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한국 근현대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검찰 조사가 형사부에서 공안부로 재배당되면서 검찰 수사 방향이 영화 내용조사에서 제작에 도움을 준 ‘배후 세력’를 캐는 방향으로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미디어오늘이 피조사자와 검찰 관계자 등을 취재한 결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에서 3차 피고소인 조사까지 받은 김지영 백년전쟁 감독은 지난 2월 검찰 정기인사로 담당검사가 교체된 지 한 달 만에 백년전쟁 관련 소송 건이 공안1부(이현철 부장검사)로 재배당됐음을 지난달 21일 통보받았다.

백년전쟁은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로, 지난해 5월 이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는 김지영 감독과 최진아 PD,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김 감독은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원래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에서 3회 조사를 받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공안부로 넘어가면서 보강조사가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겠다고 들었다”며 “바뀐 공안부 조사에서는 영화 내용에 대한 조사보다 영화 제작을 도와준 관계자 파악이 주를 이뤘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이어 “지난 8일 공안1부에서 8시간 정도 조사를 받았는데 (영화) 내용 조사는 1시간 반도 안 되고 나머지는 관계자를 파악하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며 “검찰은 여태까지 증거로 제시한 자료들을 누가 줬고, 어디서 입수를 했는지, 민족문제연구소가 어떻게 관여를 했는지 등을 물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찰이 영화의 명예훼손 내용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혐의점을 못 잡으니 다른 쪽(공안 사건)으로 방향을 튼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고소 내용과 상관없는 사실과 이와 관련된 관계자들을 캐물은 것을 보면 다른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전쟁>
 
이와 관련해 민족문제연구소도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무려 1년간의 조사에도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 것은 전문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초 이승만 측의 소송 제기 자체가 무리였다는 방증”이라며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는커녕 다시 공안부로 재배당하는 납득할 수 없는 악수를 두고 있다”고 규탄했다.

연구소는 또 “우리는 이승만이든 박정희든 그 대상이 누구든 과오를 부인한다든지 우상화하는 찬양 왜곡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 왔을 뿐”이라며 “사자명예훼손 소송을 공안사건화하려는 검찰의 태도는 극우세력의 청탁 수사인지, 고위층의 명령 수사인지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로 끊임없이 재조명될 인물이고, 영화 '백년전쟁'은 이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이 과장되거나 납득이 안 가는 것이 있다는 것 등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알린 것”이라며 “형사1부 명예훼손 건을 국기문란을 수사하는 공안1부에 재배당한 이유는 백년전쟁을 약간이라도 흠집 잡아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으려는 연구자들과 국민을 겁주려는 종북몰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사자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고 조사를 하다 보면 다른 혐의점이 나올 수도 있지만 현재 상태에선 국가보안법 위반 사항이 있어서 공안부로 갔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관련한 사건이고, 대한민국 역사와도 관련성이 있어 공안부에서 심층적으로 검토해 보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 방향이 혐의 내용보다 관계자 파악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선 “아직 감독 한 사람밖에 안 불렀지만,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필요한 범위 내에서 누구라도 부를 수 있는 게 수사”라며 “수사를 하면서 처음부터 수사 대상자 범위를 정해 놓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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