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17년 철권통치’를 지탱했던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었을까. 세간에서 ‘남산’으로 통칭되던 중앙정보부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중정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무자비한 고문으로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인혁당 사건처럼 용공조작을 통해 ‘사법살인’을 자행하기도 했다. 여당의원이 남산에 끌려가 수염을 잡아 뜯겼다는 일화도 널리 퍼졌다. 정치인은 물론, 민간인에 대한 사찰은 주요업무 중 하나였다. 사석에서 박정희를 욕했다는 이유로 잡혀가기도 했다. 치도곤을 맞는 것은 통과의례였다. ‘낮말은 중정이 듣고 밤말은 남산이 듣는다’는 말도 나돌았다. 권력의 정점은 어디로 향했는가. ‘반신반인’ 박정희도 자신이 키운 ‘남산’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렇다면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는 ‘정권안보의 보위기구’는 어디인가. 정권 초기에는 아버지처럼 중정의 후신인 국정원이 보위기구를 자임했다. 그러나 선거개입과 간첩증거 조작이 드러나면서 2선으로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그 자리를 이제는 검찰이 대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검찰의 행태를 보면 ‘정치검찰’의 면모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이나 최근 불거진 국정원의 간첩증거조작 사건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검찰은 권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정권의 시녀’ 또는 ‘정권의 개’(견찰)라는 국민의 비아냥은 아직도 유효하다. 참여연대의 진단이다.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견제 받지 않는 독점권력’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통치’하는 데 검찰을 가장 중시한다. 대선기간에는 검찰출신인 안대희 전 대법관을 캠프의 요직에 끌어들였다.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 및 민정수석, 헌법재판소장, 법무부 장관은 모두 전직 검사이다. 특히 김기춘 비서실장과 홍경식 민정수석, 황교안 법무장관은 모두 공안검사를 지냈다. ‘공안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들을 통해 검찰을 장악하고, 검찰에 의한 ‘대리 통치’를 강화하겠다는 의중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청와대에는 전직 별들이 득시글하고 국정원장도 군 장성 출신이다. 검찰은 ‘검사 동일체 원칙’을 신봉할 정도로 상명하복에 충실하다. 상관에 대한 충성도에서는 군 출신을 능가할 직종이 없다. 박 대통령의 ‘심기 통치’을 위한 용병술을 짐작하게 한다.

검찰을 장악하기 위한 박 대통령의 집요한 시도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에서 민낯을 드러냈다. 취임 이전부터 채 전 총장은 박근혜 사람이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는 검찰총장에 취임한 뒤 나름대로 검찰개혁에 의지를 보였다. “든든한 인권의 보루로서 내 이웃과 공동체의 평온하고 안전한 삶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신뢰회복의 길”이라는 취임사에서 엿볼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 수사에 박차를 가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커져갔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이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수사에 박차를 가하자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인 찍어내기에 나섰다. 그래서 터져 나온 게 조선일보 보도로 시작된 채 전 총장의 혼외자식 스캔들이다. 결국 채 총장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김기춘 비서실장 라인으로 평가받는 김진태 총장이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사생활 뒷조사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개입돼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의 수사의지는 별로 없다. 최근에는 청와대 비서실이 전방위로 나섰다는 증거도 나왔다. 그러나 몇 달 동안 법리검토만 하더니 정당한 감찰활동으로 처벌이 어렵다는 내부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더구나 검찰은 이 사건 수사를 맡았던 오현철 부장검사를 지방으로 발령내고 수사팀에서 배제시켰다. 윗선과 배후 밝히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반면 채 전 총장의 개인비위 의혹 수사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채 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씨 출산병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먼지털기식 수사가 강도높게 진행됐다. 도덕성에 흠집을 내 불법사찰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어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수사팀에 대한 윗선의 통제가 강화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법무부 장관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다. 진상규명은 더욱 어려워졌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수사에 강한 소신을 보였던 윤석열 부장검사의 수사팀은 해체됐다. 게다가 윤 검사는 지시불이행으로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공안라인으로 구성된 이른바 ‘윗선’이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국가기관의 불법행위에 애써 눈감고 수사팀의 손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은 “말 잘 듣는 검사에게는 당근을 주고, 소신을 고집하는 자에게는 보복인사나 징계 등으로 채찍을 휘두르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권력은 ‘통치’를 위해 검찰의 고삐를 죄고, 검찰은 출세를 위해 정권에 충성하는 관행이 더욱 굳어진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수사는 ‘정치검찰’로의 회귀를 보여주는 계기였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 핵심인사들이 비밀로 분류된 대화록(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위 ‘NLL 양보주장’)을 끄집어내 악용한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여권의 ‘사초폐기’ 여론몰이에 맞춰 사건을 비틀었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대범죄를 저지른 주범이라는 취지의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반면 명백한 범법행위인 대화록유출 수사는 시늉만 냈다. 대화록을 불법 유출하고 불법 입수한 혐의를 받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과 김무성 의원에 대해 무혐의처분을 내렸다. 오히려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댓글활동을 제보한 국정원 직원 2명을 기소했다. 이들 제보의 공익성은 무시됐다. 정치적 편파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검찰은 야당과 진보세력을 옭아매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에도 선봉에 섰다. 이석기 진보당 의원을 국가보안법이 아닌 형법상 내란음모죄로 기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법무부는 이른바 ‘종북’ 성향을 이유로 진보당 해산절차에 착수했다. 검찰이 조작된 증거를 법정에 제출하면서까지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낙인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에 ‘종북’ 딱지를 붙이기 위한 것이다. 6월 지방선거에서 박 시장을 몰아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고 볼 수 있다. 영국 권위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제기한 의혹이다. 그러나 검찰은 국정원의 간첩증거 조작 수사에는 미적거리기만 한다. 박근혜 정부는 야권과 시민사회의 특검도입 주장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제 검찰은 법 집행을 넘어 정치를 하고 있다고나 할까. ‘공안 전성시대’의 검찰에 맞는 역할수행인 셈이다.

검찰은 ‘무오류의 원칙’을 무기로 한다. 과거 권한남용으로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을 대거 양산했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시국사건에 대해 무차별 상고를 일삼는 행태가 이를 증명한다. 1차 인혁당 사건과 울릉도 간첩단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부림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오랫동안 고통받은 억울한 피해자들은 더욱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통일사회당 사건 윤길중씨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검사를 중징계한 것도 그렇다. 끝까지 소신을 지킨 임 검사에 대한 중징계는 한편의 코미디에 다름없다. 이러한 행태는 잘못된 과거사를 부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치인들의 뻔뻔함과 다를 바 없다. 유신독재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신공주’ 박 대통령 눈치보기에 급급한 치졸한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통성 없는 권력이 ‘법과 질서’를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힘있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힘없는 자들에게는 추상같은 게 법과 질서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나약하면서도 힘없는 사람에겐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게 검찰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조작 사건에서 보듯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는 권력자의 일만 분의 일 만큼도 관심이 없다. 최근의 ‘황제 노역’ 파문을 보아도 그렇다. 최종책임은 ‘일당 5억원짜리 노역’을 판결한 판사에게 있다. 그러나 검사는 이이 벌금형의 선고유예를 구형했다. 검사의 책임도 크다는 얘기다. 판사는 옷을 벗었지만, 검사는 아무런 제스처도 없다. 결국 검찰독립은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될 뿐이다. 이제 검찰은 정치적 종속의 길을 걸으면서 집권세력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영예와 사명을 던져버렸다.

참여연대는 최근 발간한 ‘박근혜 정부 1년 검찰 보고서’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검찰의 정치적 종속성과 ․편파성을 타파하여 정치적으로 독립된 검찰을 확립하는 것, 검찰의 독점권력과 과잉 권력을 깨뜨려 견제와 균형 관계에 놓인 검찰권을 확립하는 것이 ‘정상화’를 의미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정치검찰로서, 또한 견제받지 않는 독점권력으로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운영 기조로 내세우고 있지만, 검찰은 오히려 비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인 셈이다. “현재 검찰은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을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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