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지적되던 공인인증서가 규제혁파의 주요 대표 사례로 꼽혀 폐지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대통령 주재로는 처음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해결해야 할 규제 중 하나로 공인인증서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역대 정권들이 모두 규제개혁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와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규제, 그리고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덩어리 규제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방영된 우리나라 드라마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들었다"며 "그런데 이를 본 수많은 중국 시청자들이 주인공들이 입고 나온 의상과 패션잡화 등을 사기 위해 한국 쇼핑몰에 접속했지만, 결제하기 위해 요구하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결국 구매에 실패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만 요구하고 있는 공인인증서가 국내 쇼핑몰의 해외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 규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규제개혁이 성공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자세"라며 "각 기관 공무원들의 자세와 의지, 신념에 따라 규제개혁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첫 번째 세션 발표에 나선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도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엑스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든 액티브엑스를 설치해야 하고, 공인인증서를 요구한다"며 "공인인증서가 인감이면 액티브엑스는 집 열쇠인데 집 열쇠를 내놓으라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천송이 코트를 중국에서 사고 싶어도 못사는 것도 액티브엑스 때문"이라며 "절대다수 국민이 폐지를 바라고 있으며 공인인증서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 공인인증서
 
그동안 많은 시민단체와 정보통신기술(IT) 종사자들이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엑스의 폐지를 요구해왔다. 오픈넷, 슬로우뉴스 등은 'NoActiveX'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액티브엑스 폐지 서명운동하고 있다. 20일 현재 9000여명이 액티브에스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서명에 참여했다.

앞서 국회 차원에서 공인인증서를 폐지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다. 최재천,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5월 공인인증서 사용 강제를 금지하고, 다양한 사설인증서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전자서명법·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공인인증서 발급업체의 '카르텔'에 부딪쳐 번번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 액티브엑스
 
한창민 오픈넷 사무국장은 "최근 개인정보 유출사고의 근원도 공인인증서를 기반으로 한 보안 시스템 때문"이라며 "많은 국민들이 불편하고 위험하게 만들었던 공인인증서 문제를 지적한 것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국민들의 고통과 금융결제 시스템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문제가 아니라 '별 그대'가 중국에서 인기가 있는데 해외에서 구매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 착목한 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애초 공인인증서는 보안때문에 도입했지만 이젠 오히려 보안에 취약한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커가 파일 형태의 공인인증서를 복사해서 빼가는 건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이다. 장병완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 8건이던 공인인증서 유출은 2013년 9월 기준 6933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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