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성준 후보자가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시절 안기부가 청구한 ‘한겨레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취재기자까지 국가보안법 혐의를 씌운 ‘공안사건’에 “세계 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언론탄압”에 개입한 것이다. 방통위원장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후보자는 “언론자유 침해가 있어 압수수색 대상을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한겨레 1989년 7월 11일자 1면 기사 <안기부, 오늘중 본사 압수수색>를 보면, 당시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7부 최성준 판사는 10일 안기부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한겨레 윤재걸 기자는 평민당 서경원 의원의 방북사건을 취재해 기사를 내보냈는데, 안기부는 윤 기자가 이를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로 영장을 청구했다.

안기부는 윤재걸 기자가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 의원의 방북 사진과 취재내용을 압수하기 위해 ‘편집국내 윤재걸 기자와 장윤환 편집위원장, 이종욱 비상대책위원장이 사용하는 책상 및 파일박스와 자료실 등’을 압수수색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사진은 이미 보도했고, 메모용지 등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압수수색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며 11일 준항고장까지 제출했다. 그러나 안기부는 이튿날 아침 수사요원 및 경찰 800여명을 동원, 한겨레를 압수수색했다.

   
▲ 한겨레 1989년 7월 13일자 1면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신문방송학과)는 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겨레의 취재 내용이 없으면 사건을 풀기 어려울 만큼 내용이거나 그것이 없으면 판결할 수 없을 정도로 결정적인 열쇠는 아니었다”며 “최성준 판사의 영장 발부는 언론의 자유를 인식하지 못한 조치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언론에 대한 이런 인식을 가진 판사가 언론 관련 기구, 특히 언론이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지원하는 방통위의 수장이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겨레 공채 1기인 언론인 하성봉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당시 한겨레 기자들은 압수수색을 민주언론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이고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겨레는 1988년 민주언론의 기수로 창간했고, 1989년은 노태우 정권 때로 판사와 검사들이 군사정권에 스스로 고개를 숙인 시기”라고 설명했다. “최성준 판사 또한 군사정권에 스스로 머리를 숙인 인사”라는 이야기다.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부적절하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홍익대 김주환 교수(법학과)는 지난해 <언론사 압수·수색의 헌법적 한계>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언론사 압수수색은 “방송·출판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된다”며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그 원천에 있어서 봉쇄하고 독립적인 언론의 존립 그 자체를 부정하며 나아가서는 민주 정치제도의 기반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폭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오늘은 최성준 후보자에게 영장발부 이유 등을 듣기 위해 수십 차례 연락을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최 후보자 의견을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최 후보자는 방통위를 통해 “당시 압수수색영장 청구서에는 ‘사진 등 범행입증 자료’라고 돼 있었는데 포괄적인 압수수색으로 언론자유 침해 우려가 있어 입북 때 사진과 메모지로 한정했다”고 밝혔다. 방통위 관계자는 “후보자께서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 같은 취지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 한겨레 1989년 7월 11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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