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중앙합동신문센터를 기자단에 공개했지만 오히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와 동일한 최고등급의 국가보안 목표시설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국정원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문서 위조가 사실로 드러나 윗선 지시 여부를 밝히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 됐고, 이번 사건의 출발지인 합동신문센터도 강압적인 조사를 통해 간첩을 조작하는 곳으로 의심받고 있다.

유우성씨의 동생인 유가려씨는 2년 반 동안 합동신문센터에서 지내면서'오빠는 간첩이다'라는 진술을 강요받았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합동신문센터를 언론에 공개하기로 한 것은 센터 운영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운영상 인권 침해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직접 합동신문센터에 다녀온 언론 매체들 사이에선 준비된 각본에 의한 보여주기식 이벤트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정원은 기자들에게 5명의 탈북자들을 인터뷰할 기회를 줬는데 오히려 탈북자들은 의도치 않게 합동신문센터 운영상 문제점을 털어놓기도 했다.

헤럴드경제는 "인터뷰에 응한 탈북자 중 어느 누구도 묵비권을 고지받았다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을 조사관으로부터 들었다던 탈북자도 있었다. 엄중한 감시와 경계를 받고 있는 통제사회 북한에서 살다온 이들은 이 말이 인권 침해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했다"고 보도했다.

인터뷰를 했던 10대 탈북 여성은 남성 조사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신문 내용을 확인하도록 알려줬다는 증언도 1명에 그쳤다. 다만, 이들은 국정원 조사관을 '선생님'이라고 칭하며 "폭행이나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유가려씨가 CCTV가 있는 1인실에서 생활하면서 센터 측이 달력을 제공하지도 않았고 방문도 밖에서 문을 잠갔다고 주장한 내용도 국정원은 인정했다. 사실상 감금을 했다는 것인데 옆방 사람들과 조사 내용을 공유할 수 있고 달력에 조사 내용을 메모해 허위 진술을 할 수 있다는 해명이 뒤따랐다.

합동신문센터에 다녀온 한국일보 조원일 기자는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탈북자 조사 과정 메뉴얼이 있다고 했다가 오락가락하고 탈북자 인터뷰에서도 진술 조서 확인 과정 절차가 미준수되고 있고, 여성 탈북자의 경우 조사 수칙상 조사관 2명이 조사한다고 돼 있었는데 10대 탈북 여성의 경우 남성 1명이 조사를 한 것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조 기자는 "국정원은 CCTV 녹화와 관련해 장기조사를 넘어가는 사람에 한해 녹화를 한다고 했지만 장기조사라는 개념이 북한 주요인사인지 간첩 혐의자에 해당되는 건지 불분명했다. 조사실 CCTV도 모니터링을 한다고 했는데 모니터링 하는 상주 직원들은 없다고 해서 앞뒤가 안 맞고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달랐다"며 "국정원이 명확한 메뉴얼 세워두고 적합하게 집행했어야 하는데 본인들이 원칙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합동신문센터 공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라면서도 "브리핑에서 연도별 탈북자 수치까지 제시하고 위장 간첩 검거자와 위조 탈북자수, 성별, 직업분류, 위치까지 공개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주의해야 한다는 별도의 요청이 없었다는 것은 의아스러웠다”고 전했다.

국정원 입장에서 불리한 지적이 나올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기밀시설인 합동신문센터를 공개하는 '결단'을 내린 배경 속에는 논란 자체를 만드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들 사이에서 공개 결정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는 것 자체로 국가 안보라는 명분을 놓고 싸우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이번 국정원의 합동신문센터 공개 결정에 대해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때와 여러모로 상황이 닮았다"는 지적을 내놨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국정원이 2급 비밀 대화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한 것처럼 국정원 간첩 사건에서도 합동신문센터 운영에 대해 안보상 기밀이라고 공개를 꺼리더니 비난 여론을 타개할 방책으로 국가보안시설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 국정원 전경 ⓒ노컷뉴스
 

반면, 보수 언론들은 합동신문센터 공개가 못마땅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국정원이 비난 여론에 떠밀려 신문센터를 공개했지만 국가 안보를 위한 신문센터 운영의 정당성이 훼손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식이다.

동아일보는 "합신센터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한 게 바람직한가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가 안보를 위한 최전선 중 하나인 합신센터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언론에 노출하는 것 자체가 안보 침해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국정원 신문센터 공개, 신뢰성 높이는 계기 돼야>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만일 이 단계(신문센터)를 통해 위장 탈북 등이 걸러지지 않는다면 조사 대상자들은 한국 국적과 지원금을 받고 생활하게 된다. 간첩이나 위장 탈북자에겐 합법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루트가 되는 셈"이라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 역시 중국 국적의 화교라는 정체를 감추고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들어온 경우였다. 합신센터가 간첩이나 위장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오는 창구가 되지 않도록 조사 기법을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침해 논란은 온데 간데 없이 '간첩 잡는' 합동신문센터의 운영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국민일보는 "주요 위장간첩 사건 판결문에는 간첩들이 남파에 앞서 합신센터 조사를 무사히 통과하는 방법 등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는 내용이 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 전에 ‘하늘이 맑고 바다도 푸르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등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반복 실습을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민일보는 공안통 검사의 말을 인용해 “고문도 이겨내도록 교육받는 간첩들을 신사적인 대우를 통해 가려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센터에서 철저한 조사를 하지 않으면 간첩을 그냥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대공 수사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합동신문센터 측의 인권침해적 조사를 용인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국정원이 이번 합동신문센터 공개를 결정하면서 의도한 것도 국가안보를 내세워 인권침해 논란을 잠재우고 신문센터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키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인모임 변호인단은 합동신문센터 공개 결정에 대해 "국정원이 제공하는 일방적이고 자기 합리화식의 설명과 해명, 그리고 미리 준비돼 국정원의 의도에 따라 진술할 수밖에 없는 수용 탈북자의 인터뷰, 그리고 제한적 공개로 마치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없는 양 호도하기 위한 행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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