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일간베스트’(아래 일베)와 관련한 기사를 썼다. 박상후 MBC 전국부장이 이 사이트 게시물을 사내 게시판으로 퍼날랐다는 소식을 지난달 25일 전했다. 5일 뒤,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여당 추천 차기환 이사가 일베 글을 리트윗한다는 얘기도 알렸다. 두 사람 모두 새누리당의 네거티브가 반영된 일베 글로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자를 공격했다.

반향은 컸다. 독자들은 “그러니까 MBC가 저 모양이지” “일베충이 MBC를 장악했구나” “엠XX, 민낯 드러났네” 등 ‘분노의 덧글’을 달았다. 공영방송의 주요 직책을 맡은 인사가 극우로 분류된 사이트의 게시물을 무차별적으로 퍼나르는 것에 대한 공분이었다. 여성을 폄하하고 특정 지역을 비난하는 이 사이트에 대한 전 사회적 우려가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행태는 누리꾼의 입길에 오르기 충분했다.

MBC 간판 PD였던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도 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차 이사는 지금의 MBC를 만든 인물”이라며 “차 이사처럼 일베 글을 퍼나르는 사람이 방문진 이사가 된 뒤 MBC에는 일베스러운 간부들이 하나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최 앵커는 “(MBC가) 유족 때문에 민간잠수사가 사망했단 기사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경력기자를 뽑으면서 ‘진보냐 보수냐’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지경이 됐다”고 덧붙였다.

기사가 나간 뒤 최 앵커를 포함한 독자가 보인 반응과 두 사람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박 부장은 지난달 27일 MBC 사내 게시판을 통해 자사 보도를 반성하는 기자에게 다시 비난을 퍼부었다. 이 기자는 앞서 ‘한겨레21’에 세월호 침몰사고 국면에서 드러난 MBC보도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기자들이 현재 처한 상황을 알리는 글을 기고했다. 박 부장은 이 기자를 두고 “이런 기자가 보도국에 있는 것 자체가 보도참사” “없는 사실을 소설로 써서 유포시키는 찌라시보다 못한 짓”이라며 ‘막말’을 내뱉었다.

차 이사는 2일 현재까지도 박원순 후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는 2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번 농약 급식 사건을 보도하는 매체들, 기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실망이 크다. 그들이 비하하는 일베사이트 회원의 사실 발굴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라고 분개했다. 공영방송의 관리·감독을 담당해야 할 ‘이사’가 실력 부족한(?) 기자를 대신해 특정 후보의 의혹을 밝히는 ‘선수’로 직접 뛰고 있는 것이다. 비정상이 버젓이 연출되고 있다.

   
▲ 차기환 방문진 이사(왼쪽), 박상후 MBC 전국부장 사진 (사진 = YTN, MBC)
 

일베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문제는 그 독특한 취향이 자신이 부여 받은 역할에 악영향을 미칠 때다. 다시 말해 공과 사가 구별되지 않을 때다. 박 부장은 일베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 ‘녹차 티백’을 뉴스 원고에 넣으려 했다. 차 이사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근거로 박 시장을 물어뜯고 있다. 모두 직분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공영방송에 몸을 담고 있다면, 일방의 주장을 내세워 선거 후보자를 비방할 게 아니라 정책 검증 위주로 여론 형성에 노력해야 할 터. 지금은 거꾸로다.

로마의 수사학자 키케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논리로 이길 수 없다면 인신을 공격하라.” 두 사람은 논리 대신 인신공격을 앞세웠다. 공영방송의 중책을 맡은 인사가 건강한 담론과 논리를 형성하는 데 노력하기보다 특정인 네거티브에 앞장 서는 모습을 줄곧 보였다. 선거에 나선 당사자 측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없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 상대방 후보 흠집내기가 도를 지나쳤다”고 토로했다. 지나침이 과도해 무엇이 ‘상식’인지 가늠할 수 없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둔갑시키는 이들이 공영방송에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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