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잣대로 오보를 판단하고, 방송사를 ‘조정통제’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된 방송통신위원회를 두고 비판 여론을 거세다. 언론운동진영은 방통위에 사과하고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했으나, 최성준 위원장은 이 단체들의 면담을 거부했다. [관련기사: 미디어오늘 4월 28일자 <박근혜 정부, 세월호 ‘보도통제’ 문건 만들었다>]

3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강성남 위원장과 소속 지본부 대표자,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 등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방통위에 있는 최성준 위원장을 만나려 했으나 방통위는 청사 정문 앞에서 출입을 불허했다. 언론노조는 29일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최 위원장은 일정 등을 이유로 면담을 거부했다. 방통위는 라봉하 기조실장과 면담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종합청사 정문에 20여분 동안 대치한 뒤 강성남 위원장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책임져야 하는 국가권력 뒤에 숨어서 어떻게 권력에 봉사하고 충성할지만 생각하고 있다”며 “방송과 언론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감히 국가권력에 반하는 언론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 방통위 대책반(재난상황반)이라고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은 30일 오전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 조정통제’ 계획을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노조 강성남 위원장(사진 중간 오른쪽)과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는 기자회견 직후 방통위 최성준 위원장 면담을 요청하며 청사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방통위는 이를 제지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그는 이어 “판사 출신인 최성준 위원장은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상황반을) 만들었다’고 변명하겠지만 우리는 이번 재난을 통해서 그들의 법과 원칙은 ‘권력을 보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봤다”고 말했다. 언론연대 전규찬 대표는 “분노하는 시민, 시청자 앞에서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강성남 위원장은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대한민국의 언론도 침몰했고, 언론이 침몰하면서 세월호의 진실이 가려지고 있다”며 “언론을 통해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을 알 수 없고, 정부 발표만 지면과 전파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언론사상 가장 참혹한 날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방통위가 ‘방송사 조정통제’로 스스로 민낯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방통위 문건 전에는 ‘재난 상황시 대응 아이템을 개발하라’는 매뉴얼이 발견됐다. 언론이 이렇게 된 근본원인은 방통위와 방통위 뒤에 있는 국가권력이다. 종편이 그렇게 탄생했고, 공영방송은 망가졌다. 이들은 목숨을 걸었다.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의 눈과 귀를 통제하겠다고 한다. 언론이 추락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 더 이상 국민들에게 ‘미안하다’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 이날 방통위는 최성준 위원장 면담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경찰의 제지에 20여분 동안 청사에 들어가지 못한 강성남 위원장이 면담 요청 공문을 찢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이성주 MBC본부장은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은 이명박 정부에서 진압됐고, 박근혜 정부 방통위는 이런 흐름에 앞장서고 방송사 사장들을 동요해 언론통제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본부장은 “정부가 진실을 가리고 오보를 만들고, 순한 양 같이 말을 잘 듣는 허수아비 언론이 있는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젯밤 (JTBC 뉴스9에) 구조를 기다리는 선내 모습을 봤다. 너무 가슴이 아팠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 새벽에 식은땀을 흘리며 깼다. 꿈에서 누군가를 죽인 범인으로 몰렸다. 그런데 알리바이가 없었다. 왜 이런 꿈을 꿨을까. 한 학부모의 말처럼 우리가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언론인들도 너무나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께 죄송하다.”

   
▲ 언론연대 전규찬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저널리즘을 해체한 정부가 절뚝절뚝 현장을 찾은 언론의 입을 막고 손을 자르고 있다”며 방통위 재난상황반의 방송사 조정통제 계획을 비판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언론연대 전규찬 대표는 “세월호 참사와 지금의 애도 분위기는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지만 ‘무능한 우리들이 부끄럽다’는 집단적 표현이기도 하다”며 “우리는 석고대죄하려고 하는데 더 부끄러워하고 석고대죄해야 할 정권은 현장에 도망치고, 누군가를 혼내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미루고만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통위가 SNS 등에서 상식을 재규합하고, 언론이 진실을 탐색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유언비어는 공론장이 파괴되고 진실을 허락하지 않을 때 나온다. 정부는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진실의 탐색을 지연하고 있다. 방통위가 여러 기관과 함께 (사회적 여론 환기와 방송사 조정통제 등 역할을 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도 국가는 한 발도 더 나가지 못하고 거꾸로 퇴행하는 모습을 여실히, 참담하게 보여준다. 저널리즘을 해체한 정부가 절뚝절뚝 현장을 찾은 언론의 입을 막고 손을 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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