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한 방송사의 국장급 고위 남성간부가 비정규직 여성 직원을 스토킹하고 있었다. 미혼으로 혼자 사는 그녀의 집 앞 CCTV에 그 사람의 얼굴이 찍혀있을 거라고 했다. 제보는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다. 여직원은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 신문사의 부장급 남성기자는 인턴기간이었던 여성 기자와의 술자리에서 폭언을 하고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 피해여성 기자는 훗날 채용됐는데, 가해남성과 같은 부서에 배치되기도 했다. 화가 난 동료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그러나 쓸 수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회사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방송사에선 남성 직원이 지속적으로 여직원 수십 명의 몰카 사진을 찍다가 적발됐다. 남성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사건은 정리됐다. 그런데, 회사의 대표란 남성은 피해여성들을 불러 언론에 알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끔 요구했다. 어렵게 피해여성을 찾아냈지만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또 다른 언론유관단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워크숍 자리에서 술잔이 돌던 밤, 선배 남성은 혼자 떨어져있던 신입사원 여성을 뒤쫓았다. 위험을 직감한 그녀가 도망치자 남성이 달리며 쫓아왔다. 그녀는 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회사는 쉬쉬했고, 남성 직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회사에 남았다. 이곳에서도 피해 당사자가 보도를 원치 않았다.

미디어오늘에는 언론사와 언론유관단체의 성추행 제보가 들어온다. 대다수는 기사화되지 않는다. 취재를 하다보면 피해 당사자가 보도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가해 남성을 용서해서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회사에 남고 싶었다. 아무리 여성의 권리가 높아졌다 해도, 여성은 사내에서 사회적 약자였다. 사건이 불거지면 피해여성이 회사를 그만두는 사례가 여전히 적지 않다.  

미디어오늘은 언론보도가 피해여성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의 입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당사자가 원치 않아도 쓰고 싶을 때가 많았다. 특종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가해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 없이 아무렇지 않게 언론사 선배 노릇을 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처벌이 있어야 했다.  

물론 몇몇 성추행 사건은 언론에 등장했다. 지난해 윤창중 대변인이 있었고, 이진한 검사가 있었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이다. ‘여성의 날’이 오면 언론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인권개선노력에 대해 보도한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보도도 나간다. 그러나 정작 언론사 내부에서 이뤄지는 성추행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쉬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청자와 독자에 대한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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