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자에 중앙일보 주필, 대기자 출신인 문창극 전 고려대 미디어학부 석좌교수를 내정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법조계 출신을 하다 안되니 이번엔 친여 언론인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오후 브리핑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개조와 개혁을 이끌 새로운 국무총리후보자로 문창극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자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과 관훈클럽 총무, 중앙일보 주필을 역임한 소신 있고 강직한 언론인 출신으로 그동안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민 대변인은 설명했다.

민 대변인은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장 후보자는 이병기 주일대사가 내정됐다고 민 대변인은 전했다. 그는 이 후보자에 대해 “안기부 2차장과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청와대 의전수석 등을 역임하면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해 왔으며 국내외 정보와 안보상황에 대한 이해가 깊다”면서 “현재 엄중한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 속에서 정보당국 고유의 역할 수행과 개혁을 안정적으로 이끌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6월 15일(현지시각) 미국 특파원출신 전ㆍ현직 언론인들의 모임인 한미클럽(회장 봉두완)과 아메리칸대학이 개최한 워싱턴D.C. 소재 아메리칸대학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이명박 정부의 한미관계' 세미나에 참석한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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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이 늦어진 데 대해 민 대변인은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본인의 철학과 소신, 능력보다는 개인적인 부분에 너무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서 가족의 반대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인선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번에 총리후보로 지명된 문창극 후보자를 두고 민 대변인이 강직한 언론인이라고 한 것은 지난 2011년 5월 3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칼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대통령이 되지도 않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 쏠린 과도한 관심과 권력화를 ‘박근혜 현상’으로 평가했다.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행정수도 고수, 영남국제공항 고집을 두고 “나라 전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지역이기주의를 고려한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그런데도 언론과 국회의원들이 왜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 대통령과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 언론들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그녀는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마디 하면 주변의 참모가 이를 해석하고, 언론은 그것을 대서특필한다. 휘장 안에 있는 그녀가 신비하기 때문일까? 자유인인 지금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 권력의 자리에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누가 감히 그 휘장을 벗기고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동화 오즈의 마법사처럼 휘장 안의 마법사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 후보자는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 스스로가 휘장 속에서 걸어나와야 한다”며 “언론도 누가 됐든 휘장 안의 인물을 신비롭게 조명할 것이 아니라 휘장을 벗기고 국민이 실체를 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문 후보자는 심지어 2009년 11월 11일 한창 세종시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 측과 한나라당 내 이른바 박근혜 전 대표 측과의 갈등이 있을 때도 이명박 편을 들었다.

문 후보자는 이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세종시 갈등에 대해 “나는 이 문제가 대통령과 예비후보라는 입장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보고 싶다”며 “원칙이니 신뢰니 하는 말은 수사학처럼 들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대통령도 후보일 적에는 이를 그대로 하겠다고 했다. 표 때문이었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박 전 대표 역시 대통령이 후보 때 갖던 마음을 지금 똑같이 갖고 있을 것”이라며 “나의 논리는 간단하다. 대통령 말을 더 믿을 것인가, 아니면 후보의 말을 더 믿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문 후보자는 “선거에 나설 사람과 선거에 다시 나서지 않을 사람 중 누구 말이 더 믿을 만한 것일까”라며 “인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중에 누구를 더 신뢰할 것인가”라고 박 대통령의 주장을 냉정하게 눌렀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한 한 쪽 정파의 입장 만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내내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한편, 한나라당의 승리를 위한 전략을 사실상 지면을 통해 알려나갔다. 문 후보자는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경선 전쟁이 ‘한창’일 때 두 후보에 사실상 헐뜯기식 싸움을 중단하고 정권교체에 힘을 쏟으라고 충고했다.

그는 2007년 7월 10일 <권력의 비늘을 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나라당이 대선에 2번 ‘실패’한 원인에 대해 “선거를 하기도 전에 권력을 쥔 듯 교만”했기 때문이라며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똑같은 양상”이라고 두 경선 후보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두 후보(이명박·박근혜)의 경선에 큰 관심이 없다. 정권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다시 좌파에게 정권을 맡겨서는 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며 “두 사람도 그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이제는 검증보다 협력방안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며 “싸우다 함께 죽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 함께 살아나는 새로운 길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문 후보자는 그해 2월 20일자 칼럼 <싸우면 더 강해지는가>에서도 “한나라당 검증 논란은 안으로부터 붕괴가 시작되는 징조”라며 “검증작업은 상대를 내쫓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등 지속적으로 여권 내 분열을 경계했다.

그는 2006년 5월 30일 이른바 5·30지방선거 직후엔 한나라당에게 대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친절하고 뼈아프게 훈수를 두기도 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에 대해 “뜻밖의 인기는 그 당을 망치게 만든다”며 “(한나라당의 인기는) 한나라당이 믿을 만하고 좋아서가 아니라 이(노무현) 정권에 너무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문 후보자는 “2002년 대선 패배 원인은 사실 너무 빨리 찾아온 승리감 때문이었다”며 “후보는 대통령 행세를 하고 둘러싼 사람들은 자리 싸움으로 세월을 보냈다…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했다”고 지적했다. 자만해선 안된다는 경고음을 던진 글이었다.

또한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잃어버린 10년’ 성토에 앞장서는 글을 써온 인물이기도 하다. 문 후보자는 2007년 5월 29일자 문창극 칼럼 <잃어버린 10년>에서 “한국도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시절이었다. YS 말기의 국가부도 사태를 시작으로 북한에 퍼주기와 권력부패가 심했던 DJ 시대, 성장에는 눈을 감고 균형과 평등으로 4년을 허송한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모든 분야가 제자리걸음이었다. 그 피해는 힘없는 서민, 갓 졸업한 젊은이 등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언론계에서 사실상 한나라당-새누리당 집권을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대표적인 보수논객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문 후보자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나와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뒤 DJ 정부 시절 편집국 정치, 기획취재담당 에디터 부국장을 하다 미주총국장을 역임한 뒤 노무현 정부 때는 논설실장·논설주간·상무·주필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후 그는 대기자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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