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철도소위)활동이 종료됐다. 지난해 겨울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철도파업 결과 철도노조와 정치권의 합의로 철도소위가 설치된 지 3개월 보름 만이다. 23일간의 최장기 철도파업도 유래 없는 일이었지만, 정치권의 중재로 철도파업이 일단락 된 것도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지난 철도파업과정에서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선불복 세력이 연대하여 벌이는 정치투쟁”이라고 비난했지만 ‘우리의 삶에 정치와 무관한 것이 어디 있는가? 문학과 예술이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신들이야 말로 정치적이다’는 조지 오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철도민영화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논의해야 마땅한 정치문제다.

철도소위 구성 합의에 대해 언론에서는 모처럼 정치권이 제 역할을 했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짧은 활동 기간이 보여 주듯이 그 한계도 분명히 드러났다. 합의 주체인 철도노조는 철도소위 활동종료에 ‘깊은 실망’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여야 각 4인씩 8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철도소위는 수서고속철도(주)에 대한 민영화 방지대책과 국토부의「철도산업 발전방안」에 대한 검증 등 현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고 독일 등 유럽 주요국가에 대한 현지시찰도 진행했다.

그러나 핵심 쟁점이었던 수서고속철도(주)에 대한 민영화 방지대책은 끝내 민영화방지법안 제정에 합의하지 못한 채 ‘어떤 형태로든 공공성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민간 매각을 방지하는 장치를 확고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함’이라는 모호한 문구로 채택됐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미FTA가 발효 중에 있고 철도시장 개방을 위한 WTO GPA(정부조달협정)이 개정된 상황에서 국내 공공정책은 통상조약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철도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진영에서 수서고속철도(주)에 대한 민영화 방지법 제정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수서고속철도(주)에 대한 투자자금을 국민연금기금과 같은 ‘공적자금’을 통해 조달할 것이고, 만약 공적자금 투자자가 민간에 이를 매각한다면 고속철도 운송면허를 취소할 것임으로 민영화논란은 기우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도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수서고속철도(주)에 대한 투자계획이 없음이 확인됐다. 백번을 양보해서 입장을 선회하여 수서고속철도(주)에 대한 투자결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투자기준은 ‘공공성’이 아니라 관련 법률에 명시된 ‘수익성’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국토부의 쌈짓돈이 아닌 다음에야 기금 운용으로 발생되는 수익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국민연금공단은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투자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국민연금기금은 민자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각종 민영화사업에 투자하여 왔다. 인천공항철도 사기극에서도 드러났듯이 최소운영수입보장(MRG)으로 국민들 등 꼴 빼먹는 각종 민자 고속도로와 민자 대교 사업 말이다. 기금 형성은 국민들의 기여금이라는 형식이지만 기금운용은 민간펀드와 다를 바 없다.

한미FTA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은 ‘자유로운 무역’을 위함이 아니라 자본의 새로운 투자처를 위한 협정이다. 이윤논리가 작동되어서는 안 되는 공공부문의 시장화이며 FTA와 국가기간산업 민영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수서고속철도(주)에 대한 관료들의 민영화 방지대책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윤을 찾아 헤매고 있는 초국적 자본 입장에서 이를 제한하려는 일국 관료들의 ‘애국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적한 ‘암적 존재’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정권이 유한하다면 법제화는 더욱 필요하다.

   
▲ 김영훈 민주노총 지도위원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관료독재 사회가 돼버렸다는 우려가 깊어진다. 행정부 일방통행에 대해 정부여당은 존재감이 없어졌고, 야당 역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국가권력과 타락한 언론, 그 뒷배인 막강한 시장권력 카르텔이 정치 불신을 조장하는 동안 의회권력은 끝없이 약화됐고, 마침내 정치축소가 ‘새정치’로 둔갑되는 역설을 목도하고 있다. 법률에 의한 행정과 법률을 통한 행정부 견제라는 의회의 역할을 생각할 때 철도소위활동은 그래서 더욱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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