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을 신속히 막는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살처분을 몇 개월째 진행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침출수 유출로 인한 2차 오염과 인권침해·동물보호법 위반 등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 13일 고병원성 AI(H5N8)로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아 살처분이 이뤄진 세종시 부강면 등곡리의 산란계 농장에서는 살처분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됐을 뿐만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SOP)도 어긴 채 살처분을 강행한 영상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5일 동물사랑실천협회와 한국동물보호연합이 공개한 이 농장의 살처분 현장 영상을 보면 담당 공무원들이 살처분 매몰을 앞둔 닭들을 케이지에서 살아있는 채로 쌀 포대에 담고 있다. SOP에 따르면 밀폐가 가능한 무창계사의 경우 산소공급을 중단하고 이산화탄소(CO2) 가스를 주입하거나 밀폐가 쉽지 않으면 살처분 전용 밀폐 컨테이너를 활용해 가스로 안락사한 후 매몰해야 하지만, 이 농장은 이런 지침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보호법 10조 2항에는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가스법·전살법(電殺法)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최소화하여야 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살처분 매뉴얼대로라면 닭에게 가스를 주입한 후 완전히 폐사됐는지 확인한 후에야 사체를 포대에 담아 매몰 장소로 운반해야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동물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이 농장에선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는 닭들이 사체를 담는 포대 안에서 몇 시간 동안 그대로 방치돼 있었으며, 이후 CO2 가스를 주입하는 안락사 과정도 지침대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세종시청 산림축산과 가축방역담당자는 28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산 닭을 마대에 넣은 후 CO2 처리를 했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될 것은 없다”며 “마대에 넣어서 가스를 주입하나 컨테이너에 넣어서 처리하나 똑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 설명은 이와 다르다. 농림부 AI 상황실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리와 달리 산란계는 가만히 있지 않고 날아다니는 등 살처분 현장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케이지에서 꺼낼 때 바로 산 채로 자루에 넣은 후 가스를 주입하기도 한다”면서도 “일반 포대는 닭을 옮기기 위한 용도이지 가스가 새기 때문에 직접 주입은 안 되고, 컨테이너나 강화 비닐 등에 넣어 가스를 주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당과 대한불교조계종, 동물자유연대 등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은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조류독감(AI) 살처분 방지와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제공
 
이와 관련해 박창길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전 농림부 중앙가축방역위원)는 “농림부 설명대로라면 전부 매뉴얼대로 하고 있다지만 우리가 살처분 현장에서 직접 찍은 영상 자료와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과 면담 결과 정부 지침을 어기고 생매장 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살처분에 대한 규정을 엄격히 지키고 법률도 방대하지만 우리는 관련 규정과 제도, 공무원의 인식도 부족해 정부는 생매장이 횡행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이를 감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AI와 구제역과 같은 가축 전염병의 근본 원인에 대한 얘기 없이 지금과 같은 축산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부분적으로 방역 법령을 강화한다고 해도 대량 살처분밖에 방법이 없다”며 “지난 10여 년 동안 농업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높아졌는데, 정부가 현재의 계열화 공장식 축산을 지속하려는 의지를 바꾸지 않는 이상 살처분 재앙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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