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오보에 무리한 취재행태까지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도 참사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자 세월호 참사보도 현장에서 취재진이 인간적 예의마저 망각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언론사회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20년 전 삼풍백화점 참사 당시에도 똑같은 실수를 했는데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며 재난보도준칙보다는 자사이기주의가 문제라는 주장도 나왔다.

23일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세월호 참사보도 문제점과 재난보도 준칙 제정 방안’ 토론회 자리에서 이중우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장은 “생생한 현장 취재를 해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희생자분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나 반성한다”고 말문을 연 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도 방송사는 재난을 하나의 쇼처럼 방송했다. 이번에도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한 취재보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난무했다. 인터넷매체에선 조회 수에 몰입하며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다”고 비판했다.

원인은 자사이기주의였다. 이 회장은 “부정확하더라도 타사보다 먼저 속보를 내야 한다는 경쟁의식 때문에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재난보도준칙을 지키지 못했다. 본사에선 타사와 다른 그림을 요구하기 때문에 희생자 가족을 근접촬영하거나 사고현장을 무단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재난이 발생하면 기자는 수사관처럼 과도한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언론사엔 엘리트가 많이 근무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재난보도현장에선 작은 인간적 예의마저 망각한다”고 주장했다.

   
▲ 4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재난보도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삼풍백화점 참사와 세월호 참사 사이 달라진 게 있다면 취재진 숫자다. 세월호 취재인력은 수백 명 수준으로 피해가족 숫자와 비슷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인기 한국사진기자협회장은 “삼풍백화점 사고 때도 재난보도 토론회가 있었다. 그 내용과 오늘 내용이 다른 게 없다”고 꼬집은 뒤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내부적으로 포토라인 준칙을 세운 바 있지만 각사의 속보경쟁과 무리한 취재요구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과거보다 자극적인 취재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병국 연합뉴스 콘텐츠평가실장은 “한국의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고위공직자들이 위장전입‧투기 등 불법행위를 세트로 갖고 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불법을 넘어가는 사회분위기인데 언론도 여기서 과연 자유로운가”라고 되물었다. 최병국 실장은 “언론이 점점 돈벌이에 매달리게 되고, 기자들이 돈 벌이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는 왜 경쟁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속보경쟁에 내몰린다. 재난 취재는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배울 뿐”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기자들은 국가가 정보통제에 나서는 상황에 대비해 사실과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 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이 국가가 주는 정보를 성실히 받는 것 이상으로 취재하고 탐사보도하려 했던 모습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며 일련의 보도행태를 비판했다. 이와 관련 이중우 카메라기자협회장은 “재난사고 시에는 각 언론사의 대표기자단이 모여 정확한 기사를 쓰고 인권이 지켜지는 보도를 할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 4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재난보도 토론회 모습.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 4월 21일 MBC 취재진이 시신을 싣고 출발하려는 유가족을 붙들고 인터뷰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이연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는 “재난보도는 시청자나 독자 중심의 재난보도가 아니라 피해자 중심이어야 한다”며 “보도를 통해 피해자들을 구조해야 하며 유언비어나 괴담, 미확인보도는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과거 삼풍백화점 사고의 경우도 관의 발표를 따르다가 사망자 수가 2배로 늘어난 경우가 있었다”며 “대책 본부나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발표라 하더라도 철저한 자체 조사를 통해 진위를 검증한 뒤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참사보도에 대한 비판을 마주하는 언론인의 바람직한 자세는 재난보도준칙을 지키는 것에 앞서 언론사 스스로 속보경쟁을 중단하고 협력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규연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현장에 있는 기자들도 아픔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우리 모두 자사이기주의가 굉장히 강한 반면 언론의 공동선善은 인색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합의된 경쟁을 벌이며 협력취재를 벌이는 게 쉬워보이진 않는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기자들은 단독‧특종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정확한 걸 신속하게 보도하는 게 중요하다. 예전과 다르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기자 개인의 발언이나 취재과정이 그대로 노출돼 (실수를 하면) 쉽게 용서될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0일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언론의 세월호 취재 및 보도를 두고 비판여론이 높아지며 마련됐다.

   
▲ KBS가 18일 오후 4시30분께 내보낸 방송자막.
 
한편 이날 토론회 자리에 참석한 정필모 KBS 보도위원은 “재난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다. 우리 사회가 규정을 안 지키고 편법을 하는 게 만연해 있다.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악의 평범성이 문제다. 언론이 이를 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말하며 “언론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가 달라져야 한다. 언론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온라인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론의 신뢰회복을 위해 우선되어야 할 자사의 오보에 대해선 사과발언을 찾기 어려웠다. KBS는 지난 18일 “구조당국이 (세월호) 선내 엉켜 있는 시신을 다수 발견했다”는 대형오보를 낸 뒤 자사 보도를 통해 이를 사과하지 않고 있다. (관련기사=) 이와 관련해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3일자 칼럼 <있는 그대로 전해주세요>에서 “선장에게 최후까지 승객을 지켜야 한다는 ‘재선(在船) 의무’가 있다면 기자에게는 끝까지 믿음을 저버려선 안 된다는 ‘신뢰 의무’가 있다. 그 약속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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