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간부들의 보직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심야토론>, <추적 60분> 책임프로듀서(CP)인 장영주 CP가 지난 3일 밤 사내게시판을 통해 길환영 사장의 시사프로그램 개입을 폭로한 데 이어 4일 홍기섭 보도본부 취재주간이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홍기섭 취재주간은 취재주간으로 임명된 지 3주 밖에 지나지 않은 터여서 5일 KBS이사회를 앞두고 길환영 사장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홍기섭 주간은 4일 오후 4시경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저도 이제 보직을 내려 놓으려 한다”면서 “임명된 게 지난 5월13일이니 3주가 지났다”고 말했다. 홍 주간은 “이번에 동료 김혜례 부장이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로 발령이 났고, 어느 총국장은 업무복귀 호소문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임 5개월도 안 돼 보직을 박탈당했다”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폭거”라고 주장했다.

   
홍기섭 KBS 보도국 취재주간 ⓒKBS
 
홍 주간은 KBS 양대노조 파업에 대한 길환영 사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나 어느 세력 편에도 선 적이 없는 중간인, 회색인으로 살아왔다. 오직 당당하고 떳떳한 보도만을 꿈꿔온 기자일 뿐”이라면서 “후배들도 저와 다르지 않다. 좌파노조나 기자 직종 이기주의란 말은 거두어달라”고 말했다. 홍 주간은 “협회나 노조가 정치세력화 한다니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렇게 규정하면 사장님 편에 설 사람이 밖에서 몇 명 늘어날지 모르지만 스스로 KBS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기자들을 모욕하는 위험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홀가분해졌다”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홍 주간은 “보도본부 국장단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후배동료의 지방발령 인사가 취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설자리도 할 일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두 번째 본부장마저 붙잡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자리를 지킬 수 있겠느냐. 너무 염치없는 짓”이라면서 “후배 부장, 팀장들을 무책임하다고 질타했던 제가 그들 편에 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리에 연연해서가 아니다. 9시뉴스만은 지켜야 한다고 했던 제가 그 사명감을 잠시 내려놓는 건 더더욱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홍기섭 취재주간은 “후배 여러분께 한마디 드린다”면서 “개표방송은 선거기획단장과 보도본부장이 급히 요청해 받아들였지만 차마 번복할 수 없었던 점 양해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개표방송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책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개표방송을 마지막으로 보직사퇴하려 한 저의 뜻을 헤아려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홍 주간은 길환영 사장을 향해 “국민의 방송 KBS를 지켜달라”면서 “무언가를 꼭 쥔 두 손으로는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KBS 정상화라는 더 절박한 것을 갖고 싶다면 먼저 손에 쥔 것을 놓아야 한다”면서 “사장님의 용단을 간절히 기다린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다음은 홍기섭 취재주간이 사내게시판에 쓴 글 전문.

보직을 사퇴하겠습니다.
제안/알림/정보 홍기섭 취재

저도 이제 보직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임명된게 지난 5월 13일이니 딱 3주가 지났군요.

격동의 87년이라고 하죠. 27년전인가요.
수습꼬리를 채 떼기도전에 14기 동기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외치며 농성하고 대자보를 써붙인 일로 모두가 지방으로 쫒겨난 적이 있었지요.
그 때도 여기자 2명은 제외됐는데 이번에 동료 김혜례 부장이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로 발령이 났습니다.
어느 총국장은 업무복귀 호소문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임 5개월도 안돼
보직을 박탈당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폭거입니다.

사장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나 어느 세력편에도 선 적이 없는 중간인,회색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오직 당당하고 떳떳한 보도만을 꿈꿔온 기자일뿐입니다.
후배들도 저와 다르지 않습니다.
좌파노조나 기자 직종 이기주의란 말은 거두어주십시오.
협회나 노조가 정치세력화한다니요. 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그렇게 규정하면 사장님 편에 설 사람이 밖에서 몇명 늘어날지 모르지만
스스로 KBS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기자들을 모욕하는 위험한 발언입니다.

이제 홀가분해졌습니다.
보도본부 국장단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후배동료의 지방발령인사가 취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이상 설자리도 할 일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본부장마저 붙잡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너무 염치없는 짓이지요.
후배 부장,팀장들을 무책임하다고 질타했던 제가 그들 편에 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자리에 연연해서가 아닙니다.
9시뉴스만은 지켜야 한다고 했던 제가 그 사명감을 잠시 내려놓는건 더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후배 여러분께 한마디 드립니다.
개표방송은 선거기획단장과 보도본부장이 급히 요청해 받아들였지만
차마 번복할 수 없었던 점 양해바랍니다.
개표방송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책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개표방송을 마지막으로 보직사퇴하려 한 저의 뜻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장님,
국민의 방송 KBS를 지켜주십시오.
무언가를 꼭 쥔 두 손으로는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습니다.
KBS 정상화라는 더 절박한 것을 갖고 싶다면
먼저 손에 쥔 것을 놓아야 합니다.
사장님의 용단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보도국 취재주간 홍기섭
20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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