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가 26일 법안 심사소위를 열어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에 사용자와 종사자가 동수로 참여하는 편성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명시하기로 했다. 방송법 4조 4항 개정안에 여야가 합의한 결과다.

그러자 TV조선·채널A·JTBC·MBN 등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한 신문사가 27일자 지면을 통해 해당 개정안이 민간방송사의 인사권과 영업권까지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반발했다. 그러자 27일 오후 2시 현재, 미방위가 파행되고 있다.

이 법안은 27일 미방위 전체회의에서 심의·의결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종편을 소유한 신문사들이 자사 지면을 통해 여당을 압박하는 식의 기사를 내며 파행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지난한 논의로 합의를 본 사안인데 종편이 집단적으로 자사 지면을 이용해 입법권을 무력화시켰다. 개정안이 불편하면 종편사업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 종편4사가 사용자·종사자 동수 참여의 편성위원회 구성에 반발한 이유는 뭘까. 중앙일보는 <민영방송 편성까지 규제 “방송발전 막는 독소 조항”> 기사에서 “여야가 방송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민영방송의 편성권을 침해할 수 있는 독소조항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발언을 인용해 “강성 노조가 장악한 위원회가 편성규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방송사의 경영과 인사권, 제작방향까지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27일자 10면 기사.
 
   
▲ 동아일보 27일자 3면.
 

   
▲ 매일경제 27일자 16면.
 
이 신문은 “노조가 사실상 편성권을 쥐게 될 경우 입맛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을 결방시키는 등의 새로운 의미의 편파성이 심화될 수 있다”며 “방송을 진보세력의 정치적 수단으로 만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매일경제 또한 <여야합의 방송법 개정안에 민간언론 편집권 침해 논란> 기사에서 “노사동수 편성위원회를 법제화함으로써 민간 언론사 편집권 침해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민간방송사까지 강제로 구성 운영토록 법률로 강제한 것은 방송 편성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보도하며 “자율 운영이 오히려 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주장을 인용했다.

이에 대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편성위원회 구성은 방송의 공정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장치다. 사측이 자기 마음대로 편성해버릴 경우 방송은 이윤추구로, 사익을 위해서만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법적 강제 없이 편성위원회를 자율 운영할 경우 사측이 언제든 편성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된다”며 “방송이 갖고 있는 독특한 사회적 역할을 위해 사측을 견제할 장치가 사내에 있어야 하고, 국가는 이를 위한 장치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조중동매(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의 ‘반발’은 노동조합이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종편 내부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조항 신설로 평기자들에게 보도의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을 요구하는 권리가 주어지고 노동자의식이 신장돼 자칫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강해져 내부 반발이 거세질 것을 우려한 결과로 보인다.

   
▲ 조선일보 27일자 6면.
 
이와 관련 조선일보는 <방송법 개정안에 민영방송사 자율권 침해 독소 조항> 기사에서 “노조가 특정 프로그램의 방송에 동의하지 않거나 특정 프로그램을 반드시 방송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노조가 근로조건과 무관한 문제로도 취재·제작 거부를 할 수 있는 명분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개정안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도준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발언을 인용해 “공영방송이라면 국가가 법을 통해 관여할 수 있지만, 민간방송을 규제하려 한다면 위헌적 발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상을 갖고 있는 자체가 방송사업자로서의 자격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는 제작자율성을 위한 기본적인 공적 장치이며, 공영과 민영의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문제다. 경영침해라는 주장은 궤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종편과 같은 민영방송사인 SBS의 경우 노사가 2004년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데 합의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합의로 인해 SBS 경영진이 경영침해를 주장한 사례는 없다.

더욱이 편성위원회 구성은 종편의 사업 계획 중 하나였다. 채널A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방송의 공정성 확보방안으로 ‘편성·보도·제작 부문의 책임자 대표 3명과 해당 부문의 실무자 대표 3명을 구성한다’고 나와 있다. JTBC는 이미 편성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방송법에 명시된 방송의 공익적 역할은 민영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미국도 대부분 상업방송이지만 공익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라고 지적한 뒤 “방송 사업은 국가가 평가해 허가를 내줘야 할 수 있다. 조중동매의 주장은 방송의 공적 역할을 무시한 사기업의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 신문사의 개정안 비판 보도가 일제히 나가자 당초 27일 오전 10시에 개최할 예정이었던 법안심사 소위원회가 오후 2시 현재까지 파행되고 있다. 새누리당 측은 26일 합의했던 민영방송 편성위원회 구성 부분이 ‘지나친 규제’라며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조선일보는 27일 지면에서 “민주당이 26일 인사·경영권 개입 등 애초부터 무리였던 주장들을 철회하면서 '사용자와 종사자 동수 편성위원회 구성'만을 요구하자, 여당이 순순히 합의해준 것”이라며 “새누리당 지도부도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알았다”고 보도했다. 보수언론의 ‘시그널’에 맞춰 새누리당 의원들이 스스로 입법권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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