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한국 언론도 같이 침몰했습니다. 기자 일을 한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세월호 침몰을 다루는 언론보도를 보며 처음으로 기자라는 직업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는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진도 세월호 침몰사건 현장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카메라를 든 기자들에게 “카메라 들이대면 가만 안 둔다”고 항의하거나 취재를 거부했습니다. “기자들은 다 나가라”는 분위기 때문에 기자들은 수첩을 꺼내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기자들의 핸드폰을 빼앗아 바다로 던져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언론이 자초한 일입니다. 세월호 침몰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무척 우왕좌왕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언론도 우왕좌왕했습니다. 언론들은 사고 초기 ‘전원 구조’라는 집단 오보를 냈습니다. 사고대책반을 꾸린 경기도교육청과 안산 단원고 측의 잘못된 발표 때문이지만, 언론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언론보도를 보고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보도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7일에는 세월호 구조작업 중 산소공급이 진행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지만 이 역시 오보였습니다. 산소공급장비는 도착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해양경찰청의 거짓 발표에 언론이 단체로 오보를 냈습니다. ‘산소공급’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던 유가족들의 심장이 다시 한 번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검색어 장사도 난무했습니다. 세월호 침몰을 언급하며 재난영화를 소개하거나, 제목에 ‘엑소 못 보나’라는 불필요한 표현을 덧붙였다가 비난을 받자 기사를 삭제하거나 제목을 바꿉니다. 세월호가 무슨 보험을 들었는지, 여객선은 어떤 보험을 들었는지 소개해주는 기사를 내보내며 “세월호 보험, 그래도 다행”이라는 네티즌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공영방송 MBC까지 보험금에 주목했습니다. 아직 구조가 진행 중인데다, 온 국민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금 운운하는 기사를 꼭 써야했는지 의문입니다.
 
몇몇 언론들의 기사는 국민들을 분노케 했고, 인터넷은 ‘기레기’(기자+쓰레기)를 비난하는 글로 가득찼습니다. 실종자 가족들과 구조된 피해자들을 향한 카메라는 국민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냥 좀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론 보도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절망을 ‘검색어 장사’로 이용한 행태, 가족이 모두 실종된 어린아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건 아나”라고 물어본 행동 모두 해서는 안 될 짓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자들을 싸잡아 ‘기레기’로 매도하는 현상입니다.

인터넷에는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잘못된 기사나 문제 있는 행태를 누가 캡쳐 해서 올리면, 거기엔 ‘기레기’라는 내용의 댓글이 수백 개가 달립니다. 물론 언론의 잘못된 보도 행태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기자들 전체에 대한 매도로 이어질까봐 우려스럽습니다.

   
▲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기레기’ 비난 글들
 
기자들은 항상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안을 빨리 알려야 하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지만, 인간이기에 누군가의 죽음 앞에 카메라나 마이크를 들이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슬퍼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마이크를 들고 사실을 전달하고, 누군가는 유족에게 말을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 때론 그 죽음이 부당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폭로합니다. 정부에게는 문제가 없었는지, 이 사람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도 기자들입니다. 그래서 정부 정책을 바꾸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기자들은 욕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실종자가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 메시지를 공개한 기사는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기자는 어떤 취재를 하면 ‘기레기’로 취급받고, 또 어떤 취재를 하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좋은 기자가 됩니다. 하지만 두 가지 행동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실종자와 그 가족들의 감동적인 사연을 알기 위해 기자는 굉장히 집요하게 취재했을 것이고, 가족들을 많이 괴롭혔을 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즉 재난사고나 사람의 생사가 오고가는 사안에 대한 취재준칙의 유무입니다. 외국 언론 같은 경우 장례식장을 찍을 때 유족들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도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기레기’들의 탓으로 돌릴 일만은 아닙니다.

이전에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취재했던 한 기자는 “당시 사회부 막내기자였는데 데스크에서 가라고 하길래 나주로 갔다. 무언가 새로운 걸 알아내야 하는데, 어디까지 취재해야 하고 어디까지 취재하지 말아야 하는 지 전혀 몰랐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준칙은커녕,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기사를 쓸 때 어떻게 취재해야하는지 교육받지 못한 기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겁니다.

엄청난 취재경쟁도 기자들을 압박합니다. 기자들은 뭐 하나 새로운 걸 알아내야 한다는 특종경쟁의 압박과 물먹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미디어오늘 기자인 제가 만약 진도 현장에 있었다면 이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요? 자신할 수 없습니다.

이 압박은 회사의 데스크 뿐만이 아니라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욕하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받는 압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기자들이 오보를 쓰고, 비윤리적으로 취재한다고 비난하다가도 ‘언론이 현장 상황에 대해 보도를 안 한다’고 비난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히 확인이 안 돼도 ‘일단 지르고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검색어 장사를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뷰징을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고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매도하고 캡쳐해서 퍼나르고, 메일에 욕을 가득 보내도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뷰징의 원인은 포탈 검색어에 의존해 트래픽을 올리고, 이 트래픽으로 광고를 받아 먹고 사는 인터넷 언론들의 현실, 그리고 이 현실에 철저히 적응해버린 각 언론사 데스크에 있기 때문입니다.

진도 세월호 침몰사건 관련한 어뷰징 기사를 썼다가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은 한 기자는 저에게 “제목은 내가 붙이지 않았다. 조회 수를 의식해 온라인 뉴스팀과 부장이 붙인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 기자는 “하지만 온라인 뉴스팀이 잘못했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회사, 아니 전체 언론사들의 온라인 담당이 그런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 소비자의 대다수가 포털 검색어를 통해 유입되는 한국적 현실에서, 광고로 생존하는 한국 인터넷 매체들은 어뷰징을 안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레기’로 비난받은 기자들이 기자 일을 그만둬도, 그 자리는 곧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고 검색어 장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이 기자는 자신이 충격을 많이 받아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한 인터넷 언론사는 ‘진도 세월호’가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되자 한 부서의 기자들을 모두 동원해 어뷰징 기사를 쓰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기자들은 이러한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작은 인터넷 매체는 물론이고 조중동 같은 주류 매체들의 온라인뉴스팀도 이런 어뷰징 장사를 합니다. 한국 언론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같은 기자가 봐도 쓰레기 같은 기사를 쓰는 쓰레기 같은 기자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레기들보다 현장에서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감시해야할 것은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이 아니라 그 기자들의 이름 뒤에 숨어 제목을 달고, 자극적인 이슈의 취재를 지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괴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자들을 취재 경쟁과 검색어 경쟁으로 내모는 한국 저널리즘의 위기입니다.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기자들이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 사회적 공론화와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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