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 시대, 경이로운 문명의 도구들을 움직이는 인간의 의식이 소나 말이 끄는 수레가 태반이던 불과 50년 전의 수레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면, 이런 심각한 갭(gap)은 필시 (문화적) 지체(遲滯)를 부른다. 이러한 지체 덕분(德分)에 우리는 세월호와 같은 참상을 되풀이 겪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이런 답안을 채점해야 한다면 당연히 0점을 매겨야 한다. 왜?

뜻을 펴는 연모인 말과 글이 옳아야 소통이나 소통의 내용이 바르다. 언어가 정확하고 적확(的確)하지 않으면 수많은 문제가 생긴다. 위의 글에서 ‘덕분에’라는 말은 ‘까닭에’ ‘때문에’로 바꿔야 한다. 실은 ‘탓에’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생각도 그럴싸하고 폼도 제법 갖춘 듯한 그 글에 ‘0점’을 부과해야 하는 이유다.

원인과 결과를 이어주는 말이니, 대충 뜻만 통하면 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도 있겠다. 시험공부 덕분인지 ‘인과관계’라는 말은 아는 이가 많다. 그러나 막상 ‘덕분에’와 그 나머지 인과관계의 어휘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말글공부는 허망하다. 우리 언어의 운용(運用)에서도 세월호 사태와 같은 참상의 가능성 또는 개연성(蓋然性)은 늘 있다.

세월호 사고가 전해진 날, 운전 중에 라디오를 들었다. ‘리포터’인지 진행자인지 하는 이의 얘기를 얼핏 듣고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어떤 생각을 좀 씨니컬하게(냉소적으로) 또는 아이러니컬하게(반어적으로) 말하는가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니지 싶어 경악했다. 이런 얘기였다. “여객선이 침몰한 덕분에 오늘 우리 프로가 갑자기 우울해 졌습니다.”

그렇게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이도 때로 있으려니, 개인적인 차원으로 여기고 넘기려 했다. 그런데 KBS라는 방송사의 17일 뉴스에서 비슷한 경우를 또 보게 됐다.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에 관한 얘기였다. 그 기자도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을까? 그 상황을 ‘덕분에’라고 표현해야 했을까? 같이 톺아볼 필요가 있다.

“…선원법에는 선장은 여객이 모두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또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인명 등을 구조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초기에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한 덕분에 선원 29명 가운데 절반 넘는 17명이 생존했습니다. 하지만, 승객들은 60% 넘게 사망. 실종 상태입니다.” (4월 17일 낮 12시경 TV뉴스)

신문에서도 ‘덕분에’의 오용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사례다. ‘여객선 침몰로 여야(與野) 대책 분주’라는 제목의 기사다.

“…지방선거 예비후보들도 대거 사고현장으로 향했다. 김황식 이혜훈 정몽준 서울시장 새누리당 경선후보는 일정을 취소하고 사고현장으로... 이낙연 주승용 이석형 등 전남지사 새정치연합 경선후보들도 진도로 출발했다. 이 덕분에 예정됐던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토론과 경기지사 후보토론이 취소됐다.” (4월 16일 이데일리)

   
▲ 큰 덕(德)자의 고대 글자. 네거리의 그림인 다닐 행(行), 올바른 것을 바로 바라보는 정직의 직(直), 마음 심(心)의 합체다. 뜻도 그 세 가지 이미지를 합친 것이다.
 
‘덕분’은 명분(名分)·본분(本分)·응분(應分)·직분(職分)·연분(緣分)·천분(天分) 등과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말이다. 어떤 일이나 신분, 상황에 따르는 관계 등을 설명하는 어휘다. 사전이 말하는 덕분의 뜻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이다. ‘덕분에’는 응당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때문에’가 돼야 한다.

세월호 침몰은, 은혜로운 일이 아니다. 혹 이런 뜻을 알고도 ‘덕분에’를 그 자리에 썼다면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무지 때문에 즉 몰라서 그랬을 것으로 양해하고 싶다. 그래도 그 심각성은 지적돼야 한다. 그들은 말과 글로 시민들에게 세상의 모습을 전하고, 시민들의 뜻을 모우는 역할을 하는 이들, 즉 전문가들이다.

‘덕분’와 함께 비슷한 상황을 표현하는 다른 말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때문’은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으로, 인과관계에서 부정적 맥락(脈絡)과 긍정적 맥락을 표현할 경우에 겸해서 쓰인다. ‘탓’은 ‘부정적인 현상이 생겨난 까닭이나 원인’ ‘구실이나 핑계로 삼아 원망하거나 나무라는 일’이다. 당연히 부정적 맥락에서만 쓰인다.

글에 쓰이는 낱말은 적재적소(適材適所)의 뜻에 따라야 한다.

   
▲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 토/막/새/김 >
德, 훈과 음 합쳐 ‘큰 덕’이라고 읽는다. 무게나 부피의 대소(大小)만을 따지는 개념이 아니다. 착하고 어진 모든 뜻을 합친 것이라고나 할까? 한자의 어원이나 구조를 보면 옛 사람들의 깊고 기쁜 뜻이 보인다. 앞에 길[다닐 행(行)]이 있다. 우측 위에는 눈[목(目)]의 올바름 즉 정직[곧을 직(直)]이, 그 아래엔 마음[심(心)]이 있다. 갑골문 시기로부터 써 온 유서 깊은 글자이니, 뜻도 그렇게 오래된 것이리라. 그 후 이 말은 인간의 본디이자 사람의 해야 할 바롤 가리켰다. 덕(德)의 상실은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부를 수 있다. 크게 저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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