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같이 쏟아지는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해주고, 여러 기사들을 보기 좋게 정리해주는 ‘뉴스 큐레이팅’이 뉴스 소비의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기존 언론이 뉴스 큐레이팅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 큐레이팅을 전문으로 하는 매체들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큐레이팅 매체들이 뉴스소비의 대안이 되려면 저작권 문제 등에 대한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큐레이팅이란 일반적으로 미술작품들을 모아 전시하는 것을 일컫는다. 큐레이팅이라는 말이 미디어분야에서 사용될 때는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한 정보들에 ‘가치’를 더해 보여주는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매체비평지에서 주요 아침신문의 기사들을 정리해주는 것이 좁은 의미에서의 큐레이팅의 사례다. 미국의 경우 허핑턴포스트, 버즈피드(BuzzFeed) 등 큐레이팅 전문 매체들이 이미 뉴욕타임즈 등 기성 매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뉴스 큐레이팅 전문 매체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창간한 ‘허핑턴포스트 코리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독자적인 취재도 하지만, 대부분 다른 매체들의 보도를 큐레이팅한 기사나 블로거들의 글로 채워져 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외에도 인사이트 등 SNS에 기반한 큐레이팅 매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긴 방송영상의 일부분을 편집해서 보여주는 수많은 ‘페이스북 페이지’들 역시 뉴스 큐레이팅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뉴스 큐레이팅의 등장은 ‘팩트 위주의 저널리즘’이 ‘해석과 가공의 저널리즘’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뜻한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인터넷으로 유입되는 콘텐츠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며 “이용자들이 그 많은 정보를 모두 해석할 수 없기에 큐레이팅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신문 기자) 역시 “큐레이팅은 앞으로 뉴스서비스의 중요한 흐름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 기자는 “온라인 이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큐레이팅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온라인 이용자들에게는 여러 정보들을 빠른 시간 내에 소비하길 원하는 욕구가 있으며, 모바일 등 작은 스크린으로, 이동하는 공간에서 정보를 소비할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큐레이팅 매체들의 존재는 기존 언론사 입장에서는 큰 위협이다. 이에 기존 언론사들과 큐레이팅 매체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뉴스 큐레이팅 매체 ‘인사이트’가 언론사들의 기사를 그대로 게재했다가 언론사들의 항의를 받고 기사를 내린 일이 있었다. 인사이트는 지난해 12월 창간한 인터넷 큐레이팅 매체로 다른 매체의 기사들을 인용해 기사를 쓴다. 보통의 인터넷 매체들이 ‘~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밝히고 원 기사의 몇몇 대목을 인용하는 것과 달리 인사이트는 원 기사의 내용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고, 해당 매체의 이름을 바이라인처럼 달아놓는다. 그리고 기사 말미에는 아웃링크 형태로 원 기사를 링크한다.

   
▲ 인사이트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지난 5월 24일 매일경제에는 <다음-카카오 합병하나…성사 땐 시총 3조원 규모 거대 IT 기업 탄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같은 제목의 기사가 인사이트에도 올라왔다. 이 기사에서 인사이트는 매일경제 기사의 첫 번째 문단, 두 번째 문단, 세 번째 문단 두 줄까지 그대로 옮겨놓았다. 첫 번째 줄의 ‘매일경제가 단독 보도했다’는 한 문장을 제외하면 매일경제 기사와 내용이 똑같다.

지난달 30일 인사이트에 실린 기사 <월세 안 받더니 ‘가게 비워’…‘스타일 난다’의 이상한 임대> 역시 30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인용이라기보다 전재에 가까웠다. 제목도 똑같고, 첫 번째 문단과 두 번째 문단의 ‘30일 오마이뉴스에 따르면’이라는 문구를 빼면 기사 전체가 오마이뉴스 기사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가 여러 개 늘어나자 해당 언론사들은 인사이트에 문제제기를 했고, 현재 관련 기사는 모두 삭제된 상태다. 미디어오늘도 세월호 관련 미디어오늘 기사 일부를 그대로 전재한 인사이트에 문제를 제기했고, 인사이트는 기사를 수정했다.

인사이트의 이런 기사 게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월세’ 기사를 작성한 김동환 오마이뉴스 기자는 “기사의 전재에 대해 문의 받은 적이 없고, 이 기사가 인사이트에 실린 이후 회사 차원에서 기사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잘 팔리는 기사를 이런 식으로 게재하는 것 같다. 원래 언론계에서는 다른 기사를 적당히 베껴 쓰는 관행이 있는데, 이는 베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복사·붙여 넣기 아닌가”라며 “기분도 안 좋고, 도둑질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베끼기 풍토와 어뷰징이 큐레이팅으로 둔갑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에서 트래픽을 늘려 광고수익을 얻는 ‘어뷰징’(검색어 장사)으로 인한 폐단이 심한 상황인데, 인사이트 같은 매체들이 큐레이팅을 통해 트래픽을 올리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강정수 연구원은 “남의 기사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복사·붙여넣기 하는 걸 큐레이팅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한국에 들어와서 (큐레이팅의 의미가) 이상하게 바뀌었고, 큐레이팅이라는 미명 하에 도둑질을 하는 것 같다. 트래픽에 함몰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강 연구원은 “큐레이팅이란 기존 콘텐츠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 복사·붙여넣기는 큐레이팅 자체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 한국일보 디지털뉴스부 뉴스팀장 역시 “인터넷 언론들이 ‘~에 따르면’이라는 말만 붙이고 단독기사들을 베끼기 하는 등 ‘원 기사’를 굳이 읽어볼 필요도 없이 만드는 행태를 보여왔다”며 “요즘은 몇몇 매체들이 큐레이팅이랍시고 베끼기와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데, 이는 도둑질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인사이트는 자신들의 큐레이팅이 베끼기와 어뷰징과는 다르며, 네이버나 다음 등 포탈 중심의 뉴스 유통구조를 깨기 위한 시도라는 입장이다. 안길수 인사이트 대표는 “다른 인터넷 매체들은 타사의 단독기사를 ‘~에 따르면’ 표현 하나만 넣은 채 조사만 바꿔서 자기네가 쓴 것처럼 만든다”며 “오히려 우리는 내용을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실어주고, 출처도 밝히고 아웃링크도 달아줬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큐레이팅을 국내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원 기사의 30퍼센트만 인용해야 하는지 100퍼센트 다 게재해야 하는지 시험 중이었고 이 데이터를 토대로 제휴를 맺으려고 했다. 현재 인사이트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제휴를 맺은 상태”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아웃링크 걸어 트래픽을 넘겨주고, 좋은 기사를 뿌리는 유통매체가 되고 싶었는데 도둑놈 취급해서 기사를 다 내렸다”며 “인터넷 매체들이 출처도 안 밝히는 건 관행처럼 넘어가면서 출처 다 밝히고 링크까지 걸어둔 우리한테만 문제제기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트래픽을 높이려고 기사를 무단 전재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오해’라고 밝혔다. 안 대표는 “우리가 트래픽을 올리려고 기사를 무단 전재한 것이라면 광고를 달았어야 한다. 하지만 광고는 지난달부터, 그것도 모바일로만 달기 시작했다”며 “창간하자마자 광고를 달 수 있었는데도 6개월 동안 안 달았다. 트래픽 끌어 모아 대충 돈이나 벌고 나가려고 했으면 왜 광고를 안 달았겠나”라고 반박했다.

안 대표는 “물론 기사 게재를 통해 인지도 상승 등 무형의 자산을 얻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의 돈을 벌기보다 포탈로 인해 왜곡된 유통구조를 바꿔보려는 시도였다”며 “기존 미디어와 우리 같은 큐레이팅 매체들이 ‘윈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인사이트의 의도를 이해한다 해도 다른 큐레이팅 업체들이 큐레이팅을 빙자해 무단으로 저작권을 침해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저작권법상 다른 매체의 기사를 허락 없이 전재하는 행위는 법적인 처벌 대상이다. 저작권법 제28조는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해서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5천만 원 미만의 벌금이나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저작권팀 관계자는 “저작권법상 ‘정당한 범위’라 함은 본인이 작성하는 저작물이 ‘주’가 되고, 인용이 ‘종’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남의 기사를 가져다 쓴 경우는 인용이 아니라 무단이용으로 봐야 한다”며 “공정한 관행이란 출처를 밝히는 것인데 ‘~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표기했다하더라도 그 범위가 정당한 범위가 아니기에 이런 식으로 이용할 때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피키캐스트’는 저작권 문제로 페이지를 삭제당한 적이 있다. 피키캐스트는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콘텐츠 큐레이팅 서비스’를 표방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주로 긴 방송영상을 편집해 주요 부분만 보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제작하지 않은 동영상을 스크립해서 직접 올리거나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점 등이 문제가 되어 페이스북에 의해 페이지가 삭제됐다. 피키캐스트는 페이지를 다시 만들었지만 저작권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피키캐스트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페이스북 큐레이팅 페이지들이 저작권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피키캐스트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이에 따라 큐레이팅 업계 차원의 원칙과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진순 기자는 “인용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지만 업계 스스로 가이드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윤리적이고 양심적인 큐레이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매체들의 성의 있는 태도가 필요하고, 그런 매체들에 호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정수 연구원 역시 “법적으로 제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윤리적이고, 기본의 문제이기에 당사자들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복기 허핑턴포스트 공동편집장은 “큐레이팅이 트렌트처럼 여겨지면서 독립매체나 신생매체들이 큐레이팅 서비스를 많이 시도할 텐데, 철학이나 원칙이 없이 남의 콘텐츠를 도둑질하는 등 과도기적인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 편집장은 “허핑턴포스트의 경우 기사와 그림 출처를 최대한 상세하게 밝히고, 글을 일부 인용할 땐 일부러 눈에 띠게 표시한다. 링크는 반드시 건다는 식의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 피키캐스트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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