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치러질 서울시장 선거전에서 한강 한 가운데에 자리한 작은 섬 하나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월 5일 식목일엔 정몽준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방문한 데 이어 14일에는 김황식 예비후보도 한강대교를 떠받치는 ‘노들섬’에 선거운동을 하러 왔다. ‘백로가 놀던 징검돌’이란 뜻의 노들섬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소속, 면적 12만m²(3만6천평) 정도의 작은 모래섬으로 아무도 상주하지 않는다. 이 작은 무인도에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이 선거운동을 하러 찾아든 까닭은 무엇일까?

   
노들텃밭. 사진=윤성한 논설위원
 
한강 노들섬에 잇따라 방문하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들 왜? 

그것은 바로 박원순 시장이 3년째 이 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매년 분양하고 있는 ‘노들텃밭’이 있기 때문이다. 2만2,554m²(6823평)의 텃밭이 자리 잡은 노들섬은 새누리당 소속의 오세훈 전 시장이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호주의 시드니처럼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고 한 곳이기도하다. 오 전 시장의 오페라하우스 건립계획은 박시장이 당선된 후 보류됐고, 지금은 매년 600여 시민들이 2평씩 분양받아 농사짓는 ‘텃밭’이 된 것이다.

노들텃밭을 방문한 새누리당 후보들은 하나 같이, 노들섬을 건물과 시설로 채워 넣는 ‘개발’을 하겠다고 공약하고 나섰다. 정몽준 후보는 노들섬에 놀이기구인 ‘대관람차’를 들여놓겠다고 밝혔다. 김황식 후보는 그게 뭔지 아직 모르겠지만,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복합시설공간으로 노들섬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혜훈 예비후보 역시 노들섬을 한류관광 거점 등으로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노들텃밭에선 여의도 63빌딩이 보인다. 사진= 윤성한 논설위원
 
이들 새누리당 후보들은 노들섬이 ‘방치’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김황식 후보는 14일 노들섬에서 대놓고 “노들섬이 고작 텃밭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박 시장 이후 비전의 부재와 규제에 질식돼 있는 한강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정몽준 후보도 한 방송인터뷰에서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안하는 대안이 (고작) 텃밭인가”라고 박 시장을 비판했다.
시민들의 ‘텃밭’이 된 노들섬은 과연 이들 서울시장 후보들의 인식대로 ‘방치’되는 것일 뿐이며, 시민들이 농사짓는 텃밭은 ‘고작’의 사업에 불과한 것일까?

그래서 김황식 후보가 노들섬을 방문했 그날 오후 기자는 노들섬을 찾아가 시민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바람이 제법 불었지만 날씨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 탓에 텃밭 경작 시민들이 간간히 나와 모종을 심거나, 식물에 물을 주거나 ‘멀칭’(작물을 심은 이랑을 제초·보온·보수효과를 위해 비닐, 풀, 짚 등으로 덮는 것)을 하고 있었다.

오세훈의 오페라 하우스가 아닌 박원순의 '시민텃밭'이 있는 노들섬 

시민들은 노들섬의 ‘텃밭’이 서울시장 선거전의 쟁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노들텃밭이 현 박원순 시장이 전임 시장의 오페라하우스 건립계획을 보류하고 추진한 사업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시민도 있었다. 심지어는 오세훈 시장이 시작한 사업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해마다 인터넷으로 신청 받아 랜덤으로 당첨되는 선발방식이다 보니 서울시의 노들텃밭 정책자체에 대해 ‘호불호’를 깊이 생각할 입장이 못 되는 것이었다. 올해 농사가 끝나면, 텃밭 이용 시민들 가운데 우수 경작자 30%를 제외하고는 다음해 노들섬에서의 텃밭농사를 기약하기가 어려운 구조이다. 올해에만 해도 경작자 선발 경쟁이 3대1로 치열했다고 한다. 그런점에서 시민 경작자들의 답변이 천편일률적으로 ‘이해관계자’의 입장일 수 있겠다는 기자의 초보적 선입견은 곧 사라졌다.

   
노들텃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시민. 사진=윤성한 논설위원
 
올해 처음 신청해 당첨됐다는 한 시민 경작자(여, 당산동, 이름과 성명은 밝히지 않았다)를 만났다. 상추모종과 고추모종을 심은 텃밭에 물을 주고 있던 그녀는 “텃밭 말고 다른 좋은 계획이 있다면 잘 쓰였으면 좋겠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공간들도 있을 텐데 굳이 지금 시민들이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을 개발해야 하는지, 꼭 필요한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추, 비타민, 치커리 등 6가지 잎채소 모종이 가지런히 심어져 잘 가꾼 텃밭에 물을 주고 있던 또 다른 여성 경작자에게도 물어보았다. 우수경작자로 선발돼 2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 경작자는 “텃밭으로 쓰기에는 이 노른자위 땅이 아깝다. 잠깐 이 땅의 용도에 대한 계획을 하고 있는 사이에 농사짓는 것일 뿐인 거지. 관광산업이 뜨고 있으니 뭔가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후보들과 인식이 비슷한 시민을 두 번째 인터뷰 대상자에서 바로 만난 셈이다.

   
노들텃밭에서 기르는 토끼 사진=윤성한 논설위원
 
하지만, 기자가 만난 다수의 경작자들은 새누리당의 토건 전시 행정식 개발계획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세 번째로 만난 한 남성 경작자의 밭에서는 3월초에 심었던 감자의 순이 벌써 두둑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랜드마크로 개발하겠다는 것은 실패한 사례도 있고, 성공한 사례도 있다”며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공약 차원에서 전시행정적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종합적으로 고민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는 땅 아깝다" VS "토건 전시행정, 또 부채 만드나"  

새누리당 후보들의 공약에 대해 ‘토건전시행정’이며, ‘시의 부채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경작자들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상추 씨앗을 뿌린 자기 밭에 누군가 갈아엎고 상추모종 등을 심어놨다며 난처해하고 있던, 장원수 씨(51세, 서대문구 무악재). 그는 “새누리당의 공약으로 우리나라의 부채가 그간 얼마나 많이 늘어났나. 박원순 시장하면서 그나마 부채가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부채위에 붕붕 떠있는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니냐”고 말했다. 장 씨의 주변 텃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60대의 여성 경작자는 기자에게 “왜 다른 땅도 많은 데 굳이 여기에다 뭘 짓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여기 경작자들은 다들 반대할 것”이라고 장씨의 이야기를 거들기도 했다.

텃밭작업을 끝내고 귀가하려던 서울시립대 4학년 학생 한태영 씨(26세)도 “노들섬이 텃밭으로 계속 사용되느냐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새누리당이 새로운 걸 하려면 ‘새빛둥둥섬’부터 먼저 처리해 놓고 다른 걸 하겠다고 해야 하지 않느냐”며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전시행정하다 실패한 새빛둥둥섬의 실패를 노들섬에서 재현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한양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이은정 씨(25세)도 “건물을 새로짓는 화려한 전시행정보다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정이 됐으면 좋겠다”며 “노들텃밭이 개발이 된다면,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쫒는 게 되느 것 아니냐”고 말했다.

토지이용 효율성의 관점에서 서울시내 요지를 텃밭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씨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생태와 시민참여의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원수 씨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는 “서울시내에 아이들이 흙을 이렇게 만질 수 있는 공간이 어디 있느냐. 흙을 만지고 농사를 체험하게 하려고 멀리 서울 밖으로도 간다. 서울시내에 이렇게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체험공부가 되느냐. 손바닥만한 흙까지 없애려 해서 되겠냐”고 반박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생태와 시민참여의 공간.” “손바닥 만한 흙까지 없애서야 되겠냐”고 말하는 이들이 말하는 만큼, 노들텃밭은 ‘방치’되고 ‘고작’이 아닌 시민참여와 농업체험의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것일까?

노들텃밭은 서울시내 유일의 도시농업공원 

실제로 노들텃밭은 단순한 ‘텃밭’으로만 기능하는 게 아니다. 서울시내 유일의 ‘도시농업공원’으로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6000천평의 공간에 텃밭만 아니라 논도 있다. 모내기, 벼베기, 김장 등 축제가 매년 벌어진다. 거둬들인 벼로 떡도 해먹고, 텃밭의 무나 배추도 기증받아 김장도 해 축제참여자들과도 함께 나눈다고 한다 연중행사로는 도시농업 교육프로그램, 콘서트, 경작자 캠프, 어린이집 농업체험교육 등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양봉교육, 토종씨앗나눔 측제 등 매주 행사와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노들섬 텃밭 사진=윤성한 논설위원
 
작업복 차림에 텃밭 경작자들의 지원요구와 상담에 여념 없는 조기진 노들텃밭 센터장을 불들고 물었다. 서울시가 생각하는 노들텃밭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정리했다. “서울시는 시민들에게 그냥 터전을 마련해주고, 좀 더 재미있게 농사를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일 뿐”이라며 “노들텃밭은 만들어진 공원이 아니라 매년 시민들과 단체들이 만들어내는 공원이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노들텃밭은 사실 서울시만의 독창적 사업은 아니다. 오히려 선진국의 대도시에는 더 크게 활성화된 도시농업공원이 있다.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곳이 일본 도쿄의 아다쿠치 도시농업공원이다(인용, 금강일보). 일본 도쿄뿐만 아니라, 미국의 뉴욕, 캐나다의 밴쿠버 등 선진국의 대도시에서 농업공원이 활성화되고 있다. 건강과 생태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시민들의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 대통령 부인인 미셀 오바마 여사는 백악관 앞뜰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셀 오바마도 도시농부, 백악관 앞뜰에서 텃밭 일궈  

노들텃밭 입구 노들텃밭 지원센터 건물 벽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있다. ‘BMW로만 올 수 있습니다’. 버스, 자전거, 전철을 이용하거나 걸어서만 노들섬 텃밭으로 들어 올 수 있다는 의미다. 개인 자동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도 없지만, 도시에 살면서도 생태적 삶의 방식을 작게라도 실천해보라는 의미인 것이다.

   
포털(다음) 지도에서 본 노들섬
 
인터넷 포털의 지도 서비스를 통해 서울시를 조망해 보면, 그 지도에선 건물과 시설이 대부분을 차지한 회색의 바다 위에 왜소한 녹색공간들이 섬처럼 점점이 박혀 있는 서울시를 보게 된다. 인구 1000만의 서울시는 ‘개발’에 ‘개발’을 거듭하여 점점 더 녹색을 잠식하는 회색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색 도시에 남은 작은 녹색의 공간들 가운데 한강 노들섬도 보인다. 6월 4일 서울시장선거에서 서울 시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도시농업공원 푸른 노들섬의 운명이 달려있다. 서울시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녹색일까? 회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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