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된 학생들의 마음이 이런데, 팽목항 현장에서 정부 대책본부의 브리핑을 검증없이 보도했던 언론에 대한 실종자·희생자 가족의 불신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에서 청와대로 가겠다며 무모한 행진을 했던 것도 생존자 구조작업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없었던 정부대처에 대한 강한 분노와 함께 언론에 대한 불신이 작용했다.
세월호 생존 학생의 그림을 보며 지난 22일자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실장의 <슬픔과 분노를 누그러뜨릴 때>라는 칼럼을 도마 위에 올릴 수밖에 없다. 정규재 실장은 “비록 위로를 받아야 하는 처지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행동할 권한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해는 가지만 청와대로 행진한다고 무슨 문제가 풀릴 것인가”라며 실종자 가족을 가리켜 “분노 조절이 불가능하거나 슬픔을 내면화하여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감정 조절 장애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고 적었다.
▲ 26일 KBS '심야토론'에서 공개된 그림. 세월호에서 생존한 학생이 그린 그림으로 알려졌다. | ||
18일에는 국가재난주관방송 KBS에서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확인”이란 오보를 냈다. 내용도 사실과 달랐지만 실종자 가족을 배려하지 않은 자극적 자막으로 윤리적 비판까지 받았다. 최근에는 대다수의 신문·방송보도가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쏠리며 수색작업의 어려움과 해경·해양수산부의 무능함,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에 쏠리는 비판여론을 애써 감추는 모양새다.
정규재 실장이 지적한 ‘감정조절장애’의 원인제공자는 언론이다. 언론은 세월호 희생자와 희생자가족을 위해 거의 한 일이 없다. 오히려 잦은 오보와 무절제한 취재경쟁으로 전국적인 ‘언론혐오증’을 낳았다. 정 실장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사고를 당한 아픔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행동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사고수습을 위해 현장을 찾은 총리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도 딱한 장면이다”라며 제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인 척 바라본다. 인식장애이거나 자기기만에 가깝다.
정 실장은 칼럼에서 “슬픔은 타인의 그것과 뒤섞이기를 거부한다. 슬픔은 각자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은 각자의 것이 아니다. 개인적 불행이 아니다. 탐욕에 눈 먼 어른들이 불러온 초대형 인재다. 죄 없는 아이들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아직도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짊어져야 할 슬픔이다. 분노해야 할 때는 분노해야 한다. 슬픔과 분노를 누그러뜨릴 때는 슬픔과 분노를 온전히 쏟아낸 뒤일 수밖에 없다. 그걸 모른다면 공감능력장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