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를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지난 2003년 1월 9일 창원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는 이렇게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급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회사가 노조와 간부들을 상대로 6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임금과 부동산을 가압류했기 때문이다. 배씨의 죽음은 사회에 손배가압류의 폭력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회는 두산의 ‘신종 노동탄압’에 분노했다. 두 달 뒤 회사는 손배가압류 소송을 철회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났으나 노조와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손배가압류는 되레 유행이 돼 버렸다. 파업을 벌였다하면 사측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뿐 아니라 금액의 규모 또한 대폭 커졌다. 파업이 끝난다 해도 손배 청구를 철회하지도 않는다. 쌍용차지부에 청구된 금액은 302억 원, KEC 300억 원, 한진중공업은 158억 원, 철도노조는 313억 원, 문화방송(MBC) 195억 원 등이다. 지난 20일 기준으로 민주노총 사업장에 청구된 금액 합계는 모두 1691억에 이른다.

이런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는 26일 손해배상가압류를 막기 위한 기구를 결성해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이날 서울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이른바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출범식에서 발표된 제안자 수만 지난 한달 사이 400명이 훌쩍 넘는 등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줬다. 제안자엔 조국 서울대 교수,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뿐 아니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대 노총이 모두 참가했다.

   
▲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잡고'(손잡고)가 26일 오후 서울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조국 교수는 “자본이 노조활동 자체를 못하도록 손배가압류를 물리고 있다. 패가망신 시킬 정도지만 시민사회, 학계에는 덜 알려진 문제였다”며 “두 번의 민주정부를 거쳤지만 노동 없는 민주주의였다. 이제 이 문제만큼은 해결을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조그맣게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손잡고가 진행하고 있는 ‘노란봉투 프로젝트’에 대해 “1차 모금이 끝났고 2차 모금이 시작됐다. 하지만 손잡고는 단순히 돈을 갚아주는 운동이 아니다. 모금을 진행하면서, 법률과 판례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 프로젝트’는 손잡고와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모금으로, 47억 원 손배선고를 받은 쌍용차 해고자를 10만 명이 4만7000원 씩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진행중이며 지난 18일엔 가수 이효리씨가 참여해 화제가 됐다.

이날 출범식에는 손배 가압류 피해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김성훈 금속노조 KEC지회장은 “2010년 파업 이후 5년간 많은 노조 탄압이 있었다. 지금도 조합원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회사는 퇴사하면 손배를 취하하겠다고 한다. 손배가 사업장에 노조가 발 못 붙이게 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 또 한명의 사표 쓰는 조합원을 만나고 왔다”고 말했다.

김명환 철도노조위원장은 이날 조합원 186명에게 발송된 손배 소송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개개인이 변제를 하는 개인 손배는 그 사람이 가진 집, 통장 모두가 압류조치된다. 사실상 가족을 파탄 내겠다는 것”이라며 “(철도노조는) 지난 12월 파업에서 노동법이 규정한 필수유지근무율보다 더 높은 유지율로 열차를 운행해 사실상의 손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법파업이란 명목으로 손배를 청구했다”고 말했다.

홍종인 유성기업 지회장도 “회사가 손배를 하는 이유는 자본의 마음대로 노조 조합원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복수노조 시대가 되면서 어용노조에 가입하면 손배대상에서 빼주겠다고 한는데, 손배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노동자를 죽이는 자본의 특권이며 법원은 살인 선고하는 위험한 법”이라고 성토했다. 홍 지회장은 얼마 전까지 노조탄압에 맞서 129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다.

손잡고는 앞으로 릴레이 1인 시위, 전시회, 언론기고, 토론회, 공청회 등을 통해 손배가압류를 문제를 사회에 알릴 계획이다. 또 크게는 손배가압류와 업무방해죄 관련 법제도 개선을 목표로 하며, 사회적 모금을 이어가고 관련 피해자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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