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언론이 재난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한국기자협회는 20일 논의를 통해 ‘세월호 참사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23일 세미나를 개최해 재난보도준칙을 마련할 예정이다. 앞선 지난 2003년 기자협회는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재난·재해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기자협회가 마련한 참사보도 가이드라인의 내용은 △신속함에 앞서 정확해야 한다. △통계나 명단 등은 공식 발표에 의거해 보도한다. △현장 취재와 인터뷰는 신중해야 하며,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해 보도한다. △생존 학생이나 아동에 대한 취재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오보가 드러나면 신속히 정정보도하고 사과해야 한다. △자극적 영상이나 무분별한 사진, 선정적 어휘 사용을 자제한다. △철저한 검증보도를 통해 유언비어의 발생과 확산을 방지한다. △구조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근접취재 장면 보도는 가급적 삼간다. △기자는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된 즉흥적인 보도나 논평을 자제한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노력한다 등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재난보도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와 기자협회가 만든 인권보도준칙이 존재한다. 인권보도준칙에는 “언론은 개인의 인격권(명예, 프라이버시권, 초상권, 음성권, 성명권)을 침해하지 않고 죽은 사람과 유가족의 인격권은 침해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은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유품, 메시지 등을 공개했고 뉴시스는 사망이 확인된 학생의 일기장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인권보도준칙에 어긋날 수 있는 사례다. 또한 아동인권과 관련해 “언론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한다”고 되어 있지만 JTBC는 생존자 학생을 인터뷰하고 SBS는 구조된 5세 아이를 무리하게 인터뷰 해 논란을 빚었다.
JTBC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은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이에 대해 “30년 동안 재난 보도를 진행해 오면서 내가 배웠던 것은 재난보도일수록 사실에 기반해 신중해야 한다는 것과 희생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사과하기도 했다.

   
▲ 지난 21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 정문앞에 무료로 배포된 일간지들이 놓여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도 재해·재난보도 준칙이 있다. 그 내용은 △단순한 현장전달보다는 피해를 사전에 최소화하는데 우선 노력한다. △보도는 일차적으로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내용이어야 하며, 부상자 및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인터뷰는 신중을 기하여 심리적 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불확실한 내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보도를 통하여 유언비어의 발생이나 확산을 억제한다. △재난의 본질과 관계없는 몇몇 생존자의 흥미성 과거 신상공개는 삼간다. △무분별한 취재 경쟁을 억제하고 무리한 제작요청을 자제하며 취재진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등이다.

하지만 KBS 역시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특별방송 중 자막을 통해 ‘선내 시신이 엉켜있다’는 오보를 냈다. ‘철저한 검증보도’라는 자사 재난·재해보도 준칙을 어긴 것이다. 또한 KBS 역시 사건 초기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타 방송사와 마찬가지로 내보냈다.

SBS는 별도의 규정은 없지만 자사 기자 교육자료에 재해·재난방송에 대한 부분이 있다. △객관성, 정확성을 준수할 것 △감정적, 선정적 어휘 사용 자제할 것 △피해상황 전달보다 향후 전개될 추가 피해 예방 및 방지 주력할 것 △피해자와 가족의 명예, 사생활 보호, 심리적 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보도 준칙을 기자들이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KBS의 한 기자는 “재해·재난보도 준칙이 있는 것은 알고 있고 기자들 책상에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이라는 책자도 비치되어 있지만 내용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언론사들의 무리한 속보경쟁 때문에 재해·재난보도 준칙이 있어도 이를 지킬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다. 또한 기자 개개인의 무리한 취재관행도 문제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지 않는 이상 비슷한 논란이 재발될 여지는 있고 결국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무엇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김창룡 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물론 가인드라인이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좋다”며 “다만 본질은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핵심은 이를 지키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며 “미국 등에서는 윤리강령 등 준칙을 어기는 기자는 회사에서 해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회사 차원에서 준칙을 안 지켰을 때 민사상 손해배상을 통해 강력하게 제제한다”며 “그들이 법이 무서워 준칙을 지키는 것이지 윤리의식이 우리보다 높아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오보가 나올 경우 언론사가 문을 닫을 정도”라며 “우리나라에는 그런 규제는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에 앞서 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규율을 만들고 이를 지키게 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 문제는 언론의 손을 떠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는 기자의 수도 많아지고 이름도 모를 인터넷 언론, 신문, 방송에서 수백명이 몰려다니니 과잉경쟁이 안될 수 없다”며 “언론에 질서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정이라는 용어가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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