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임성한-문영남 작가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이름 뒤에 ‘월드’가 붙는 별호를 가졌다는 점이다. 비록 임성한-문영남 월드가 죽음-우연-불륜으로 점철된 괴악한 세계라 할지라도 작가에게 그만이 창조할 수 있는 ‘월드’가 있다는 것은 명예로운 쪽의 수식어다.

‘김수현 월드’는 어떨까? ‘말 잘하는 캐릭터 집합소’라는 평을 들을 만큼 초기 시놉시스부터 주관이 뚜렷한 인물들을 그려내기로 유명한 김 작가의 ‘월드’에선 주인공들은 때론 ‘시청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평을 들을 만큼 자신의 욕망과 주장을 뚜렷이 표출하는 삶을 살아간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세 번 결혼한 여자>가 지난달 30일에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그 엔딩에 대한 시청자의 의견은 분분하다. 아이를 낳자마자 시댁에 넘겨주고 홀로 서기 한 여주인공이 맨 마지막 장면에 혼자 맥주를 시원하게 털어놓고 ‘끄윽’ 트림을 하는 엔딩 장면은 ‘정말 괴상하다’ 라는 평가를 받았고 ‘불륜녀’ 이다미와 다시 만나는 남편 김준구, 아동 학대 싸이코 며느리 채린의 임신 등을 두고 ‘이렇게 찝찝한 결말이라니’ “권선징악이 무너졌다.”라는 원성도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SBS 드라마 '세번 결혼하는 여자'의 엔딩 장면.
 

언론도 이런 비판에 가세했다. 인터넷 연예 뉴스 엔터미디어는 1일 <'세결여' 엔딩 김수현 작가 필생의 오점 되나>라는 기사에서 “아무래도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라는 기대감이 드라마 후반 급전개 된 결말로 인해 실망감으로 바뀌면서 벌어진 일일 것이다. ‘세결여’는 확실히 드라마 완성도에서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드라마로 그다지 화제가 되지 못한 주인공들”이라면서 이번 드라마의 엔딩이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는 주장을 펼쳤다.

다른 언론들도 김수현 작가가 시청률을 의식해 드라마의 결말을 급선회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스포츠 경향은 지난달 31일 <‘세결여’가 김수현 작가님 작품 맞나요?> 기사에서 “막장까지는 아니지만 억지스런 전개가 중반부에 펼쳐지더니 급기야 결말은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다. 혹시 김작가 마저 시청률에 연연해 본연의 작가정신을 잃어버린게 아닐까라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면서 김 작가가 전작들 보다 다소 낮은 시청률 때문에 ‘막장’으로 결말을 선회했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작가는 정말 시청률 때문에 주인공 부부의 재결합 해피엔딩을 틀어 결말을 바꾼 것일까? 이에 대해 제작사 측은 MBN과의 인터뷰에서 "김수현 작가가 처음부터 생각했던 결말이었다. '세결여'의 제목은 사실 트릭이었다. 시청자들이 이 트릭을 사실처럼 생각하셔서 결말에 대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제목부터 <세번 결혼하는 여자>였던 이번 드라마가 주인공 오은수(이지아)가 두 번의 이혼 끝에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기 자신과 결혼했다는 결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시청자들의 ‘배신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다소 ‘문제적인’ 엔딩은 김 작가의 전작을 생각해 보면 이해 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기실 김수현 작가의 결혼 제도로 대변되는 사회적 관습에 대한 성찰과 파격적 엔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에서는 미혼모 여성의 아이를 대가족이 함께 키우는 설정으로 ‘과연 결혼제도만이 완벽한 육아의 모델인가’라는 물음을 던졌고 이영애-이경영 주연의 SBS 드라마 <불꽃>에서는 재벌가에 시집갔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생활을 박차고 나와 여행지에서 불같이 끌린 남자와 함께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설정이 등장했다.

   
▲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엔딩 장면.
 

80년대 인기 드라마 차화연-남성훈 주연의 <사랑과 야망>은 어땠나. 서로 싸우다 미자(차화연)의 뺨을 때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태준의 모습을 담은 엔딩은 '주인공=행복'의 등식을 깬 충격 그 자체였다. 한고은-조민기 주연의 2000년대 동명의 리메이크작도 이별을 반복하며 지난한 세월을 겪어낸 미자(한고은)와 태준(조민기)이 사랑으로 서로를 감싸지만 여자는 지난 날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아버지”를 울부짖는다. 그 모습을 아프게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과 함께 드라마는 끝이 난다.

김희애의 불륜녀 변신으로 화제가 되었던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은 남녀가 같이 생활하는 도중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설정으로 사랑과 사회적 시선이 충돌할 경우 선택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동성애 연인을 등장시키고 그 연인을 가족이 인정하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호평을 받은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도 있다.

김 작가 다수의 드라마에 ‘개성 강한 주인공의 일탈의 삶을 끌어안는 헌신적인 부모와 대가족’이라는 공통의 클리셰가 존재한다며 작가를 ‘가부장 문화 옹호자’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하지만 이는 김수현 작가가 40년 동안이나 ‘연속극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대가족 제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주인공들을 꾸준히 그려왔다는 점은 외면하는 비판이다.

무엇보다도 ‘불륜-복수-흐지부지 해피엔딩’으로 점철된 한국의 드라마 시장에 꾸준한 시청률과 함께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드라마를 쓰는 70대 노작가의 브랜드는 평가받아 마땅하다.

웃기려는 장면도 아닌데 맥주를 마시고 트림을 하는 황금시간대의 여주인공이라니 … 너무도 신선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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