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가만히 있으라’…우리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요?”
“‘가만히 있으라’…우리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요?”
[현장]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 추모 침묵시위…홍대-명동-서울시청 이어져

“정홍원 국무총리 사퇴의 변은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탑승자 가족에 대한 사과나 유가족에 대한 사죄는 없었습니다. 분명히 책임져야할 사람이 있는데, 책임지지 않고 사과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겁니까?”

30일 서울 마포구 서울메트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출구 앞 50여명이 모여선 가운데 대리석 볼라드에 올라선 경희대 학생 용혜인(정치외교학과 4)씨가 말했다. 용씨는 한 손에 확성기를 쥐고 한 손에는 노란 리본을 묶은 하얀색 국화를 들고 사람들 앞에 섰다.

그는 전날(2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한국판 두란 아담’ 시위, 스탠딩 맨 시위를 해보자며 ‘침묵 시위’를 제안한 주인공이다. 현장에 모인 인원은 약 50명, 검정색 옷을 갖춰 입은 사람들 사이로 교복을 입은 여학생도 눈에 띈다.

용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29일) 안산 정부 공식합동분향소에 방문한 후 유가족을 만나 사과 한 마디 없었고 이어 청와대 국무위원 앞에서 대국민 사과랍시고 글을 읽은 게 다”라며 “유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고 지적했다.


 
고향이 경기도 안산이라는 용씨는 “희생자와 생존자가 있던 안산 고대병원 인근 역에는 사복경찰이 배치돼 있다고 그 인근이 집인 친구가 말해 줬다”며 “희생을 위한 장소에 사복경찰을 보내 감시하는 이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용씨는 “100명 넘는 사람이 아직도 차가운 바닷 속에 잇는데 우리는 이렇게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말처럼, 지난 20여 년 동안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대로 가만히 있으면 되는 지 묻고 싶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2시경 서울 지하철역 홍대입구 9번 출구에 모인 70여명의 학생 시민들은 간단한 자유발언을 마치고 '가만히 있으라' 란 손피켓을 들고 침묵행진에나섰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행사 참여자들의 자유 발언도 이어졌다. 김명규(경기 고양)씨는 “사고 당시 탈출하지 말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사고 시작이 7시부터라는 주장에 대한 검증은 왜 없는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는 “현재 모금한 성금은 세월호 침몰로 기름유출 피해를 입은 전남 진도 인근 어민을 돕는 데 사용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은 “안산을 다녀오면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가 우리를 대신한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이라며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역설적으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경호(20)씨는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 지하철 화재, 부산외대 사고 등 인재는 철저한 반성 없이 같은 실수가 반복발생한 것으로 이런 일이 계속되면 언제 우리가 같은 실수의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며 “안일한 생각으로 이번 사고도 잊지 말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을 마친 참가자들은 ‘침묵’을 상징하는 하얀 마스크를 쓰고 실종자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색 리본을 매단 흰 국화를 들고 상수역 인근가지 약 30여분간 행진했다. 거리의 행인과 상점 주인은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가는 이들에게 주목하며 저마다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대열리 홍대앞을 지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인근을 지나던 수원의 한 중학교 3학년 여학생 7명(은 한동안 이 시위 행진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한 선생님이 희생자 중에 제자도 있다고 말해 슬퍼졌다”며 “다른 학생들이라도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상수역 인근에 도착해 발언에 나선 40대 문배식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구조만 제대로 했어도 살 사람이 많았는데 정부는 설레발만 치다 시간을 다 버렸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모르겠다”며 “기성세대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것’ 뿐이지만 각자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망설이지 말고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대열이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오후 3시 40분쯤 시위를 마치고 지하철로 이동했다. 이날 집회 참석을 위해 일산에서 왔다는 김선빛(18)양은 미디어오늘과 만나 “세월호 사고를 보고 처음에는 선장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욕이 나왔지만 진정된 후에는 선장을 비롯해 이런 사건과 사고가 반복되는 고질적인 이유에 대해 분노하게 됐다”며 “친구와 함께 추모 행진을 찾다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양지혜(18)양은 “침몰 사고가 난 후 학교 수학여행도 취소됐고 하다보니까 그런 사고 위험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세월호 사고를 통해 많은 사회 문제를 접하면서 그동안 이윤 때문에 죽어간 많은 사람을 알게 됐고 한국 사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후 4시 서울 중구 명동에서 약 80여명과 함께 또 다시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 행진을 이어갔으며 오후 6시 서울시청 광장 앞 합동 분향소에 합류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를 제안한 용혜인씨는 5월 3일 오후 2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오후 4시 명동역 5,6번 출구, 오후 6시 시청광장 합동분향소 앞 등 이날과 같은 시각, 장소에서 또 한번 침묵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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