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동이 좋은 책을 만든다.” 지난 4월 10일 출판노조협의회가 전국언론노조로부터 공식 승인됐다. 창작과 비평, 돌베개, 작은책, 보리, 나라말, 한겨레출판, 사계절, 그린비, 서울경기지역 출판 분회 소속 180여명의 출판노동자들이 만든 상급협의체인 출판노협은 2년간의 준비 끝에 탄생했다.

출판노협 탄생을 이끈 강변구 사계절출판사 과장은 언론노조 서울경기출판분회장으로 2009년부터 산별노조 설립을 준비해왔다. “우연히 행복한 닭이 좋은 알을 낳는다는 문구를 봤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보통 출판사에 있다고 하면 문화적으로 취해 살아간다는 환상을 갖는데 실제로는 높은 노동강도 속에 모든 걸 소진하고 자기재생산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나의 문구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은 출판노동자들의 노동실태를 드러내고 있다.

출판업계 현실은 미디어에 비춰지는 것과 달랐다. 2013년 출판노협 자체조사에 따르면 조합원의 2012년 평균소득은 2420만원에 불과했다. 연차휴가 15일도 안 주는 곳이 태반이다. 그나마 정규직은 사정이 낫다. 프리랜서는 ‘1인 사업체’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10년 한 출판노동자는 팔꿈치에 고름을 달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교정해 원고지 1장당 1200원을 받았다. 그런데 동화책 교정은 1장 당 1400원이다. 프리랜서는 출판사에서 작업비를 떼여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 ⓒ권범철 화백
 
2013년 3월 외주출판노동실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프리랜서의 70%가 월 15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응답자의 91.1%는 단가에 불만족하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은 ‘안정적으로 일거리를 받는 곳이 없다’고 답했다. 강변구 출판노협 대표는 “외주 편집은 도급 계약이다. 미지급금이 많이 발생하는데 도급비용이어서 체불임금이 사업자간 민사 채무가 된다. 돈을 받으려면 소송을 해야 한다”며 어려움을 전했다. 그는 이어 “한 달간 사회과학서적 300페이지를 3교까지 교정하면 140만 원 정도를 받는다”며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데 자신을 문화사업가로 보는 문제도 있어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형 출판사는 노조 조직이 가장 어려운 곳이다. ‘인프린트’ 시스템 때문이다. 일종의 자회사 형태다. ㅁ사를 예로 들면 ㅁ사 내에 여러 브랜드가 많다. 소자회사처럼 매출로 정산한다. 매출이 중요해지고 생산력으로 평가받는다. 생산력이 떨어지면 인프린트 계약을 해지하는 식이다. 강 대표는 “본사는 인프린트에 사업의 리스크를 전가한다. 그래서 인프린트가 짧은 시간에 많은 책을 만든 일은 칭찬할 일이 아니다”라며 “대형 사업장일수록 노조 조직이 어렵다”고 전했다. 이처럼 큰 기업일수록 노동자들이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2013년 출판 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출판사업체 수는 7036곳, 출판사업체 종사자 수는 30536명이다. 무한 경쟁 속에 출판 산업도, 출판노동자의 지위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강변구 대표는 “출판노동자의 노동권 강화가 출판 산업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출판 불황을 두고 외적인 유통문제를 얘기하지만 정말 독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책이라는 미디어만큼 소비자를 탓하는 곳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 강변구 출판노협 대표. ⓒ강변구 제공
 
그는 “출판노동자는 책의 사회적 가치와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다. 우리의 생산물이 사회에 전달되는데. 정작 진보적인 사회과학서적을 많이 내는 곳일수록 노동환경이 열악하다”고 지적한 뒤 “우리는 다만 행복하게 오래오래 책을 만들고 싶다. 회사가 그만큼의 대우를 해준다면 좋은 책이 나올 것”이라 자신했다.

출판노협의 첫 번째 사업은 실태조사다. 출판노협은 고용관계, 근로시간, 임금, 퇴직금, 모성보호조항, 작업강도 등을 포함한 20개 가량의 질문지를 만들어 5월부터 서울과 파주를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사 대상은 500명 이상의 출판노동자다. 강변구 대표는 “이제 한국출판인회의와 출판노조가 만나서 지금의 노동환경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태조사를 통해 여러 정책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출판 프리랜서들의 표준계약서도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 당시 교정비는 장당 1200원. 현재는 1500원이다. 인문사회분야의 경우 1000원을 안 주는 경우도 있다.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깎인 셈이다. 출판사에는 고용불안·부당해고·직장내 성희롱 문제가 반복된다. 강 대표는 “출판을 지식노동이라고 하는데, 생각만큼 민주적인 환경은 아니다”라고 지적한 뒤 “자신이 지금껏 억울하게 살아온 사실을 직면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출판인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자각할 때 비로소 책을 만드는 일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출판노조협의회 깃발. ⓒ출판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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