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고도 수치스럽다. 죄송하고도 안타깝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실종자들이 살아나오기를 기원한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세월호 침몰 관련 소식을 들으면서 눈물이 고인다. 못다 핀 꽃들의 영혼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얼음장 같은 바닷물 속에서 젊은 생명들은 얼마나 고통을 당했을까. 화사한 봄날 아침 그들을 칠흑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사람은 누구였는가. 울부짖는 가족과 선후배 동료들만의 설움이 아니다. 온국민의 눈시울을 적시고 가슴을 멍하게 만들고 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닌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왜 대형참사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는가. 왜 빠른 구조활동을 펼치지 못했는가. 혼자 일찍 빠져나온 선장에게 묻는 물음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국민 안전’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이른바 ‘4대 사회악’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이 그것이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변경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성폭력과 학교폭력이 난무한다. 최근에는 ‘아동 학대’라는 가정폭력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안전한 한국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책의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국민안전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매월 신설된 안전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에 재난안전책임관을 지정해 사고에 대응하도록 했다. 이런 판국에 사상 최악의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박 대통령 측근인 유정복 전 안행부 장관은 지난해 대형사고가 없었다며 국민안전이 확고해졌다고 자화자찬했다. 유 전 장관은 2월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이전 정권에서는 해마다 10명이상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지만, 지난해에는 50년 만에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흘 뒤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사고로 학생 10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만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초대형 참사가 터졌다. 과도한 ‘자화자찬’이 화를 부른 것은 아닌지. 말이 씨가 된 셈이다. 유 전 장관의 ‘입방정’이 도마에 오른 이유이다. 유 전 장관은 새누리당 인천시장 경선후보로 나섰다.

국민은 초대형 해난 참사에 대응하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꼬집는다. 통합시스템을 구축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재난 및 안전관리를 총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통합시스템은 무기력했다. 침몰신고가 접수된 지 1시간여 지난 뒤에야 중대본이 가동됐다. 잠수구조 인력은 사고발생 후 3시간이 넘어서야 현장에 투입됐다. 게다가 탑승인원과 구조자 집계에 혼선을 빚었다. 탑승인원을 하루 동안 네 번이나 바꾸었다. 구조인원은 첫 발표 보다 절반이하로 줄었다. 실종자는 2배 이상 늘어났다. 중대본이 갈팡질팡하면서 가족뿐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공분을 샀다. 재난발생 시 필수적인 ‘원스톱 지원서비스’도 없었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학생들은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담요 한 장으로 체온을 유지해야 했다.

국민이 박근혜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실종자 가족의 면담에서 고함소리와 거친 욕설이 터져 나온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실종자 가족은 ‘정부가 한 일이 무엇이냐’며 강력히 항의했다. “우리 아들 살려내”, “여기를 어디라고 와”라는 울부짖음도 터져 나왔다. “보여주기식 현장방문 아니냐”, “사진 찍으러 다니는 것도 정도껏 해라”는 비난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 방문으로 3시간동안 수색이 중단되고 모든 인원이 의전에 동원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보다 앞서 실종자 가족을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는 정부 대처 방식과 구조지연에 불만을 토로하는 가족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급기야 “어디서 얼굴을 들고 오느냐”는 고성과 함께 물세례를 받아야 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극에 달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급기야 국민에 대한 직접 호소로 이어졌다.

“전원구출이라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을 보러 이곳에 도착했지만 실상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도 실내체육관 비상상황실에 와보니 책임 있게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상황실도 없었다.”

실종자 가족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이들은 “민간 잠수부 동원해 지원 요청했지만 배도 못 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다.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보내달라 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항의했다. 정부의 거짓 발표와 언론플레이에 대한 이들의 항변을 허투루 넘기기는 어렵다.

“현장을 방문했는데 인원은 200명도 안됐고, 헬기 두 대, 군함 두 척, 경비정 두 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구조대원 8명이 구조작업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인원투입 555명, 헬기 121대, 배 169척을 투입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 대형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로 부산외대 학생 등 10명이 숨지고 204명이 다쳤다. 전형적인 인재였다. 부실시공과 관리허술 등 안전 불감증이 빚은 사고였다. 육지 사고에 이어 이번에는 바다에서 초대형 참사가 생겼다. 이번 참사도 결국엔 인재로 귀결되어질 것이 뻔하다. 벌써부터 김영삼 정부에 이어 육해공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말로만 ‘국민 안전’을 부르짖다가 정작 사고가 발생하면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초대형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벌써부터 예견됐다. 국기를 흔드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과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 이를 잘 말해준다. 들끓는 국민여론에도 박대통령은 남재준 국정원장을 감싸고 돌았다. 형식적 사과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나면 엄벌에 처하겠다”는 엄포만 있었을 뿐이다. 은행에서 수천억원대의 불법대출이 발생하고 금융기관에서 수천만건의 개인정보가 줄줄이 새도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명박 정권의 천안함 사건 대응과 꼭 닮았다. 북한의 공격이라면 이를 막지 못한 지휘관을 문책해야 하지만, 오히려 이들을 승진시킨 게 이명박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을 ‘가치전도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어처구니없는 대처방식이었다. 박 대통령도 이를 따르려는가. 아니면 ‘또 참사가 일어나면 책임자를 엄벌에 처하겠다’며 물러설 것인가.

김영삼 정권 시절 육해공에서 일어난 대형참사로 국민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구포 열차 탈선과 목포 아시아나기 추락, 위도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등이 그것이다.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이다. 피해자와 희생자 유족은 이번 사건을 보면서 당시의 공포를 되새기고 있다. 대형사고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국민의 커다란 불신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국민의 불신은 불행한 결말을 불러올 수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 잇따른 대형 참사에 이은 국민 불안의 끝은 ‘국가부도 사태’였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은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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