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아무리 인기 높은 프로그램도 언젠가는 종영을 한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도 마찬가지다. 2006년 5월 6일 첫 방송된 무한도전이 최근 종영설로 여론의 관심을 모았다. 끝을 아무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면 놀랄 일이다. <무한도전>은 반드시 종영한다. 종영 시기는 여론이 정할수도, 연출자와 출연자가 정할 수도 있다. 행복한 건 후자의 경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3월 26일 김태호 PD는 모 대학에서 열린 ‘기존 예능의 시스템을 바꾸다’란 주제의 멘토 특강에서 무한도전을 언급하며 “10년째에 멋있게 콘서트하면서 퇴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며 “멤버들을 위해서라도, 저를 위해서라도 그게 좋을 것 같지만 회사에서 허락을 해줄 진 모르겠다”고 밝혔다.

삶의 행복은 좋은 끝맺음에 있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MBC 예능 <놀러와>가 갑작스레 종영하며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하자 진행자 유재석은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예능프로그램의 끝은 비극이 많다. 시청률 때문이다. 만약 PD가 스스로 해피앤딩을 설계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김태호 PD의 바람은 당연하고 솔직하다.

   
▲ 김태호 MBC 예능PD. ⓒ이치열 기자
 
김태호 PD의 바람은 주변의 비극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놀러와의 비극은 ‘김재철 체제’가 불러왔다. 경영진은 8년간 장수하던 놀러와가 시청률이 주춤하자 폐지를 일방 통보했다. 이후 MBC는 월요일 밤 11시 예능경쟁에서 완패하며 아예 예능편성을 없앴다. 예능PD들은 MBC노동조합의 170일 파업 이후 무너진 경쟁력을 일으켰지만 경영진에 의해 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일례로 <진짜 사나이>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시청률 20%의 주말예능 1인자였다. 그러나 그해 11월 ‘이외수 통편집’ 논란 뒤 10%초반 시청률로 반 토막 났다. 제작진은 천안함이 있는 평택 해군 2함대를 방문해 소설가 이외수씨 강연을 담았다. 하지만 이씨가 ‘천안함 사건은 북한에 의한 폭침’이란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영진이 해당 분량의 통 편집을 정당화했다.

MBC 예능PD들은 2011년 김재철 사장 이하 경영진을 향해 성명을 내고 “경영진에게 예능 PD는 시청률이 잘 나오면 보배 같지만 어느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잘라버리는 존재”라며 “많은 PD들이 회사에서 밤을 새우며 노력했지만 돌아온 건 갈수록 커지는 희생뿐이었다”며 문제를 공론화한 적이 있다. 하지만 2014년 오늘, 김재철 체제도 PD들의 노동환경도 변한 게 없다.

무한도전 종영설에 대한 MBC 공식입장을 보자. MBC는 27일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대학 특강에서 내년 무한도전의 종영을 언급했다는 기사와 관련해 김태호 PD에게 확인한 결과, ‘내년 4월 10주년 특집까지는 큰 계획을 이미 만들어 놨으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개인적 바람을 얘기한 것일 뿐 무한도전의 종영을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알렸다.

   
▲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그러나 누가 읽어도 김태호 PD의 발언은 무한도전의 마지막에 관한 것이다. 연출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종영설이 확산되자 회사에선 ‘난리’가 났을 거다. 아마 경영진은 김태호 PD를 향해 “절대 종영이 아니다”라는 글을 본인의 트위터에 올리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을지도 모른다. 경영진에게 무한도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상품’이다.

무한도전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코바코)가 선정하는 프로그램 몰입도(PEI) 순위에서 두 달 연속 1위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광고주들로부터 최정상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무한도전은 CJ E&M·닐슨코리아가 온라인에서의 콘텐츠영향력 측정을 위해 개발한 콘텐츠파워지수(CPI) 최신자료(3/10~3/16)에서도 예능프로그램부문 1위를 기록했다.

3월 22일 무한도전은 11.5%(닐슨코리아 기준)시청률로 동시간대 예능프로그램 2위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최고의 광고효과를 보는 프로그램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더욱이 최근 공개된 ‘방통위 시청점유율 조사검증연구’에 따르면 시청률조사연령비율이 닐슨코리아·TNms 모두 20~30대가 20%, 50대 이상이 40%수준이어서 무한도전의 실질 시청률은 더 높을 것으로 예측된다.

무한도전은 경영진에게 대체재가 없는 ‘명확한 수익모델’이어서 절대 종영설이 확산돼선 안 될 운명이다. 그러나 시청률이나 정치적 논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놀러와나 진짜사나이 같은 운명에 놓일 수도 있다. 2011년 당시 김태호 PD는 기자에게 하루 평균 16시간을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밌어서 힘든 부분을 감내하는 거지, 일로만 따지면 못할 일”이라며 속마음을 털어 놓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무한도전을 쉼 없이 9년 째 연출하고 있다.

   
▲ 2012년 방송사파업을 알리는 뮤직비디오 '흰수염 고래'의 한 장면.
 
김태호 PD는 MBC노동조합의 170일 총파업에 참여한 뒤 김재철 사장이 건재했던 시기에도 묵묵히 연출했다. 이제는 ‘재미’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시절이다. 그러나 그는 종편이나 CJ행을 택하지도 않았다. 무한도전 연출 10년째에 퇴장하겠다는 메시지는, 어찌 보면 김태호 PD가 시청자와 경영진, 그리고 MBC동료들에게 보내는 최대한의 ‘예의’일 수 있다.

김태호 PD는 3년 전 기자에게 “우리도 이제 격주 연출이나 시즌제 도입을 고민할 시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작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더욱 피폐해졌다. 시청률 경쟁이 심화되며 경쟁력 있는 예능프로그램의 방영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제작준비시간이 부족하면 ‘지켜보기’ 포맷이 반복되고 개성은 점점 사라진다. 무한도전이라고 해서 일반 제작 메커니즘을 벗어나긴 어렵다. 3년 전 기자에게 “시즌제를 할 경우 회사가 받아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던 나영석 KBS 예능PD는 <1박 2일>을 떠나 tvN에서 <꽃보다 할배> 시즌2를 연출하고 있다. 김태호 PD도 <무한도전>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쉼 없이 달려온 PD의 자유와, 무한도전의 ‘끝내주는’ 마지막회를 응원하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