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한 마디 밝혀 둔다. 이 글은 악플을 각오하고 쓰는 글이다. 따라서 나는 이 글에 달리는 리플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런 글을 쓰는 까닭은 세월호 참사 때문에 지금 이 나라가 놀라움, 경악, 어이없음으로 인해 얼이 빠진 상태, 영어로 stunned 되어 있는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런 멍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솔한 말과 행동을 경계해야 하며, 즉자적인 반응을 삼가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즉자적인 반응에 휩쓸린다면 수많은 손가락질과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이를 막아서고,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이러한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다.

이번 참사에서도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인 관계로 ‘수학여행’이나 ‘체험활동’에 대해 분노를 폭발시키는 즉자적 반응이 분출하고 있다(수학여행 폐지여론 관련 기사). 그러나 이는 ‘해상사고’라는 이 참사의 본질을 전혀 엉뚱한 데로 돌리는 것이다. 이런 식의 여론 몰이에 대해서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참사의 본질을 수학여행으로 돌려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0년에도 학생들이 탄 버스가 열차와 충돌하여 수학여행 중이던 서울 K중학교 3학년 학생 45명이 목숨을 잃은 모산 수학여행 참사, 그리고, 학생들을 태우고 경주를 향하던 열차가 화물열차와 충돌하여 교사 3명, 학생 10명에 사진사 까지 사망한 삼광터널 참사가 있었다.

이 참사들의 본질은 과로에 시달리면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던 버스기사, 열차 제어장치의 고장과 이를 기관사에게 알리지 않은 사령실 직원의 근무 태만에서 비롯된 ‘교통참사’다. 탑승자가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었을 뿐이다. 수학여행을 폐지한다 하더라도 과로한 버스기사는 통근버스나 예비군 수송버스, 혹은 효도관광 버스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을 것이며, 태만한 열차 사령실은 장병수송열차, 유조열차, 고속열차, 지하철 등에서 기어코 사고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여론은 이런 근본문제보다는 즉자적 흥분에 휘말려 수학여행 자체를 문제 삼았고, 결국 정부는 수학여행 자체를 전면 폐지했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소신행정보다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눈치행정의 결과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전세버스 기사들은 격무와 과로에 시달리며 졸음운전의 위험에 처해있고, 열차 등 대량 운수시설 종사자들의 안전 불감증 역시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학생들이 탑승하지 않았다 뿐이지, 우리는 모산참사, 삼광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의 복사판이 다만 승객만 학생이 아니라 일반인으로 바뀌어 수없이 반복되는 것을 망연자실하며 바라보아야 했다.

이번 참사 역시 낡은 배, 무리한 항해 강행, 안전 불감증, 불법적인 구조 변경 등이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1953년의 창경호, 1970년의 남영호, 그리고 1993년의 서해 페리호 사고의 복사판이다. 즉 수학여행참사가 아니라 '해상참사'다. 창경호의 침몰 원인이 쌀 수송, 남영호 침몰 원인이 감귤 수송, 서해 페리호 침몰 원인이 바다낚시가 아니듯,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수학여행이 아니다. 만약 이번에도 수학여행 폐지 쪽으로 여론이 몰려간다면 우리는 공교롭게도 20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대형 해상사고를 2030년 경 또 겪게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런 엉뚱한 과열을 냉각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지식인들이 한 술 더 뜨는 경우까지 있다. 진보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학생들이 지시에 따라 객실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다 참변을 당했다는 상상에 근거하여 ‘교육’ 혹은 ‘사회적 권위’ 그 자체를 마치 이 참사의 원인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우가 그렇다(링크1) (링크2). 이들은 마치 학교가 학생들을 벽 안에 가만히 있기만 하도록 키운 것처럼, 그래서 그렇게 길들여진 버릇 때문에 학생들이 희생된 것인 양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  ‘우리는 가만히 있도록 교육받았고, 끝내 기다려야 했다. 목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라는 표현은 매우 노골적이다. 물론 글쓴이들의 본심은 그게 아니겠지만, 이 만화나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순응만 가르치고, 그래서 학생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못하고 시키는대로 멍하니 앉아있다 목숨을 잃은 것 처럼 착각하기 십상이다.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까닭이 교육받은 대로 행동했기 때문인가? 그래서 교육이 참사의 원인인가?

이들의 주장이 옳다고 치자. 그럼 우리는 5백 명 가량의 승객들이 타고 있는 실내가 매우 복잡한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을 때 선장의 지시를 기다리는 대신 각자의 구명도생을 위해 멋대로 행동하라고 가르쳐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책임 있는 교육자라면 백이면 백 ‘항공기나 선박에서 사고가 나면 침착하게 기장이나 선장의 지시를 기다리며 질서 있게 대피하라’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다. 이 참사는 사회가 교육을 배신한 것이지, 교육이 학생을 배신한 것이 아니다. 책임있는 지식인이라면 교육을 배신한 사회에 항의하고 이를 개선하자고 요청해야지 학생들이 ‘배운 데로 행동했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라는 식의 무책임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 가르친 대로 살수 있게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과 가르침 그 자체를 평가절하하고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물론 이런 글들을 쓴 지식인들도 이런 생각에는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지식인의 글쓰기는 신중해야 한다. 더구나 그 대상이 교육일 경우라면 

세월호 참사는 슬픔을 넘어 분노까지 일으키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원인이 수학여행, 사회적 권위를 인정하는 질서 있는 행동 때문인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은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인재다. 이런 인재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편은 권위를 가져서는 안 되는 자들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참사에서 빚어진 분노를 우리나라의 해상 운수 및 구조 체계 재점검, 나아가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 본연의 임무에 대한 정부의 책무성 강화로 돌리자. 엉뚱하게 수학여행이나 교육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마땅히 화살을 맞아야 할 자들을 기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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