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자들이 자사의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를 반성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냈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폄훼하는 리포트가 나가자 내부에서는 “부끄럽다”는 분위기가 들끓었다.

MBC 보도국 30기 이하 기자 121명은 12일 오전 ‘참담하고 부끄럽다’는 제목의 글을 내고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다”면서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성명은 현재 보도국 뉴스게시판과 사내 자유발언대에 게시된 상태다.

MBC 박상후 전국부장은 지난 7일 <뉴스데스크>에서 12번째 순서로 나온 데스크 리포트 <“분노와 슬픔을 넘어”>를 작성했다. 박 부장은 이 리포트에서“잠수가 불가능하다는 맹골수도에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라며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전했다. ( 관련기사 )

박상후 부장은 이어 “실제로 지난달 24일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해양수산부장관과 해양결찰청장 등을 불러 작업이 더디다며 압박했다”고 했다. 마치 이광욱씨 죽음이 ‘정부의 구조작업에 불만을 품은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과 압박으로 인한 사고’인 것으로 분석한 것이다. 박 부장은 이어 중국 쓰촨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사태를 언급하며 “놀라운 정도의 평상심을 유지했다”면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과 비교했다.

MBC 기자 121명은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였다. 한마디로 ‘보도 참사‘였다. 그리고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다. 가슴을 치며 머리 숙인다”고 세월호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 MBC 7일자 <뉴스데스크>
 
MBC 기자들은 이 보도 뿐만 아니라 세월호 침몰 사고를 다룬 MBC 전체 보도를 반성했다. 이들은 “해경의 초동 대처와 수색, 그리고 재난 대응체계와 위기관리 시스템 등 정부 책임과 관련한 보도에 있어, MBC는 그 어느 방송보다 소홀했다”면서 “결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축소됐고, 권력은 감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 됐다”고 했다.

이들은 또한 “신뢰할 수 없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한 결과,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는가 하면, ‘구조인력 7백 명’ ‘함정 239척’ ‘최대 투입’ 등 실제 수색 상황과는 동떨어진 보도를 습관처럼 이어갔다”면서 “실종자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준 것은 물론, 국민들에겐 큰 혼란과 불신을 안겨줬으며, 긴급한 구조상황에서 혼선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MBC 기자들은 이번 성명에는 반성을 뛰어넘는 내부의 의지도 드러냈다. 이들은 “MBC가 언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맞설 것이며, 무엇보다 기자 정신과 양심만큼은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성명 전문.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습니다. 세월호 취재를
진두지휘해온 전국부장이 직접 기사를 썼고, 보도국장이 최종 판단해 방송이 나갔습니다.

이 보도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장관과 해경청장을 압박’하고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청와대로 행진’을 했다면서, ‘잠수부를 죽음으로 떠민 조급증’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심지어 왜 중국인들처럼 ‘애국적 구호’를 외치지 않는지, 또 일본인처럼
슬픔을 ‘속마음 깊이 감추’지 않는지를 탓하기까지 했습니다.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였습니다.
한마디로 ‘보도 참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습니다. 가슴을 치며 머리 숙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해경의 초동 대처와 수색, 그리고 재난 대응체계와 위기관리 시스템 등 정부 책임과
관련한 보도에 있어, MBC는 그 어느 방송보다 소홀했습니다. 정몽준 의원 아들의 ‘막말’과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처신 등 실종자 가족들을 향한 가학 행위도 유독 MBC 뉴스에선
볼 수 없었습니다. 또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찾아간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빠짐없이 충실하게 보도한 반면, 현장 상황은 누락하거나 왜곡했습니다.
결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축소됐고, 권력은 감시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이 됐습니다.
 
더구나 MBC는 이번 참사에서 보도의 기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한 결과,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는가 하면, ‘구조인력 7백 명’ ‘함정 239척’ ‘최대 투입’ 등 실제 수색 상황과는
동떨어진 보도를 습관처럼 이어갔습니다. 실종자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준 것은 물론,
국민들에겐 큰 혼란과 불신을 안겨줬으며, 긴급한 구조상황에서 혼선을 일으키는데도
일조하고 말았습니다. 이점 희생자 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해직과 정직, 업무 배제와 같은 폭압적 상황 속에서 MBC 뉴스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을 신성시하는 저널리즘의 기본부터 다시 바로잡겠습니다.
재난 보도의 준칙도 마련해 다시 이런 ‘보도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MBC가 언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맞설 것이며, 무엇보다 기자 정신과 양심만큼은 결코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MBC 기자회 소속 30기 이하 기자 121명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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