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진상수사팀이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혐의로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하고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의혹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는 유우성씨 사건 재판에서 비공개로 증언한 탈북자 A씨의 증언 내용과 관련 탄원서가 어떻게 외부로 유출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탈북자 A씨는 지난 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비공개 증언을 유출한 사건 관계자들과 관련 탄원서 내용을 공개한 2차 유출자 문화일보를 고소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문화일보, ‘탈북자 탄원서’ 공개했다 기사 내린 이유는?>

A씨의 기자회견 내용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토대로 상황을 정리해보자. A씨는 지난해 12월 16일 국정원의 요청으로 유우성씨 간첩사건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은 유씨 남매가 두만강을 건넜고, 두만강의 국경 경비초소인 ‘뱀골초소’를 통해 북한을 출입했다고 추정했다. A씨는 항소심 재판에서 도강의 방식과 뱀골초소에 대해 증언했다.

한 달이 지난 1월 6일, A씨는 자신의 증언 내용이 북한 보위부에 알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북한에 있는 A씨의 딸이 전화를 걸어 북한 보위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말한 것이다. 보위부 요원들은 ‘A가 남조선 재판소에 가서 공화국의 위신을 훼손시키는 행위를 하고 있다’며 A씨의 딸을 추궁했다고 한다. 자신의 증언이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었음을 알게 된 A씨는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 탈북자 A씨가 자신의 증언 사실이 북한에 유출됐다며 검찰에 수사를 요청, 증언 유출자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7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사진=연합뉴스
 
A씨에 따르면 탄원서 제출 이후, 간첩 증거조작 논란이 불거진 2월 중순 국정원은 탄원서 제출 경위에 대해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A씨는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긴 했으나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까봐 인터뷰를 못한다고 밝혔다. A씨는 “국정원이 이후에도 다른 언론사 두 곳과 인터뷰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탄원서는 엉뚱하게도 문화일보에 의해 공개된다. 문화일보는 지난 1일 1면 머리기사 <탈북자 ‘비공개 법정증언’ 北에 유출>에서 A씨의 법정 증언이 유출됐으며 A씨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내용을 보도한다. 3면 기사에서는 A씨의 탄원서 전문까지 공개했다.

A씨는 기사가 나간 뒤 문화일보의 담당기자와 사회부장에게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기사는 모두 내려갔다. 해당 기사들은 문화일보 홈페이지와 아이서퍼(신문 스크랩 서비스)에서 모두 삭제된 상태다. 박민 문화일보 사회부장은 “본인의 요청에 따라 내부 협의를 통해서 기사를 내렸다”고만 답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언론들이 후속 보도를 하면서 탄원서 내용은 만천하에 알려졌다. A씨는 탄원서가 문화일보에 공개된 이후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고 이에 법정 증언을 유출한 사건 관련자들과 탄원서 내용을 보도한 문화일보를 고소한다.

A씨는 국정원이 이 탄원서를 언론에 유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기사가 나간 뒤 문화일보 박민 부장에게 항의하자 박 부장이 누군가 기사를 승인했다는 듯이 말하면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A씨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문화일보에 소송을 걸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뒤 국정원 이모처장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밝혔다. 이 처장은 유우성씨 사건 수사를 지휘한 팀장으로, 국정원 직원 ‘김 사장’, ‘권 과장’과 함께 증거조작 관련 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A씨가 이 처장과의 만남을 거부하자 이 처장이 회사로 찾아와 소송을 만류했다고 한다. 유출 당사자가 아니라면 소송을 만류할 이유가 없기에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문화일보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박민 사회부장은 “A씨가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 언론에 말하고 다녀 법적인 조치를 취할지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탄원서의 출처에 대해서는 “기자니까 알겠지만 기자가 취재원에 대해 말할 순 없다”고만 답했다.

   
▲ 4월 1일자 문화일보 1면. 왼쪽은 1일 배달된 신문, 오른쪽은 이후 기사가 삭제된 아이서퍼 갈무리.
 
하지만 중앙일보의 경우 국정원으로부터 탄원서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지난 2일 13면에서 탄원서 내용에 대해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국정원이 공개한 1월 14일자 탄원서”라며 기사에서 출처를 밝혔다. A씨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문화일보 보도 다음날 같은 내용의 기사를 쓴 중앙일보 기자에게 항의 전화를 하니 ‘국정원에서 탄원서를 받았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묻기 위해 정철근 중앙일보 사회부장과 통화했으나 정 부장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정원이 간첩조작의 실체가 드러나며 수세에 몰리자 몇몇 언론에 정보를 흘리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언론은 탄원서 내용을 보도하며 유우성씨가 간첩으로 의심된다는 식의 기사를 쓰거나 변호인단 측이 비공개 증언을 외부로 공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이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간첩조작 논란이 일던 3월 세계일보와 문화일보, TV조선 등은 ‘공안당국 관계자’ 등의 입을 빌리거나 유씨가 수사기관에 증언한 내용을 바탕으로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의심할 만하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유씨측 변호인단은 “국정원과 검찰이 유씨에 대한 인신공격 용도로 몇몇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한국일보가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을 때도 국정원이 녹취록을 흘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관련기사 : <문화일보, ‘신빙성 없는’ 탈북자 증언이 ‘반박논리’?>
              <“간첩 의심 안 하는 게 이상” 증거조작 물타기 하는 언론>
              <민변, 증거조작사건 왜곡보도에 ‘법적 조치’ 예고>
              <간첩증거조작, 보수언론의 도 넘은 ‘왜곡보도’>
              <유우성 의심하는 언론, 간첩수사 당위성 어필 중?>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정원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부터 언론을 이용해왔다. 최근 대선개입 사건 공판에서 국정원이 브레이크뉴스 등 몇몇 보수 인터넷언론에 칼럼이나 기사를 청탁하고, 국정원 계정들이 이를 리트윗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탄원서를 공개한 이후 문화일보는 4월 2일자 사설에서 “비공개 재판임을 믿고 ‘양심과 위증의 벌’까지 선서한 탈북자 증인이 ”천만번 후회 한다“고 자책하기에 이르렀고, 북에 남은 자녀의 안위를 위협하는 지경이 됐다”며 “공안 당국은 물론 사법부까지 유출 과정을 밝혀내야 할 책임이 무겁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인 동의도 없이 탄원서 내용을 공개해 A씨의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린 장본인은 문화일보와 중앙일보 등 언론이었고, 탄원서 유출 경로는 ‘국정원->언론’이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