난 규모의 공권력이 투입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들은 이번 행정대집행에는 경찰 20중대 2,000여명과 밀양시 직원 200여명, 한전 직원 250여명이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 한겨레 12일자 1면기사
 
밀양송전탑이 우리 사회에 던진 근본적인 과제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한국일보는 6면 기사 <일방통행식 국책사업은 갈등만 키워…환경, 불평등 논란 등 숙고해야>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는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마지막은 격렬히 저항하는 반대 주민들을 물리적 힘으로 제압하는 ‘밀어붙이기’였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대화와 타협이 무산된 이유로 “정부와 공공기관이 밀실에서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에 지역 주민들에 대한 설득작업에 나서는 ‘일방통행식’ 사업방식이 문제였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관료와 기업(한전)이 왜 765Kv 송전탑 건설만을 고집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는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의 말을 전하며 ‘관피아’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언론들뿐만 아니라 조중동 등 대다수 언론들이 이번 행정대집행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밀양송전탑 공사의 목적인 신고리원전 3·4호기 준공 시점이 불량 부품으로 늦어지고 있어 행정대집행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이런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0월 기사 <또 原電 불량부품…내년도 電力 비상>에서 “케이블 성능 미달로 내년 8월과 후년 6월로 예정됐던 준공 시점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가량 연기가 불가피해지면서 내년 여름철에도 전력 대란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또 신고리 3호기가 생산한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강행중인 밀양 송전탑 공사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행정대집행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기사를 과거에 쓰고도 정작 11일 소식을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밀양송전탑 보도에는 '외부세력 개입' 프레임과 반대 주민들을 고립시키는 보도들이 넘쳐났다. 우선, ‘외부세력’ 프레임은 외부 세력이 밀양 주민들을 부추겨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논리다. 사회적 현안에 대해 일반 시민들의 연대를 상징했던 ‘희망버스’를 공격하던 대표적인 논리였다.

통합진보당이 주도? “외부세력은 제발 떠나라” 

조선일보는 12일 이번 사태를 전하며 “일부 주민은 이 농성장에서 숙식하거나 외부 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공사 인력과 장비 등의 진입을 막아왔고”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외부세력’ 프레임을 전파한 대표적인 언론이다.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 14일 사설 <‘외부 세력 有無’ 군산·밀양 송전탑 합의 성패 갈랐다>에서 “종교·환경 단체 근본주의자들이 주민과 한전 사이의 합의를 성사시키려는 게 아니라 방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외부세력론의 정점은 통합진보당와 밀양송전탑 사태를 엮은 보도였다. 조선일보와 뉴시스는 지난해 10월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무덤’으로 불리는 구덩이를 파고 또 목줄을 걸어놓았다‘고 전했다. 공사를 막기 위해 외부세력이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였다.

   
▲ 조선일보 2013년 10월 7일 1면 기사
 
하지만 이는 허위보도로 드러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당시 작업 동영상을 보면 이 작업을 밀양 주민들이 주도했던 것으로 통합진보당원들은 일부 작업을 도왔을 뿐이었다. 조선일보는 이 보도가 나가기 전에도 <밀양 시위 70명 중 住民은 15명가량…나머진 통진당 등 外部세력> 등을 통해 외부개입론을 확산시켰다.

동아일보도 지난해 8월19일자 사설 <발전소 증설이 근본적인 전력난 해결책이다>에서 “주민과 지자체, 한국전력이 합리적으로 풀 만한 일도 외부세력이 끼어들면 극한으로 치닫는다”면서 “밀양 송전탑 갈등을 키우는 외부 세력은 무책임한 훼방꾼 노릇만 하지 말고 상시적인 전력난을 해결할 대안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또한 다른 사설에서는 “10년 전 전북 부안에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을 둘러싸고 빚어진 극심한 갈등도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증폭됐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외인부대들은 제발 떠나주기 바란다”면서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보상안 발표되자 “반대를 위한 반대” 폄하

두 번째, 반대 주민들을 일부 강경세력으로 몰아 고립시키는 보도 역시 적지 않았다. 한전이 보상안을 제시했으니 정부의 역할은 끝났다는 논리다. 일례로, 중앙일보는 지난해 9월 정부의 보상안에 주민들 일부가 보상안에 합의하자 공사강행을 주문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밀양 송전탑 공사는 재개돼야 한다>에서 “애초 송전선로와 관련한 보상은 간접보상만 가능하도록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자 정부와 한국전력은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밀양 주민 지원에 나선 것”이라고 정부의 공로를 한껏 치하했다.

   
▲ 중앙일보 2013년 9월 12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그러나 반대 주민에 대해서는 “협의를 거부한 채 ‘송전선 지중화’ 요구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중화에는 12년의 시간이 더 걸리고, 2조7000억원이 더 들어가 현실성이 없다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면서 “이래서야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언론은 또한 송전선로가 지나는 보상 대상 마을의 3분의 2가 보상안에 합의했다고 밝힌 한전 측 입장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연합뉴스 <한전 “밀양 송전탑 경과지 마을 3분의2 보상안 합의”>, 뉴스1 <한전 “밀양송전탑 마을 2/3 사실상 합의”>, 뉴스Y <한전 “밀양 송전탑 마을 3분의 2 보상안 합의”> 등의 보도가 당시 쏟아져 나왔다. 일부 언론이 반대 주민의 의견을 기사에 반영하기도 했지만 한전 측 입장을 적극 반영한 기사들이었다. 

“경찰의 일상적인 폭력이나 에너지 정책 실패는 외면”

이계삼 밀양송전탑대책위 사무국장은 12일 통화에서 “그림이 될 때만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구조”를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공사가 재개되는 시점이나 대집행처럼 아비규환이 예상되는 시기에만 언론들이 밀양 문제를 조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밀양송전탑 문제는 그야말로 밀양 주민들과 한전·정부와의 ‘충돌과 갈등’으로만 비춰졌다.

이 사무국장은 “ 경찰의 일상적인 폭력이나 마을 공동체의 분열 양상에 대한 보도자료는 내도 반응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밀양 문제와 관련한 구조적인 접근들, 예를 들어 고리원전을 둘러싼 에너지 정책의 총체적인 실패나 밀양송전탑 건설 강행의 배경인 이명박 정권의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들이 주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외부세력 프레임에 대해서도 이 국장은 “사실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여러 도움을 줬지만 전체적인 연대 세력들 가운데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마치 통합진보당이 우리의 싸움을 사주한 것처럼 비춰졌다. 우리의 주장을 폄훼하기 위한 저들의 무기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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