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그거 안내려 놔?”

지난 21일 전남 진도체육관. 1층 세월호 침몰 사고 탑승자 가족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2층 객석 앞에 놓인 구조물을 밟고 단숨에 2층 관객석 의자가 7줄로 놓인 가파른 계단을 후다닥 뛰어 올라갔다. 계단 끝에 놓인 방송 카메라용 삼각대를 한 손에 집어든 이 남성은 씩씩거리며 한 남자를 좇아갔다. 약 5미터 앞에는 양쪽 어깨에 카메라를 맨 사진기자가 있었다.

인근에 있다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서 가족을 말렸던 한 지역일간지 사진부 A기자는 “첫날과 달리 둘째날부터 1층(가족 휴식처)에는 거의 사진기자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근접 취재는 거의 안하는 상황에서 의욕이 앞서면 살짝 무리할 수도 있는데 가족들이 예민한 상황이다 보니 이렇게 일촉즉발인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A기자는 “오늘은 다행히 말렸지만 카메라 깨져 나가는 것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탑승자 가족은 무능한 정부와 오보가 연발하는 언론을 불신했다. 특히 눈에 띄게 카메라를 든 사진, 촬영 기자에게 분노는 집중됐다. 지난 17~22일까지 전남 진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 등에서 만난 기자들은 가족들의 취재 거부 및 장비 파손, 휴식 불가능 등 어려움을 호소했다.

세월호 사고 첫째 날부터 진도체육관에서 취재하면서 카메라 파손 현장을 수차례 봤다는 한 신문사 B기자는 “가족의 생사를 몰라 슬픈 상황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도 꼴 보기 싫은데 기자들이 보도까지 제대로 안한다고 느끼니 더 분노하는 것 같다”며 “사진 찍는 것도 조심스럽고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 지난 20일 오전 진도 팽목항 세월호 침몰 사망자 시신확인소로 사용되는 천막 뒤에서 기자들이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취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취재기자에 대한 가족들의 화풀이 대상은 휴대전화가 됐다. 한 인터넷언론 C기자는 “다른 언론사 기자는 팽목항 현장에 내려온 지 3시간 만에 휴대전화가 바다에 던져졌다”며 “회사에서 당장 15만원이 지원됐지만 월급에서 차감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인증샷 논란’으로 팽목항 가족지원상황실에서 가족 항의를 받던 시각. 상황실 밖에서 또 다른 가족은 기자 두 명에게 “그 문자 보내지 마라”고 항의했다. 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족들이 쌍욕을 하며 항의하고 있다’는 내용을 적어 상부에 보고하려던 참이었다.

가족들의 취재 거부가 잦아지면서 기자들은 묻는 사람이 아니라 ‘엿듣는 사람’이 됐다. 적극적인 취재를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한 방송국 기자는 “실종자 가족이 기자들의 사진 촬영이나 인터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여러 차례 항의를 받아 공식적인 브리핑이나 공동 취재 때만 취재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가족들과 만나는 게 가장 힘들다는 한 일간지 기자 D씨는 “가족끼리 모여 이야기할 때 옆에서 듣는 게 가장 큰 취재”라고 말했다.

반면 시신이 수습되는 현장인 진도 팽목항에서는 취재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21일 현재 시신 23구가 수습되면서 팽목항은 “살려내라”고 울부짖는 가족과 이를 보도하려는 취재기자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MBC 취재진의 경우 유족이 앉아 있는 앰뷸런스 내부에 머리를 들이밀고 취재를 시도하기도 했다.

언론의 속보 경쟁과 오보, 무리한 취재 경쟁 등이 스스로를 언론 불신이라는 옥쇄에 가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일 새벽 탑승자 가족의 청와대행 도보행진을 두고 채널A 등 몇몇 매체들이 ‘외부세력’이 행진을 주도했다고 보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고 첫날 진도체육관에 도착한 E기자는 “탑승자 가족 말을 들어도 검증 해보고 기사를 써야 하는데 그걸 그대로 옮기면서 혼란과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F기자는 “기자가 확인되지 않은 루머 유포자가 되고 2차 가해자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한 인터넷언론사 G기자는 “사고 첫 날 문자메시지 등 희망적인 말이 전해지면서 언론 취재가 몰렸는데 구조가 생각만큼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가 오락가락하면서 둘째 날부터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 같다”며 “기자들이 많이 몰리면서 취재 경쟁도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G기자는 또 “언론이 해경이나 재난본부 등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고 실시간으로 기사화 되다보니 정부 발표가 틀어지면 언론 보도도 같이 틀어지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꼬집었다.

한 독립언론 방송국 H기자는 “뉴스에 오보가 많은 데다 가족의 정부 비판적인 내용은 편집 삭제되고 오열 장면 같은 자극적인 화면만 기사화되는 상황에 대한 반감이 크다”면서도 “가족 주장도 심정적으로는 믿고 싶지만 반드시 확인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A기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한 지난 17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멱살 잡히고 난리도 아니었다”며 “한국기자협회의 재난보도 가이드라인(20일 발표)이 내려왔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현장은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21일 선임자와 교대하러 왔다는 한 언론사 영상 촬영 담당인 H기자는 “교대자가 말한 현장 취재 1수칙은 ‘가족과 충돌하지 말라’는 점이었다”며 “최대한 가족 입장에서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진도 물가도 기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방송사 등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고 사진, 영상 촬영 기자들은 해상 장면을 담기 위해 선박을 임대해 삼삼오오 바다로 나갔다. 이 배삯이 첫날에는 기름값만 80만원이었다가 21일 현재 200만원까지 올랐다. A기자는 “지인을 통해도 선박 1회 임대 당 100만~120만원을 줘야 한다”며 “며칠 새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기자들은 “탑승자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충분히 알겠다”면서도 “이럴 땐 기자라는 직업적 사명감보다도 직업인으로서 일할 맛이 안 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22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진도군청 브리핑을 통해 “수습된 희생자가 팽목항에 도착할 때 과열된 취재경쟁으로 카메라에 지나치게 노출될 경우 희생자와 가족의 프라이버시와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희생자에 대한 접근제한 라인을 설치할 것”이라며 “관계부처를 통하여 희생자와 슬픔과 비탄에 잠긴 가족 모습에 대한 촬영, 보도 자제를 언론사에 협조요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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